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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반전극장 이끈 박용호의 간절한 기도, 하늘도 감동했다

김진회 기자

기사입력 2013-09-02 12:46


박용호. 사진제공=부산 아이파크

지난 28일 제주전이 끝나자 부산의 주장 박용호(31)는 유니폼 상의를 얼굴까지 뒤집어 썼다. 흐르는 눈물을 보이기 싫었다. 1-2로 뒤진 후반 막판 완벽에 가까운 득점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결국 역전패를 받아들여야 했다. 박용호는 "당시 '이건 골이다'라고 할 정도로 좋은 득점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이 억울하고 내 자신한테 화가 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유리했던 스플릿 그룹A 생존에 짙은 안개가 꼈다. 부산은 1일 K-리그 클래식 선두 포항을 반드시 꺾어야 그룹A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기적이 필요했다. 윤성효 부산 감독은 초상집 분위기부터 추스렸다. 다음날 훈련을 쉬고 레크레이션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선수들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 날이 왔다.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날이었다. 결전을 앞두고 박용호는 선수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절실함을 얘기했다. "그룹A와 그룹B의 차이점을 개인적으로 생각해봐라. 상대에게 전술, 기술, 체력적으로 지더라도 정신력과 간절함은 이기자."

'포기'란 없었다. 전광판 시계가 멈췄다. 스코어는 1-1이었다. 그러나 부산에는 4분이란 추가시간과 박용호가 있었다. 박용호는 역습 찬스를 잡자마자 있는 힘껏 상대 진영까지 뛰어 올라갔다. 그런데 왼쪽 측면에서 올린 임상협의 크로스가 문전을 지나 페널티박스 오른쪽에 있던 자신에게 배달됐다. 28일 제주전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박용호는 두 번의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수없이 마인드컨트롤을 했다. 그는 "왼발이 주발이 아니어서 맞춘다는 생각이 컸다. 세게 차면 골문을 벗어나고 약하게 차면 골키퍼에게 막히기 때문에 골키퍼가 역동작이 걸릴 수 있는 곳으로만 차자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박용호의 발을 떠난 공은 거짓말처럼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바랐던 기적이 일어났다. 부산의 반전 극장은 환희로 물들었다.

이번 골은 박용호의 13년 프로선수 인생에서 최고의 골로 기억된다. 박용호는 "그 동안 경기 종료 직전 1~2골씩 넣은 적은 있었다. 그러나 천당과 지옥을 결정하는 비중이 컸던 경기에서 넣은 골은 처음이다. 반전에 반전이었다"고 인정했다.


박용호. 사진제공=부산 아이파크
박용호는 골에 대한 재미있는 뒷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는 "너무 승리가 간절하다보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도를 해봤다. 포항전을 이기고 그룹A에 생존하면 종교를 가지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기도가 이뤄졌다. 게다가 골까지 넣었다. 소름이 끼쳤다"고 웃었다. 경기가 끝난 뒤 선수단은 부산으로 이동해 가벼운 맥주 파티로 그룹A 생존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 자리에서 박용호는 "이제 종교를 가지려고 한다. 주말에 나를 데리고 가라"고 했다.

박용호는 올시즌 초반 주전 경쟁에서 밀린 모습이었다. 이정호-이경렬로 구성된 중앙 수비가 물샐 틈 없는 수비력을 과시했다. 박용호는 4월과 5월 각각 1경기씩 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고민이었다. 출전에 대한 부분보다 주장으로서의 위신 추락이 걱정됐다. 박용호는 "내가 경기를 나갔을 때와 못 나갔을 때 분명 선수들이 받아들이는 부분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민이 있었다. 그러나 맡은 바 임무는 다 해야지 않나. 조금이라도 팀에 보탬이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박용호는 산전수전 겪은 베테랑이지만 올시즌 또 다른 이색 경험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부산은 축구 인생의 후반전과 같다. 서울에서 힘들게 왔다. 클럽에 대한 애정도 컸었고. 은퇴 뒤 지도자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부산으로 둥지를 옮긴 뒤 올시즌 많은 것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올해는 정신적으로도 더 성숙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뿌듯함은 젊은 선수들을 보면서도 느끼고 있다. 박용호는 "최근 울산과 인천에 연승을 하면서 젊은 선수들이 자만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위기가 왔을 때는 뭉치는 힘이 있더라. '아! 우리가 발전했구나. 성숙해졌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1차 목표를 이뤘다. 이젠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달린다. FA컵 우승이다. 박용호는 "FA컵 우승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FA컵 우승 세리머니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부상없이 경기 출전해서 팀에 도움주고 싶다"고 했다. 박용호의 도전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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