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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눈빛으로 보지마세요. 재계약을 못한거지 실패한 것은 아니잖아요."
마지막 경기 보이콧을 고려했다. '내가 필요없는 대전의 벤치에 앉아서 뭐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한통의 전화가 왔다. 서포터스였다. "감독님, 죄송합니다. 잔류시켜주셔 감사하고,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재계약 선택은 구단의 몫이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팬들의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힘내서 마지막 경기를 지도하기로 했다. 대구전 승패가 순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마지막 부진으로 상처받은 팬들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주고 싶었다.
유 감독은 대구와의 경기를 앞두고 마지막 미팅을 가졌다. '마지막까지 자기 포지션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원론적인 얘기만 했다. 선수들은 미안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유 감독은 웃으며 한마디를 더 했다. "이번에는 꼭 이겨줬으면 좋겠다." 선수들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힘든 강등싸움속에서도 '이겨달라'는 주문을 한 적이 없던 유 감독이었다. 선수들이 독기를 품었다. 악착같이 뛰었다. 전반 41분 김병석의 첫 골이 터졌다. 선수들이 모두 벤치로 모여들었다. 세리머니로 유 감독에 큰 절을 올렸다. 유 감독도 웃으며 선수들을 앉아줬다. 후반 한덕희의 퇴장 변수가 생겼지만, 대전 선수들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경기는 결국 1대0 대전의 승리로 끝이 났다. 원하던 '유종의 미'에 성공했다. 유 감독은 마지막까지 팬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그는 팬들 앞에서 "1년반동안 보내준 성원을 잊지 않겠다. 대전을 이렇게 떠나지만 꼭 좋은 모습으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팬들도 유 감독의 이름을 한참동안 연호했다.
유 감독은 당분간 휴대폰은 끄겠다고 했다. 쉼없이 달려왔기에 휴식을 취하겠다고 했다. 유 감독은 "선수들이 처음보다 머리도 많이 빠지고 늙었다고 놀리더라"며 웃었다. 일단 유 감독은 미국에 건너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이후에는 지도자 복귀를 위한 준비를 할 생각이다. 협회 전임지도자는 그가 구상하는 계획 중 하나다. 유 감독은 대전에서의 추억이 지도자 생활을 하는데 있어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나와 함께 선수생활을 했던 젊은 지도자들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시민구단에서 강등싸움을 펼친 적은 없다. 내가 향후 좋은 지도자가 되는데 있어 분명 큰 경험이 될 것이다. 반드시 돌아오겠다." 그는 이렇게 대전을 떠났다.
대전=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