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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절체절명의 순간 정체성이 드러나는 법이다. K-리그 시도민 구단들이 '강등'이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하자 본성이 드러났다. 정치권에 좌지우지되는 신세일 뿐이었다.
대구는 강등이 확정되자마자 구단 전체가 흔들렸다. 이사회는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사무국 팀장급들의 사표까지 요구했다. 때문에 대구는 혼란 상황을 수습할 힘을 잃고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대구시는 부랴부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하지만 파벌 싸움만 일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결국 최덕주 감독을 선임하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강원은 아전인수격 행정이 도마에 올랐다. 강등과 잔류를 결정지을 플레이오프 2차전을 앞두고서였다. 난데없이 부정선수가 있다고 했다. 강원에서 뛰다 상주로 간 백종환을 문제삼았다. 1대4로 진 1차전 결과는 무효이며 자신들의 3대0 승리라고 주장했다. 자신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플레이오프 2차전을 보이콧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 확인 결과 몽니임이 드러났다. 결국 강원은 2차전을 치렀다. 1대0으로 이겼지만 1,2차전 합계에서 2대4로 지며 강등됐다.
올 시즌을 앞두고 시민구단으로 변모한 성남 역시 한계를 보였다. 감독 선임 과정에서 말이 많았다. 당초 성남시는 안익수 감독 유임에 무게를 뒀다. 선수단을 흔들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안 감독이 유럽 연수를 간 직후 상황이 달라졌다. 박종환 카드가 급부상하더니 결국 선임까지 발빠르게 이어졌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팬들 사이에서는 선임과정에서 정치색이 짙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23일 박 감독의 초대감독 임명식에서 여론을 의식한 듯 "정치성에 대한 지적을 하는 분들이 있지만 그런 요소는 전혀 없다. 성남시민구단이 발전하는 데 꼭 필요한 분으로 공정하고 냉정하게 평가했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진화에 나섰다.
반면 대전은 좋은 전례를 남겼다. 빠른 행보로 강등 후폭풍을 최소화했다. 지난 4일 전종구 사장을 포함한 이사진 9명을 물갈이했다. 바로 38세의 김세환 신임 사장을 임명했다. K-리그 최연소 사장이다. 새롭게 판을 짜라는 뜻이었다. 그 외에는 더 이상 메스를 가하지 않았다. 조직의 안정을 꾀했다. 감독 선임도 발빨랐다. 조진호 수석 코치를 정식 감독 대행으로 임명하며 선수단 안정에 힘을 쏟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기술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김세환 사장과 조진호 대행의 경험 부족을 보완해주는 역할로 구단 운영에 안정감을 더했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