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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해도 너무한다. 그래도 명색이 상급단체인데….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올림픽 열기에 또 찬물을 끼얹다니."
이구동성, K-리그에서 들려오는 침통한 목소리다. 사상 첫 올림픽 메달 획득에 K-리그는 기대가 컸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이후 10년 만에 찾아온 호재다. 후폭풍은 꽃도 피우기 전에 시들해지고 있다.
하지만 '서울의 봄'은 무산됐다. 서울은 2년 전인 2010년 5월 5일 프로스포츠 사상 최다 관중 기록을 수립했다. 성남과의 홈경기에서 6만747명이 입장했다. 한국 축구의 쾌거를 앞세워 다시 6만 관중에 도전장을 냈다. 13일까지 팬들의 반응은 상상을 초월했다. 1만장 이상 예매되며 꿈은 현실로 다가오는 듯 했다. 그러나 5만명(5만787명)을 겨우 넘긴 것에 만족해야 했다.
14일 일본축구협회에 전달한 축구협회의 '박종우 독도 세리머니' 해명 이메일이 알려지면서 열기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원문 전체를 공개해 적극적으로 사과했으면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을 수 있었다. 실기했다. 외교문서라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축구협회는 "'사과(apology)'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유감(regret)'이란 단어를 쓴 것을 일본이 확대 해석했다"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결국 원문은 16일 공개됐다.
충격이었다. 축구협회만 여전히 부인할 뿐이다. 제목으로 단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행위(Unsporting celebrating activities~)'부터 잘못을 인정했다. 내용을 보면 분명한 사과의 메시지가 담겼다. '너그러운 이해와 아량을 베풀어 달라(kind understanding and generosity)'는 부분에선 대한민국이 치를 떨었다.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과 김주성 사무총장은 1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긴급현안보고에 출석했다. 축제를 만끽할 시기에 의원들에게 질타를 당했다.
한국 축구의 어두운 자화상이 만천하에 다시 공개됐다. 세상은 K-리그가 아닌 축구협회의 '굴욕 외교'에 초점을 맞췄다. 후진 행정의 구태에 민심은 싸늘해졌다. K-리그를 향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상암벌에 모인 K-리그 관계자들 사이에선 "축구협회가 적어도 1만표는 허공으로 날려버렸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대박을 기대하던 서울도 아쉬움이 진했다.
K-리그 최고 흥행매치인 서울-수원전이 수원도 아닌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덕분에 K-리그 28라운드 경기장에는 총 11만2924명의 관중이 들어찼다. 그러나 서울을 제외한 다른 경기장의 상황은 올림픽 이전만도 오히려 못했다. K-리그는 경기장 타이틀보드에 '사상 첫 동메달, 팬 여러분의 힘입니다'라는 캠페인 배너를 설치했다. 강원과 부산전이 열린 강릉은 올림픽 영웅들의 잔치였다. 강원 소속인 오재석의 환영 행사가 열렸다. 부산의 박종우와 이범영이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올림픽 특수였다. 하지만 강원의 평균 관중인 3759명보다 오히려 약 600명 적은 3166명이 입장했다. 그나마 울산이 2만5395명으로 선전했을 뿐이다. 광주-대전전은 2247명에 불과했다.
K-리그는 한국 축구의 산실이다. 각급 대표팀의 경기력과 직결된다. 런던올림픽 동메달 신화의 통로도 K-리그였다. 18명의 영광의 얼굴 중 12명이 K-리그를 거쳤거나 현재 그 무대를 누비고 있다. K-리그가 발전해야 한국 축구도 더 튼튼해진다.
축구계의 우두머리인 축구협회는 그동안 산하 연맹단체와의 관계에서도 권위를 앞세워 일방 통행을 했다. K-리그의 잔칫상에는 재를 뿌렸다. 그러면서 비상식적인 주먹구구 행정으로 한국 축구를 후퇴시키고 있다.
조중연 김주성, 축구협회 수뇌부는 늘 그랫듯 다시 여론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단다. 동메달 신화마저 꺾어버린 그들에게 '관용'이란 단어는 사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