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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승부였다.
궁지에 몰렸지만 선수와 경기장을 찾은 1만4000여명의 팬이 하나가 됐다. "골, 골~", 메아리가 물결쳤다. 감동이었다. 하루가 흘렀지만 흥분은 가시지 않고 있다. 21일 FC서울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8강 진출은 오랜만에 맛 본 축구의 진수였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환희에 젖었고,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땅을 쳤다.
짜릿한 전율은 여전히 뼛속을 여행하고 있다. 서울과 베이징의 ACL 16강 2차전(3대1 승) 뒷얘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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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하지만 상식은 벗어났다. 중국 축구의 후진성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서울월드컵경기장 원정팀 라커룸이 테러당했다. 그들은 떠났고, 분을 삭히지 못한 처참한 몰골만 남았다. 베이징의 만행이었다.
라커룸을 상징하는 표지판이 너덜너덜해졌다. 화이트보드, 출입문, 탈의실, 휴지통 등이 훼손됐다. 발로 걷어차고 주먹질 한 흔적이 곳곳에 남았다. 중국 언론들도 문제를 삼으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서울은 기물파손에 대해 변상을 요구할 계획이다. 아시아축구연맹(AFC)에 보고를 했다. 징계는 불가피한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AFC는 베이징에 벌금을 물려, 그 벌금으로 기물파손을 보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은 경기에도 졌고, 매너도 '꽝'이었다.
김현성의 재발견
"선제 실점만 막자고 얘기를 했다. 그러나 전반에 먼저 실점한 이후 라커룸에 불안한 그림자가 지배했다.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자칫 우리가 포기할 수 있었다." 최용수 감독의 말이었다. 하프타임, 서울 라커룸에 드리워진 먹구름이었다.
반전은 교체카드였다. 최 감독은 일찌감치 승부수를 꺼내들었다. 후반 시작과 함께 김현성을 투입했다. 지난해 런던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인 그는 공중볼 장악력에 있어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1m86에 점프력도 으뜸이다. 눈물도 있었다. 올림픽 후 내리막 길을 걸었다. 일본 J-리그 시미즈에 임대됐다 올시즌 복귀했지다.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하다 최근 자리를 잡았다. 최 감독은 최근 "현성이가 런던올림픽 후유증에서 벗어난 것 같다"며 엄지를 세웠다. 김현성이 투입된 후 데얀이 상대 수비수들의 집중마크에서 해방됐다. 공중볼은 그의 차지였고, 중앙과 좌우를 넘나들며 수비수들을 괴롭혔다.
최 감독은 베이징전 수훈갑으로 김현성을 꼽았다. 그는 "현성이가 상대 수비진에 부담을 주는 모습이 좋았다. 우리가 세컨볼을 잘 소유할 수 있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절묘한 교체타이밍이 8강행의 열쇠였다.
허물어진 데몰리션 공식
'FC서울 득점=데몰리션', 등식이 성립한다. 서울 공격의 열쇠는 데얀과 몰리나가 쥐고 있다. 지난해 서울이 터트린 76골 중 둘이 49골을 합작했다. 64.4%나 된다. 데몰리션이 공격의 핵이라는 점은 변화가 없지만 '골 공식'은 허물어지고 있다.
베이징전에서 결승골을 터트린 윤일록은 ACL에서만 4골을 기록, 팀내 최다골을 자랑하고 있다. 쐐기골의 주인공 고명진도 2골을 쓸어담았다. 동점골을 터트린 아디는 이날 공수에 걸쳐 완벽에 가까운 활약을 펼쳤다. 데몰리션에 집중된 힘이 분산되고 있다. 최 감독은 "올해 들어 데얀과 몰리나에 집중된 골이 분산되고 있다. 고무적이다. 골은 개인이 넣는 것이 아니다. 팀이 넣는 것이다. 그런 기운들이 긍정적"이라며 웃었다.
서울은 베이징전에서 8강행 티켓도 얻고, 새로운 탈출구도 마련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