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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주장의 품격' 드러낸 악수거부 사건

기사입력 2012-09-16 19:52 | 최종수정 2012-09-17 10:08

박지성존테리
박지성 존테리. 사진=SBS ESPN 캡쳐

축구는 '화합의 스포츠'다. 국가, 인종, 문화, 종교의 벽을 허문다. 물론 그라운드에서는 몸싸움과 신경전이 펼쳐진다. 종목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축구가 만들어낸 상징에 흠집을 내는 것이 있다. 최근 심각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인간의 기본권을 훼손하는 인종차별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2006년부터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독일월드컵부터 각종 FIFA 주관대회에서 'Say no to Racism(인종차별에 노라고 말하라)'이라는 구호아래 인종차별 금지 선서를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여전히 인종차별의 상흔은 이곳저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아시아리그에선 인종차별 문제가 거의 불거지지 않는다. 식민지의 역사가 존재하는 유럽리그에서 자주 발생한다. 국수주의와 백인 우월주의가 강하게 남아있는 영국에서 자주 연출된다. 이젠 문제 해결이 스포츠계를 떠나 국가 차원에서 이뤄질 정도다. 지난 3월 영국 의회의 문화·미디어·체육 위원회는 청문회를 열어 축구장에서 벌어지는 인종주의 실상을 파헤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했다.

인종차별의 여파는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영국은 지난해 여름 토트넘에서 일어난 폭동으로 큰 사회적 혼란을 겪었다. 당시 인종차별 문제도 폭동을 유발시킨 계기가 됐다.

한국 유럽파들도 인종차별을 경험했다. 박지성(31·퀸즈파크레인저스) 이영표(35·밴쿠버) 기성용(23·스완지시티) 등은 주로 원정 경기에서 관중들로부터 원숭이 흉내와 울음소리 야유를 종종 들어야 했다. 당연히 인종차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자신이 연루되지 않았더라도 인종차별에 대한 물의를 일으킨 선수에 대한 인식도 좋을 리 없다.

박지성
박지성이 인종차별 문제가 어느 정도로 민감한 지를 행동으로 보여줬다. 15일(한국시각) 첼시전(0대0 무)에서 상대 수비수 존 테리와의 두 차례 악수를 거부했다. 존 테리는 지난해 10월 QPR의 수비수 안톤 퍼디낸드에게 흑인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언사를 해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존 테리는 퍼디낸드와 신경전을 펼치던 상황에서 코를 손으로 막는 행동('입냄새가 구리다'고 말하기 위한 제스처)을 취했다. 또 "Fucking black cunt"(더러운 검둥이 XX)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후 존 테리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주장 완장을 박탈당했다. 격렬한 여론의 비난에도 직면했다. 그러나 7월 웨스트 런던 치안재판소는 '증거 불충분'의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후 2개월이 흘렀다. 앙금은 여전했다. 퍼디낸드는 존 테리와 악수할 뜻이 없다고 공언했다. 퍼디낸드는 "QPR 동료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동료들이 존 테리와 악수를 나누는 것은 개인의 결정이라 신경쓰지않겠다"고 말했다. 박지성은 '의리의 사나이'였다. 팀 동료의 자존심을 지켜줬다. 경기 전과 코인 토스 때 존 테리의 악수를 거부했다. 박지성은 애슐리 콜의 인사도 거부했다. 콜은 존 테리가 퍼디낸드와 법정공방을 펼칠 때 증인으로 나섰다.

박지성이 악수를 거부했던 이유는 두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첫째, 박지성은 QPR의 주장이다. 강호 첼시를 상대하기 위해선 충만한 사기가 필요했다. 악수 거부 대열에 동참하는 것으로 충분히 하나라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특히 박지성은 첼시전을 앞두고 매치페이퍼에 장문의 글로 주장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박지성은 "나는 동료들과 맨유에서 얻은 경험을 공유할 것이다. QPR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질 수 있게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더비(런던을 연고로 한 두팀의 맞대결)는 QPR의 첫 번째 더비다. 나는 경기를 잘하고 싶다. 경기를 이기기 위해 팀을 돕는 주장으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소화하고 싶다. 우리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둘째, 퍼디낸드는 맨유와 연관된 선수이기도 하다. 안톤 퍼디낸드는 맨유 수비수 리오 퍼디낸드의 동생이다. 리오 퍼디낸드는 6월 태국에서 열린 박지성 자선경기에 참가할 정도로 두터운 친분을 유지했다. 그 동생이 홀로 힘겹게 인종차별과 싸우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박지성이 '주장의 품격'을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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