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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같은 6개월이었다.
바젤은 14일(이하 한국시각) 독일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린 바이에른뮌헨과의 2011~2012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0대7로 대패하며 8강 진출에 실패했다. 박주호(25·바젤)의 유럽챔피언스리그 모험도 여기서 멈췄다. 패배는 썼지만, 얻은게 더 많았던 시간들이다. 유럽무대 진출 첫 해부터 '꿈의 무대'로 불리는 챔피언스리그를 누빈 박주호는 '롤모델' 파트리스 에브라(맨유)와 '영웅' 아르옌 로벤(바이에른뮌헨)과 연달아 맞대결을 펼쳤다. 강호들 틈바구니속에서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에 성공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TV에서나 보던 슈퍼스타들과 직접 부딪히며 성장을 거듭한 박주호는 어느새 당당한 유럽리거로 변해있었다.
유럽챔피언스리그는 모든 축구선수들의 꿈이다. 한국인 유럽리거 중에도 박지성(맨유) 박주영(아스널) 설기현(당시 안더레흐트·현 인천) 이천수(당시 레알 소시에다드) 이영표(당시 PSV 에인트호벤·현 밴쿠버)에게만 허락한 무대다. 챔피언스리그는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박주호에게 찾아온 행운이었다. 그는 운을 넘어 오로지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박주호는 지난해 9월 15일 오텔루 갈라티(루마니아)와의 경기에서 챔피언스리그 데뷔전을 치뤘다. 떨릴 법도 했지만, 주눅들지 않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경기 후 "주변에서 챔피언스리그 얘기를 많이 해서 기대감이 컸다. 경기 전에 '평정심, 냉정을 유지하자' 마인드컨트롤을 했다"고 고백했다.
13일 후에는 '세계 최강' 맨유와 맞붙었다. '꿈의 극장'으로 불리는 올드트래포드에서 박지성과 롤모델 에브라와 꿈같은 대결을 펼쳤다. 박주호는 이 경기에서 자신의 플레이가 세계 최고 수준의 팀에도 통한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챔피언스리그 사상 처음으로 한국인 맞대결을 펼친 박지성과 박주호는 측면에서 자주 맞닥뜨리며 치열한 승부를 펼쳤다. 북한 출신의 박광룡마저 그라운드를 밟으며 챔피언스리그 최초의 남북 대결이 성사됐다. 박주호는 경기 후 박지성과 땀에 젖은 유니폼을 교환했다.
12월 7일 박주호는 드디어 대형사고를 쳤다. 챔피언스리그 16강행이 걸린 맨유와의 조별예선 경기에서 선발로 나선 박주호는 건실한 플레이로 팀의 2대0 승리를 도왔다. 박주호는 세계 최고의 오른쪽 윙어 중 하나로 꼽히는 나니와의 맞대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이 경기 후 박주호는 독일과 프랑스 클럽들의 러브콜을 받았다. 유럽리거로 완전히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박주호는 만족하지 않았다. "어떻게 표현할수 없을 만큼 기분이 좋다. 오늘까지만 기쁨을 만끽하고 16강전을 준비하겠다."
16강 상대는 '영웅' 로벤이 뛰고 있는 바이에른뮌헨이었다. 지난달 23일 열린 1차전에서 드리블에 관한한 리오넬 메시에 필적할만하다는 로벤을 상대로 박주호는 다시 한번 만점활약을 펼쳤다. 로벤은 박주호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을 보였다. 로벤을 봉쇄한 바젤은 1대0 이변의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2차전에서는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박주호는 무기력하게 로벤에 밀리며 0대7 대패를 지켜봐야만 했다. 그러나 박주호의 도전을 아무도 실패라 하지 않는다. 나니, 안토니오 발렌시아, 로벤 등 세계 최고의 윙어들과 펼친 맞대결은 그의 축구인생에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박주호의 멈추지 않는 도전
스무살 이후 박주호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숭실대 재학중이던 2008년 J2-리그 미토 홀리호크로 이적을 시작으로, J-리그의 가시마 앤틀러스와 주빌로 이와타에서 뛰었다. 25세에 불과하지만 바젤은 박주호의 4번째 프로팀이다. 도전은 그를 지탱하는 힘이다.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드러낸 박주호가 K-리그를 선택했다면 손쉬운 성공을 거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주호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끊임없이 전진했다.
광운공고 시절부터 폭발적 드리블 능력으로 주목을 받은 박주호는 2007년 캐나다 청소년월드컵(20세 이하) 대표팀 주장으로 축구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측면 플레이에 능한 그를 두고 팬들은 '한국의 로벤'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숭실대를 대학 최강팀으로 올려놓은 후 2008년에는 베이 올림픽 지역예선에도 활약했다. A대표팀에도 승선했다. 그러나 좀처럼 대표팀에 자리잡지 못하며 팬들의 기억에서 조금씩 잊혀졌다.
지난해 7월 선택한 바젤로의 이적은 박주호의 축구인생에 새로운 전기가 됐다. 유럽 진출을 노리던 박주호에게 바젤과 슈투트가르트의 스카우트가 관심을 보였지만, 최종 선택은 바젤이었다. 어릴때부터 홀로서기에 익숙한 박주호는 유럽적응도 성공적으로 해냈다. "성공은 축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적응하지 못하면 실력도 나오지 않는다. 바젤에 왔을 때 운동보다는 선수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했다. 실력은 천천히 적응하면서 나올수 있다. 테스트도 아니고 입단해서 왔기 때문에 길게 보려고 했다. 항상 웃고 안되면 몸으로 장난치고 친해질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노력하니 잘 도와주더라." 생활에 적응하자 경기력도 좋아졌다. 곧바로 주전자리를 꿰차며 첫시즌에 주전 확보, 유럽챔피언스리그 16강이라는 만점 성적표를 받았다.
그럴수록 박주호는 축구 생각에만 몰두한다.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등 한국 선수들과 연락하는 것과 인터넷으로 한국 예능 방송을 보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다. 운동하고, 영어수업 받고, 다시 운동하는 박주호의 하루해는 금방 저문다.
박주호는 유럽에서 또 다른 성공을 꿈꾼다. 행선지를 정하진 않았지만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빅리그에서 뛰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 꿈을 이룰 때까지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접을 생각이다. "유럽에 1~2년 있으려고 온게 아니다. 집에도 가고 싶고 친구들도 보고 싶을때가 있지만, 이게 내 직업이다. 그만큼 보상도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그립지는 않다. 힘든 것은 두번째고 남들이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하고 있기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