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축구야권 대표주자 허승표 회장 "한국축구는 아시아 B급이다"

노주환 기자

기사입력 2011-12-03 17:47 | 최종수정 2011-12-07 15:46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은 대한축구협회장이 돼 한국축구를 개혁하고 싶은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인터뷰 중인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65)은 축구 야권의 핵심 인물이다. 두 번 대한축구협회장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청소년대표, 서울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대한축구협회 이사, 기술위원장,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그는 2009년 1월 조중연 후보(현 대한축구협회장)와 협회장 선거에서 맞대결한 결과 8표차로 졌다. 약 3년 전 일이다. 다음 선거는 2013년 1월에 있다. 1년 정도 남았다. 축구계에선 축구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허 회장이 또 '축구대통령'에 도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허 회장 말고는 기존 세력을 견제할 만한 대항마가 없기 때문이다.

스포츠조선의 인터뷰 제안에 허 회장은 몇 번을 사양했다. 몇 개월 전 한 시사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현 축구협회 집행부를 두고 '정몽준과 아이들'이라는 표현을 썼던 게 큰 파장을 일으켰다. 허 회장은 "내가 말만 하면 협회를 공격한다고 하니 조심스럽다"고 했다. 인터뷰 제안 후 3주 만에 허 회장 측에서 인터뷰를 하겠다는 전화가 왔다. 허 회장의 사무실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허 회장의 피플웍스는 직원 400여명의 알짜 회사다. 피플웍스는 광고대행사와 군수업체 등을 아우르는 모기업이다. 기업 활동으로 바쁜 허 회장과의 인터뷰는 약속했던 1시간을 훌쩍 넘겼다. 그는 전날 선수 생활을 함께 했던 원로 축구인들과 볼을 찼는데 발등을 차였다면서 소염진통 패치를 붙이고 있었다.

"내가 지금 출마하겠다고 말하면 너무 견제할텐데"

허 회장은 1주일에 많게는 세 차례 볼을 찬다고 했다. 축구원로 모임에 나가고 서울 서초구 조기축구 모임도 있다. 축구 지도자들이 자주 그의 사무실로 놀러온다. 국가대표 에이스 기성용이 최근 퇴원했을 때 함께 식사를 했다. 허 회장은 축구계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한국 선수들이 뛰는 유럽리그 경기를 라이브로 빠트리지 않고 시청한다고 했다. 그가 현역 선수 시절 잠시 몸담았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 경기를 가장 유심히 보고 있다. 아스널의 박주영은 경기를 뛸 수 있는 클럽으로 임대를 가는 게 낫다는 조언도 했다.

허 회장은 경남 진주를 대표하는 부잣집 허씨(GS그룹 모태)집안에서 태어났다. 축구팬들은 아쉬울 게 없는 그가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과 계속 대립각을 세우는 이유에 의문을 갖는다. 정 명예회장과 허 회장은 사돈지간이기도 하다. 허 회장은 "나는 축구가 그냥 좋다. 한국축구가 잘 되기를 바랄 뿐이다"라며 "지금이라도 한국축구를 개혁해 발전시킬 분이 나오면 그 사람의 회장 당선을 도울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2013년 협회장 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다. 허 회장은 "요즘 부쩍 사람들이 내가 다음 선거에 나갈 거냐고 묻는데 출마 여부는 내년 중반에 최종 결정할 것이다"라며 "선거 당락 여부를 떠나서 어떤 식으로든 기존 축구협회 수뇌부에 대한 견제는 필요하다. 주변에서 계속 자극을 주어야만 그들도 변하고 한국축구 행정이 변한다"고 했다.

축구협회 어른들은 자극을 주어야 바뀐다

허 회장은 조중연 축구협회장, 이회택 부회장, 노흥섭 부회장 등과 서로 잘 안다. 지금은 축구 여권과 야권으로 나눠져 있지만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선수 생활을 했고, 약 20년 전에는 함께 협회에서 일했던 사이다.


허 회장은 정몽준 명예회장을 떠받치는 이 축구협회 수뇌부 인사들의 생각이 변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 축구도 자꾸 새로운 걸 해야 한다. 지금 있는 걸 그대로 유지할 게 아니라 문제가 드러난 것들은 힘이 들더라도 뜯어 고쳐야 한다"고 했다.

올해 곪아터진 승부조작 사건은 한국축구의 오랜 치부를 드러낸 큰 사건이었다. 그는 "한국축구에 불법베팅과 승부조작 소문이 돈 게 벌써 4~5년 전의 일이다. 웬만한 축구인이라면 그런 얘기를 다듣고 있었다"면서 "결국 올게 왔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반복될 수 있다.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 축구선수가 만들어지면 또 사고가 터질 수 있다"고 했다. 허 회장은 초등학교 때 축구선수를 시작하더라도 중학교 3학년 때는 진로에 대한 분명한 선택을 하게 해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직업 축구선수를 할지, 아니면 공부를 하면서 취미로 축구를 할 지를 선택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축구선수로 실패할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시스템은 학부모들이 자기 자식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내려주어야 가능하다.

한국축구는 아시아에서도 B급이다

허 회장은 한국축구의 개혁은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풀린다고 거듭 설명했다. 특히 대표선수 수급 방법도 지금과 같이 A대표 선수가 자주 바뀌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그의 주장은 현재의 중앙 집권 방식 대신 지방축구협회에 더 많은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축구협회에서 그 관할지역의 연령대별로 가장 볼을 잘 차고 소질이 있는 선수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각급 대표팀 감독은 16개 지방축구협회의 연령대별 선발 명단을 기반으로 추려서 대표팀을 뽑으면 가장 공정한 선발이 된다고 했다. 이 시스템이 정착되면 협회 산하에 8개나 연맹이 있을 필요도 없다.

허 회장은 "올해 A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 사령탑이 선수 차출을 두고 불협화음을 낸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면서 "협회 어른들이 두 감독을 하나로 묶지 못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한국축구가 잘 되려면 A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 사령탑이 자주 보고 소통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만 연령별 대표팀이 하나의 축구 스타일로 성장할 수 있고, 선수들도 어느 대표팀에 가더라도 헷갈리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한국축구는 아시아에서도 B급"이라고 했다. A급은 일본과 호주라고 했다.

돈이 없어 승강제를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허 회장은 프로연맹이 중심이 돼 진행하고 있는 K-리그 승강제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대신 프로클럽에 낀 거품을 줄여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자신이 경험했던 아스널 시절 얘기를 했다. 당시 아스널은 버스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사우스햄턴 원정을 당일치기로 다녀왔다고 했다. 허 회장은 "FC서울이 대전 시티즌과 원정 경기를 하는데 특급호텔에 가서 1박을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클럽 선수들은 웬만한 거리는 KTX와 버스를 타고 당일에 이동해야 한다. 돈이 없어 K-리그에서 뛸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 회장의 말대로 K-리그 클럽들이 원정 숙박 비용을 줄이면 팀별로 연간 10억원(추정) 정도는 절약할 수 있다.

허 회장은 한국축구가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고 인터뷰 내내 여러 차례 말했다. 그런 차원에서 그는 조카(허창수 GS그룹 회장)가 구단주인 FC서울이 잘못하고 있는 것도 거침없이 지적했다. 그는 한국축구를 계속 사랑할 것이며 그 차원에서 축구협회 수뇌부의 움직임과 정책을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했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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