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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지메시'는 해결사였다. 지소연(21·고베아이낙)의 그림같은 골이 두번 작렬했다. 기세등등했던 수백명의 일본 울트라니폰 원정 응원단이 망연자실했다. 이날만큼은 일본 최강 여자축구클럽 고베 아이낙의 10번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여자대표팀 10번 지소연이 자랑스러운 존재감을 드러냈다.
한국은 27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펼쳐진 동아시안컵 여자축구 3차전 일본전, 지소연의 2골에 힘입어 2대1로 승리했다. 이날 지소연은 유영아와 함께 투톱으로 나섰다. 비장했다. 동아시안컵 북한 중국과의 1-2차전, 2패후 믹스트존에서 만난 지소연은 "할말이 없습니다"라며 입술을 꾹 깨물었었다. 눈가가 빨개진 채 "홈에서 2연패해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몇번이고 반복했다.
2011년 지소연이 일본리그에 진출한 이후 일본여자축구는 승승장구했다. 독일여자월드컵 우승, 런던올림픽 준우승등 성적과 비례해 인기도 수직상승했다. 2010년 20세 이하 월드컵 3위 직후 반짝 스타덤을 누린 지소연은 늘 마음이 아팠다. 3년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버린 한국 여자축구는 속상했다. 파주NFC에서 남자대표팀에 방을 내준 후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자꾸만 눈물이 났다. 그럴수록 이를 악물었다. 지소연은 올시즌 일본리그에서 6골4도움으로 펄펄 날고 있다. 골 결정률(37.5%)에서는 리그 2위다. 16개의 슈팅 가운데 무려 6골을 성공시켰다.
세계 최강 일본전 전반 13분, '원샷원킬' 지소연의 발끝이 빛났다. 프리킥 찬스에서 김나래와 지소연이 나란히 섰다. 중국전에서 '35m 대포알 골'을 성공시킨 김나래가 지소연에게 기회를 양보했다. 간절함은 통했다. 노려찬 오른발 슈팅은 골대 오른쪽에 통렬하게 꽂혔다. 지소연은 골 직후 벤치를 향해 내달렸다. 윤덕여 여자대표팀 감독의 품으로 달려가 뜨겁게 포옹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후반 21분, 또한번 지소연이 존재감을 뽐냈다. 동료의 크로스와 함께 동물적인 감각으로 뒷공간을 파고들었다. 볼 트래핑 후 중심이 흐트러진 상태에서도 골감각만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지소연이 무릎을 꿇은 채 감사기도를 올렸다. 한여름 무더위, 비인기 여자축구의 설움을 한번에 떨쳐내는 시원한 한풀이 골이었다. '지메시' 지소연 유럽리거들이 무려 7명에 달하는 세계 최강 일본, 오기미 유키(첼시) 오노 시노부(올랭피크 리옹) 등 유럽리그 톱클래스 공격수들이 모두 나선 일본을 상대로 끝내 승리했다.
무엇보다 지소연의 이 한골은 우승팀을 결정짓는 캐스팅보트가 됐다. '우승후보' 일본에겐 쓰라린 비수, '다크호스' 북한에겐 값진 선물이 됐다. 2008년 2010년 우승국 일본의 3연패를 저지했다.일본은 3경기에서 1승1무1패를 기록했다. '2승1무' 무패행진을 기록한 북한에게 동아시안컵 우승을 내줬다.
잠실=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