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의 드라마, 포항이 기적을 썼다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3-12-01 18:00


포항이 K리그 클래식 2013 최강자에 올랐다. 1일 울산 문수경기장에서 열린 울산과 포항의 2013 K리그 클래식 경기에서 후반 종료직전 김원일의 극적인 결승골로 1대0 승리를 거두며 21승11무6패(승점 74)를 기록, 선두 울산(승점 73)을 승점 1점차로 꺾고 K-리그 정상에 등극했다.
경기가 종료되자 선수들과 기쁨을 나누는 황선홍 감독.
울산=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3.12.01/

울산월드컵경기장을 찾은 2만여 관중들이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공으로 뜬 볼이 포항, 울산 선수들이 뒤엉킨 공간에서 춤을 췄다. 박성호의 오른발에 맞고 골문 앞으로 구르던 볼은 공격에 가담한 김원일의 발에 맞고 골망을 흔들었다. 1983년 프로축구 출범 이후 가장 드라마틱한 결승골이었다. 두 팀의 운명은 그렇게 갈렸다.

포항이 '기적의 드라마'를 썼다. 울산을 끌어 내렸다. 포항은 1일 울산월드컵경기장에서 가진 울산과의 2013년 K-리그 클래식 최종전에서 후반 종료직전 터진 수비수 김원일의 결승골에 힘입어 1대0으로 이겼다. 이날 승리로 포항은 승점 74가 되면서 울산(승점 73)을 제치고 2007년 이후 6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비겨도 우승이 확정됐던 울산은 마지막 순간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눈물을 뿌렸다.

상반된 신경전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은 타들어 갑니다." 경기 전 취재진과 만난 황선홍 포항 감독의 얼굴은 차분했다. "밤을 새워 고민해서 묘수를 찾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 그러나 그게 아니지 않나." 이날 경기 전까지 승점 71로 울산(승점 73)에게 2점차로 뒤지고 있었던 포항에게 답은 '승리' 하나 뿐이었다. 가진 것을 모두 동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FA컵 우승으로 얻은 자신감에 기댈 뿐이었다. 황 감독은 "FA컵 우승 뒤 선수들이 심리적으로 다소 편안해진 것은 사실이다. 후회없는 경기를 펼치겠다"고 다짐했다. 안방에서 포항을 상대하는 김호곤 울산 감독의 표정에는 불안감이 묻어났다. 주포 김신욱에 하피냐와 까이끼까지, 차-포를 다 떼고 포항을 상대해야 했다. 포항의 상승세는 두려움이었다. "선수들에게 포항-서울전(3대1 포항 승)을 보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나도 손이 가서 봤더니 3대1이었다. 선수들이 동요할 것을 생각하니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부산전) 승부로 연결이 됐다." 겉으론 웃었지만, 속은 이미 숯덩이가 됐다.

울산 철퇴 녹인 포항의 기적

양 팀의 처지는 그라운드에 그대로 투영됐다. 포항은 급했고, 울산은 노련했다. 울산은 서두르지 않으며 중원 압박으로 포항의 패스 길목을 차단했다. 오히려 빠른 역습으로 포항 수비진을 흔들었다. 전반 33분에는 김승용이 올려준 프리킥을 한상운이 문전 정면에서 헤딩슛으로 연결하면서 포항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교체명단에 공격수만 4명을 포함시킨 황 감독이 먼저 칼을 빼들었다. 후반 8분과 12분 황지수 노병준을 빼고 박성호 조찬호를 투입했다. 이어진 파상공세는 무위로 돌아갔다. 후반 16분 박성호의 헤딩슛에 이어 후반 28분 김승대의 슛까지 모두 김승규의 손에 걸렸다. 울산이 그대로 승기를 잡은 듯 했다. 김호곤 울산 감독은 후반 25분에는 김승용 대신 마스다, 후반 40분엔 최보경 대신 최성환을 투입시키면서 무승부에 방점을 찍으려 했다. 울산의 지키기는 추가시간 4분까지 성공적이었다. 후반 44분 김승규가 골문을 비운 사이 시도한 박성호의 슛은 최성환에 막혔고, 후반 추가시간 이명주의 슛도 김승규의 선방에 막혔다. 그렇게 경기는 끝날 것처럼 보였다.

운명이 갈리는데 1분도 필요치 않았다. 경기 종료 직전 김원일이 골망을 흔들자 포항 벤치가 모두 달려나와 포효했다. 망연자실한 울산의 마지막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문수벌에는 2000여 포항 팬들이 부르는 '영일만 친구'가 울려 퍼졌다.


기적의 순간, 엇갈린 눈물

황 감독은 눈에서 또 눈물이 흘렀다. 지난해 지도자 입문 후 처음으로 FA컵을 들어올린 뒤 1년 만에 맛보는 환희였다.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기적 같은 일이다." 사실 K-리그는 황 감독에게 미정복의 고지였다. 전성기였던 1995년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준우승으로 고개를 숙였다. 18년 만에 한을 풀었다. 황 감독은 "지금은 실감이 안나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얼마나 큰 일인지 실감이 날 것 같다"고 웃었다. 그는 "시즌 초반 우승은 생각지도 못했다. FA컵 우승 이후 어려움이 있었다. 때문에 결과보다 과정에 충실하는게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고 봤는데,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추가시간 4분 동안 상대가 시간을 지연할 때마다 '기적이 일어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게 기적"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귀신잡는 해병' 김원일도 울었다. 무명의 대학선수로 해병대 자원 입대를 결정하면서 벼랑 끝까지 몰렸던 선수 인생은 포항에서 만개했다.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던 말을 천금의 결승골로 지켰다. 환희의 눈물 속에 포항 팬들 앞에 당당히 섰다. "이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골을 넣어본 적은 없다. 군 시절 14박15일 휴가가 걸린 경기에서 골을 넣은 적은 있었다."

승자 곁엔 패자도 있었다. 결승골을 내준 김승규는 대성통곡하면서 주변의 안쓰러움을 샀다. 김 감독 역시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공중볼을 노리는 상대에 맞서 스리백으로 대응했다. 마지막에 아쉽게 프리킥으로 실점한 부분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한 뒤 쓸쓸히 자리를 떴다.
울산=박상경, 김진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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