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조직력' 제주, 비결은 밴드 연습?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2-04-26 13:53


드럼을 배우는 제주 선수단. 맨오른쪽이 박경훈 감독. 스포츠조선DB.

제주의 돌풍이 이어지고 있다.

시즌 초반 중위권 전력으로 평가받았던 제주는 안정된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공격축구로 시즌 2위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제주의 선전은 스타 선수 한두명의 힘이 아닌 팀 전체의 힘으로 만들어낸 결과이기에 '깜짝 돌풍'으로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만큼 '원샷원킬' 제주의 조직력은 돋보인다.

비결이 있었다. 밴드연습이다. 제주는 타 구단과 달리 오전에만 훈련을 한다. 프로선수이니만큼 집중력있는 훈련만으로 충분하다는게 박경훈 감독의 생각이다. 오전 훈련이 끝나면 오후 시간은 자유롭게 쓸 수가 있다. 그러나 선수단에 고향이 제주도가 아닌 사람이 대부분이라 자유시간이 주어져도 할 수 있는게 그리 많지 않다. 앞쪽에는 한라산, 뒤쪽에는 바닷가, 외지 사람들이 보기에는 천혜의 환경이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지루한게 사실이다. 밴드 연습은 제주 선수단이 가장 즐겁게 하고 있는 여가생활이다. 각기 다른 포지션이지만 낮에는 공으로, 오후에는 악기로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기타를 배우는 제주 선수단. 스포츠조선DB.
화요일 오후 6시30분이 되면 선수단은 하나둘씩 제주 클럽하우스 지하의 연습실로 모여든다. 지하 연습실은 구단 자체 밴드 '숨비소리'의 어엿한 둥지다. '숨비소리'는 제주도 해녀들이 작업을 마치고 물 밖으로 올라올 때 첫번째로 내쉬는 숨소리를 뜻하는 말이다. 이 소리가 휘파람과 비슷하다고 해서 '숨비소리'라고 불린다. 이름도 제법 그럴 듯 하다.

'숨비소리'를 탄생시킨 주인공은 변명기 제주 사장이다. 부임 후 처음으로 치른 2010년 K-리그 출정식에서 난타팀을 초청했다. 변 사장은 남들이 공연하는 것을 보는 것보다 우리가 직접 공연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변 사장은 제주 부임 전 모기업 SK의 송년행사 당시 드럼 주자로 활약한 바 있다. 멤버를 모아보니 제법 구색이 갖춰졌다. 학창시절 기타 좀 쳤다는 김장열 재활트레이너와 김유빈 경영지원팀 대리도 키보드 주자로 가세했다. 김우중 트레이너는 베이스를 쳤다. 밴드의 얼굴인 보컬은 선수단에게 맡겼다.

결성 6개월만에 실전에 나섰다. 한, 두번씩한 공연이 쌓이다보니 어느새 6번으로 늘었다. 축구단에서 밴드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한데 사장이 드럼치고 선수들이 노래를 하니 제주 지역민들과 팬들이 폭발적인 호응을 보였다. 시간이 지나 레파토리도 14~15곡으로 늘었다. 최근에는 버스커버스커 등과 같은 최신곡을 연주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숨비소리'에 대한 명성이 올라가니 선수단의 관심도 올라갔다.


제주 밴드 '숨비소리' 연습 장면. 스포츠조선DB.
1기를 넘어 올해안에 2기를 완성하기로 했다. 멤버는 이미 어느정도 구축됐다. 박경훈 감독과 배일환이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고, 이도영 수석코치와 최영준 코치가 기타 수업에 들어갔다. 아직 초보인만큼 시간을 갖고 기초부터 차분히 배우고 있다. 정성민 송호영 심영성 전태연 김준엽 등 선수들도 악기 배우기에 가세했다. 숨비소리 1기 리더였던 김장열 트레이너는 "지금 성적이 좋아서 그런지 다 잘된다. 분위기는 최고다"며 웃은 뒤, "지금 속도로 2기 멤버들이 연주를 하려면 6개월 정도는 걸릴 것 같다. 공연을 한번 하면 확 달라지는 느낌이 있다. 아예 연습생들도 다 같이 할 수 있는 노래를 정해서 연습할 생각이다"고 했다. 축구와 밴드, 과정은 다르지만 '하모니(조화)'라는 결과를 추구하는 것은 같다. 올시즌 제주가 아름다운 소리만큼이나 아름다운 축구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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