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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유치원이래'자율축구'무패'전남,전북전 설렌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3-05-10 13:07



"요즘 우리한테 '전남유치원'이라는데, 유치원은 좀 너무했죠.(웃음)"

'광양루니' 이종호(21)가 농담하듯 발끈했다. 전남 드래곤즈는 매경기 23세 이하 선수 8~9명이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다. 리그 최연소 라인업이다. 한때 조광래 감독이 지휘하던 '경남유치원'보다도 어리다. 나이로 보면 '유치원'이라는 별명은 그럴 듯하다. 그러나 전남에는 단순히 '유치원'이라는 별명으로 치부할 수 없는 '프로의 미덕'이 있다.

하석주 감독이 이끄는 전남의 축구는 대단히 자발적이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자율적이다. 프로답게 스스로 원하는 일을 알아서 한다. 지지않는 승부욕은 끈끈하다.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서로를 배려하는 이타적인 플레이, 그라운드에서 쏟아내는 뜨거운 투혼은 '유치원'과 거리가 멀다. 최근 리그 6경기에서 2승4무로 무패를 달렸다. FA컵 32강전에서도 승부차기 키커가 14번까지 가는 사상 유례없는 대혈투끝에 강릉시청을 이겼다. "웬만해선 지지 않는다"는 공감대와 자신감이 선수단 안에 널리 퍼져 있다.

하 감독은 어린 선수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라운드에서 모든 걸 쏟아내길 원한다. 공식훈련은 최소화한다. 경기 후 회복 시간도 2~3일 충분히 준다. "나는 우리 선수들을 믿는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전남 선수 대부분은 스스로 개인훈련에 시간을 쏟아붓는다. 심동운 김태호 이재억 등은 선수단 안에서도 소문난 연습벌레다. 하루 3~4번 훈련도 마다 않는다. 코칭스태프 없이 20명의 선수가 나와 훈련을 놀이처럼 즐길 때도 있다. 진풍경이다. 선수들끼리 '훈련량'을 경쟁한다. '운동중독' 김태호는 "훈련장에 내가 1등으로 가야한다. 누가 먼저 와 있으면 종일 기분이 안좋다"고 털어놨을 정도다. 물론 코칭스태프들은 남몰래 훈련상황을 점검하고, 보고한다. 하 감독은 "코치들이 귀띔해주는 내용을 근거로, 잘 준비된 선수를 당일 깜짝 엔트리에 내세울 때도 있다. 그럴 땐 아마 기분이 찢어질 것"이라며 웃었다.

어린 전남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대화를 가장 많이 하는 팀 중 하나다. 선수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수신호를 건네고, 가장 많이 격려하고 소리친다. 그라운드는 늘 시끄럼다. 훈련이 끝난 후 봄 햇살이 내리쬐는 광양 잔디위에 삼삼오오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경남전 직후 전현철 이종호 심동운 박준태 이현승 등 전남 공격라인은 스스로를 돌아봤다. "경남전 같은 경우 1-0에서 우리가 더 넣어줬어야 한다. 넣을 걸 못넣었다. 잘하고 있는 수비한테 미안하지 않도록 우리가 더 잘하자"고 결의했다.

비디오 미팅 역시 졸립거나 괴로운 시간이 아니다. 하 감독의 비디오 분석은 정평이 나 있다. 특정선수의 잘못을 콕 짚어내기보다는 건설적인 토론 분위기를 이끈다. "이런 장면에선 어떻게 해야 할까?" 선수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손을 든다.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고 소통한다. 아픈 선수를 억지로 뛰게 하지 않는 것 역시 감독의 철칙이다. "몸 상태가 안 좋으면 미리 말하라. 부상이 온 후에 고치려면 늦다"는 말로 선수들의 부담감을 덜어준다.

하석주식 자율훈련의 효과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최근 '에이스' 이현승은 '운동벌레' 심동운과 슈팅, 패스 연습에 골몰했다. 하 감독은 "이현승은 우리팀의 에이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몇달만 심동운을 따라다녀보라"는 하 감독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서울, 전북 시절 영리한 패스와 날선 킥으로 촉망받았던 천재형 미드필더가 부지런해졌다. 경남 원정에서 팀에 값진 승점 3점을 선사한 첫골은 부단한 개인훈련의 결과다. 8경기에서 1골3도움을 기록한 이종호 역시 개인훈련의 즐거움에 빠졌다. 이동국, 데얀의 골 장면 비디오를 수십번씩 본다. 그라운드에서 이슬찬 이중권 등 선후배들과 미니게임을 하며 비디오 내용을 복기한다. 매 경기 좋은 흐름을 이어가는 비결이다.

11일 오후 3시 광양전용구장에서 '강호' 전북과 맞붙는다. 전남은 최근 전북과의 3경기에서 2무1패로 무승이다. 그러나 내용면에선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난해 3월 전북 원정에선 1대1로 비겼고, 7월 28일 홈 경기에선 2대3으로 졌다. 전남 선수들은 전북전을 고대하고 있다. 상승세의 인천, 성남과 잇달아 비겼고, 원정에서 경남을 잡았다. FA컵 승부차기 승리후 "운까지 따른다"는 기분좋은 분위기가 팽배하다. 두려움보다 기대가 크다. 전남의 능력을 드러낼 '진검승부'의 첫 무대로 기대하고 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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