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손 김승규, 그만의 노하우는?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1-11-27 15:11


전반 23분 포항 황진성의 페널티킥을 막아낸 울산 골키퍼 김승규가 환호하고 있다. 포항=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나만의 노하우가 있지만 공개할 수 없다. 우리가 우승을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선수 은퇴를 하면 그때 알려주겠다."

26일 2011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플레이오프(PO)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페널티킥 2개를 막아내며 팀의 1대0 승리를 이끈 울산 현대 골키퍼 김승규(21)가 농담을 섞어 한 말이다.

골키퍼와 페널티킥 위치까지 거리는 11m. 키커가 찬 공이 시속 120km라면 0.5초 만에 골문에 도달한다. 반면, 골키퍼의 반응 속도는 0.6초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리적으로 골키퍼는 페널티킥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이것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페널티킥을 '골키퍼와 키커가 벌이는 고도의 심리전'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정규리그 6위로 6강 플레이오프(PO)에 진출해 FC서울(정규리그 3위), 수원 삼성(4위), 포항 스틸러스(2위)를 연파하고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한 울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울산 돌풍의 중심에 백업 골키퍼 김승규가 있다.


26일 포항과의 플레이오프에 선발 출전한 울산 골키퍼 김승규.(오른쪽)포항=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김승규는 지난 23일 준 PO 수원전(1대1 무승부, 승부차기 울산 3-1 승) 연장 후반 교체 출전해 승부차기에서 승리를 이끌었다. 김승규의 기세에 밀린 수원 염기훈과 양상민 최성환이 잇따라 실축을 했다. 운이 좀 따랐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26일 포항과의 PO(울산 1대0 승)에서 김승규는 전반 8분 모따, 전반 23분 황진성의 페널티킥을 막아냈다. 초반 파상공세를 펼친 포항이 두 개의 페널티킥 중 하나만 성공시켰더라면 승부는 달라졌을 것이다.

새로운 거미손으로 떠오른 김승규는 선방의 노하우를 밝힐 수 없다고 했지만, 여러가지 힌트는 있다.

우선 심리전에 능하다. 승부의 순간 의도적으로 상대 키커의 눈을 응시한다. 킥 위치에 들어오기 전부터 킥을 하는 순간까지 눈을 떼지 않는다. 김성수 울산 골키퍼 코치는 "상대 눈을 뚫어지라 쳐다보면 키커는 부담을 갖게 된다. 어차피 골키퍼는 막으면 좋고, 못 막아고 본전이다. 그러나 키커는 무조건 넣어야 하기 때문에 강한 압박감을 느끼게 되는데, 골키퍼가 자신만만해 하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승규는 골문 앞에서 씩씩하다. 키커가 킥을 하기 전에 한쪽 팔을 벌려 흔든다. '이쪽으로 찰 생각이라면 마음대로 해보라'는 제스처다.어차피 확률은 50대50이지만, 상대는 엄청난 압박을 받게 된다. 26일 모따의 페널티킥 때 김승규는 골문 왼쪽으로 판을 흔들었다. 모따는 오른쪽으로 찼고, 방향을 읽은 김승규는 이 공을 쳐냈다.


상대의 페널티킥을 막아낸 울산 골키퍼 김승규가 펄쩍펄쩍 뛰며 기뻐하는 모습. 포항=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황진성이 정면으로 찬 페널티킥을 막은 김승규는 "가운데로 찰 거라는 느낌이 왔다"고 했다. 꼭 집어 설명하기 어렵지만, 평소 상대의 킥 방향과 킥 직전의 움직임을 꼼꼼하게 살펴보면 어느 정도 방향을 읽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1m87, 76kg. 골키퍼로서 흠잡을 수 없는 신체조건이다. 김성수 코치에 따르면, 김승규는 키에 비해 팔 길이도 길다. 김성수 코치는 "길이를 재 본 적이 없지만 다른 골키퍼보다 양팔을 벌렸을 때 12~13cm 정도 긴 것 같다"고 했다.

순간적인 움직임이 빠른 것도 김승규의 장점이다. 타고난 감각과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김승규는 공식훈련 외에 하루 40분씩 줄넘기를 한다고 했다. 울산 현대중 시절부터 단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고 했다. 항상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한다고 했다.

지난해 말 오른쪽 손목을 다쳐 수술대에 오른 김승규는 지난달 말에야 팀에 합류했다. 정규시즌에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김성수 코치는 "현재 정상 컨디션의 70% 수준이다"고 했다. 경기 감각을 걱정했다. 하지만 김승규는 26일 포항전에 경고 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김영광 대신 골문을 굳건히 지켰다.

어리지만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해 좀처럼 위축되지 않는다. 김승규는 2007년 국제축구연맹(FIFA) 청소년월드컵(17세 이하) 때 주전 골키퍼로 뛰었다. 지난해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북 현대와의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김호곤 감독과 김성수 코치의 고민이 깊을 것 같다. 출전이 가능한 주전 골키퍼 김영광과 상승세를 타고 있는 김승규를 놓고서.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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