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하대성-상주 하성민 형제의 생애 첫 맞대결

하성룡 기자

기사입력 2012-04-04 11:55


1993년 인천 집 앞 동네에서 놀던 중 한껏 포즈를 취한 형 하대성(뒤)과 동생 하성민.

초·중·고등학교에서 함께 공을 찼던 형제가 프로에서, 그것도 한 팀에서 나란히 선발 출전해 그라운드를 누빈다? 만화에 나올만한 얘기지만 K-리그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2009년 하나은행 FA컵에서 형제가 나란히 전북 유니폼을 입고 선발 출격했다. 제주를 상대로 90분동안 중원에서 환상의 호흡을 선보이며 팀의 5대2 승리를 이끌어냈다. 형제는 두 손을 맞잡고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3년이 흘렀다. 운명은 엇갈렸다. 2012년 4월 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K-리그 6라운드 서울-상주전에서 형제는 서로에 창을 겨눠야 한다. 10년 넘게 함께 공을 찼지만 그라운드에서 적으로 만나기는 처음이다. FC서울의 하대성(27)과 상주의 하성민(25)이 생애 첫 맞대결을 앞둔 심정을 전했다. 같은 듯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엇갈린 운명

만수북초-부평동중-부평고에서 함께 공을 찬 두 살 터울 형제는 고등학교 졸업후 프로로 직행했다. 2009년 전북에서 1시즌 동안 한솥밥을 먹었지만 형 하대성이 2010년 서울로 이적하면서 1년 만에 다시 이별을 맞이했다. 엇갈린 운명처럼 형제의 입지도 달랐다. 형 하대성은 2년 연속(2009년 전북, 2010년 서울) K-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K-리그의 중심에 섰다. A대표팀에도 발탁됐다. 2012년 서울의 주장 완장을 차고 '서울의 봄'을 이끌고 있다. 반면 동생 하성민은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2008년 전북에 입단할 당시는 10경기에 출전했지만 이후 출전이 뜸했다. 2011년 전북에서 단 1경기 출전에 그쳤다. 하지만 2012년 상주 상무에 입단한 뒤 단번에 주전 자리를 꿰찼다. 올시즌 상주의 모든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그래서 하성민은 주전으로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형에게 그라운드에서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 서울-상주전이 그 무대다.


상주 상무의 하성민(왼쪽)과 FC 서울의 하대성(형).
잠시 접어둔 형제애

모두 중앙미드필더인 형제는 그라운드 한 가운데서 대결을 펼친다. 서로 부딪히고 몸싸움을 벌일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라운드에서 펼칠 치열한 싸움에 대한 예고편일까. 일부러 접촉(?)도 끊었다. 군인인 하성민은 지난주, 외박 때마다 들리는 경기도 구리의 형 집을 찾지 않았단다. 그는 "원래 형집에서 같이 지내는데 이번에는 인천 부모님댁으로 갔다. 경기를 앞두고 있어서 통화만 짧게 했다"고 밝혔다. 형이 답했다. "부모님댁에 간다고 하길래 그런가보다 했다. 굳이 (내 집에) 오라고 하지도 않았다."

동생이 맞대결의 불을 지폈다. 하성민은 "준비 많이 해라 형. 상주 만만하게 보지 말고. 내가 눈도 안 마주치고 거칠게 할 수도 있어. 욱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며 강력한 태클을 예고했다. 이를 전해들은 하대성은 동생의 패기가 자랑스러운듯 미소를 지었다. "경기의 일부분이니, 사적인 감정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웃음) 내가 동생에게 거칠게 할 수도 있다. 다만 경기 중 다치지만 않게 하자. 경기 끝나면 형 동생으로 돌아가게 되니깐." 하대성은 동생이 출전하는 경기를 빼놓지 않고 챙겨 본다. 덕분에(?) 상주의 전력을 모두 파악했다. 승리를 자신했다. 하성민은 지난주 서울-수원의 '슈퍼매치'를 직접 경기장에서 지켜봤다. 형을 보기위함이었지만 서울의 경기력도 눈에 담았다. 치열한 대결을 앞둔 탓에 이번 한 주 동안만 형재에를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롤모델 vs 후원자

맞대결 얘기를 접자 동생은 다시 순한 양이 됐다. '형의 존재감'에 대해 물었더니 '찬양론'을 펼쳤다. 그는 "형은 어렷을때부터 인정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축구를 하면서 형은 항상 롤모델같은 존재였다. 테크니션인 형의 축구 스타일을 하나 하나 모두 닮고 싶었다"고 답했다. 그러나 롤모델을 갈아탔단다. 같은 포지션 경쟁자이자 믿고 따르는 형 '식사마' 김상식(36·전북)이 그 주인공이다. 김상식의 플레이를 비디오로 연구하고 있다. 목표는 전북으로 복귀해 '제2의 김상식'이 되는 것. 반면 형은 동생을 품었다. 후원자 역할을 자처했다. "항상 먼 발치에서 응원하는 후원자가 되고 싶다. 방법은 하나다. 내가 높은 위치에 있어야 동생이 따라온다. 모범이 되는 존재가 되면 동생도 자극이 되서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북에 있으면서 경기 많이 뛰지 못해 힘들었는데 상주에서 경쟁을 뚫고 주전으로 뛰어서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꼭 상주에서 많이 성장해 상식이형 같은 존재가 되거라." 형제는 한 가지 약속을 했다. 경기 중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끝나고 웃으면서 만나자고.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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