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몸 베니싱스프레이, 경기시간 줄였다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3-03-11 16:59 | 최종수정 2013-03-13 08:25


심판이 베니싱 스프레이를 뿌리고 있다. 사진제공=프로축구연맹

"삑~" 휘슬소리가 울렸다. 주심은 프리킥을 선언했다. 키커에게 다가갔다. 손가락으로 휘슬을 가리킨다. 휘슬을 불고난 뒤 킥을 하라는 의미다.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끄집내더니 땅에다 '칙'하고 뿌린다. 어느새 하얀 줄이 생겼다. 9.15m 떨어진 곳으로 갔다. 벽을 쌓으려는 수비수들 앞에다가 다시 '칙'하고 뿌린다. 다시 줄이 생겼다. 주심이 그린 줄은 하나의 경계 표시다. 수비수들도 그 줄은 넘지 못한다. 주심이 꺼낸 것이 바로 '베니싱 스프레이'다.

베니싱 스프레이는 정확한 프리킥 거리 확보에 도움을 주기 위해 프로축구연맹이 올 시즌 도입했다. 2012년 3월 국제축구평의회(IFAB)에서 정식 심판 장비로 승인했다. 헤어스프레이같이 생긴 통에 백색 거품이 들어있다. 주 성분은 물과 지방산 폴리글리콜에스테르 등이다. 인체에 무해하다. 백색 거품은 뿌린 뒤 20초에서 길게는 2분 이내에 사라진다.

베니싱 스프레이는 귀한 몸이다. 국내에는 생산업체가 없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베니싱 스프레이를 사용하고 있는 브라질에서 직접 수입한다. 브라질 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등 남미와 미국, 멕시코 등 북중미 프로축구 리그에서 베니싱 스프레이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픽=김변호 기자
베니싱 스프레이 자체는 그리 비싸지 않다. 개당 가격은 6.5달러(약 7100원) 정도다. 문제는 물류 비용이다. 가연성 스프레이 제품이어서 여객기 화물칸에는 실을 수 없다. 배에 싣고 오거나 특수 포장을 한 뒤 화물기에 실어야 한다. 배송 업체도 위험물 취득 인가를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항공비용과 포장비용에 세관 통과 비용 등을 합친 물류 비용은 제품 가격의 30~40%선을 차지한다. 최근 연맹은 베니싱 스프레이 1500개를 주문했다. 1600만원을 지불했다. 이 가운데 물류 비용만 600만원이었다.

효과는 확실했다. 프로연맹은 1월 심판들을 데리고 스페인 연수를 떠났다. 유럽 클럽팀들간의 친선경기에 심판들이 투입됐다. 이때부터 베니싱 스프레이를 사용했다. 줄을 긋자 수비수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봤다. 수비수들은 감히 줄을 넘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줄에 딱 맞춰 섰다. 경기가 끝난 뒤 팀 관계자가 와서 어떤 물건인지 사진을 찍어 가기도 했다.

K-리그 클래식에서도 효과는 탁월했다.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연맹은 K-리그 클래식 1라운드 7경기를 분석했다. 주심 당 110㎖짜리 4통을 허리에 차고 경기에 임한다. 보통 2통을 쓴다. 1경기당 사용하는 용량은 평균 220㎖다. 7경기에서 총 42차례 줄을 그었다. 경기당 6번 꼴이었다. 주심과 선수들이 으례 벌여왔던 실랑이가 사라졌다. 예년에는 프리킥을 선언하고 경기가 재개될 때까지 평균 1분 정도 걸렸다. 실랑이가 몇 차례 있으면 2분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베니싱 스프레이 사용 후 경기 재개까지 걸리는 시간이 '팍' 줄었다. 평균 20~24초 정도 걸렸다. 빠른 경우는 15초만에 재개된 경우도 있었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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