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 10년 주기 '대운'있다, 올해가 그 해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2-04-25 11:03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43)은 한국 축구의 역사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을 필두로 4차례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후 2004년 미국(LA갤럭시)에서 은퇴했다.

행정가 수업을 받던 그는 2005년 지도자로 노선을 변경했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러브콜을 수락했다. "선수 시절 쌓아놓은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받아들이겠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선 코치로 월드컵을 누볐다.

2009년 감독의 길로 들어섰다. 청소년대표팀(20세 이하)을 이끈 그는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이어 올림픽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 시련은 있었지만 실패는 없었다. 'Never Stop(절대 멈추지 않는다)', 'Let's make a history(역사를 만들자)'가 그의 철학이다. 이집트 국제축구연맹(FIFA) 청소년월드컵 8강, 광저우아시안게임 동메달로 '갱없는 드라마'의 끈을 이어오고 있다.

홍 감독이 걸어온 길에 재미난 이력이 있다. 10년 주기로 한국 축구를 뒤흔든 기적을 일궈냈다.

1992년 처음으로 줄기를 바꿨다. 1991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않고 군에 입대했다. 1992년 포철(현 포항)에 입단, K-리그에 데뷔했다. 23세의 어린 나이지만 그는 달랐다. 포철의 철벽 수비라인을 이끌며 팀의 우승을 일궈냈다. 신인상과는 격이 맞지 않았다. 프로축구 사상 처음으로 신인 선수가 MVP(최우수선수)에 오르는 영예를 누렸다.

10년이 흐른 2002년, 현역 시절의 꽃이 만개했다. 월드컵은 늘 두려운 무대였다. 긴장과 압박감에 시달렸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피날레 무대였다. 그러나 승선까지 굴곡의 연속이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선수 길들이기'에 달인이다. 33세 최고참 홍명보도 덫에 걸렸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만큼 혹독했다.

다행히 그 벽을 넘어 최종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주장 완장도 그의 몫이었다. 세계가 놀란 환희의 무대였다. 홍명보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앞세워 월드컵 첫 승(폴란드와 조별리그 1차전 2대0 승)에 이어 4강 신화를 연출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감독 홍명보의 시대다. 2012년 런던올림픽이 기다리고 있다. 출발은 상큼했다. 24일 조추첨에서 톱시드의 강호 영국, 브라질, 스페인을 피했다. 25%의 확률을 뚫었다. 멕시코와 짝을 이뤘다. 7회 연속 올림픽 본선에 오른 홍명보호는 멕시코-스위스-가봉과 함께 B조에 편성됐다. 쉬운 상대도 없지만, 어려운 상대도 없다. 최상의 조다.

홍 감독의 고지는 사상 첫 올림픽 축구 메달이다. 그는 신중하다. "3팀 모두 경계를 해야 한다. 조별예선이 가장 중요하다. 통과를 하느냐 못하느냐다. 그 다음은 예측이 힘들다. 일단 조별예선 통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운명에 앞서 땀과 노력이 우선이다. 기분좋은 상상은 할 수 있다. 올해가 10년 주기의 '대운', 그 해다. 현실이 되면 홍명보호는 올림픽 최초의 축구 메달 역사를 쓸 수 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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