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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이었다. 경기 결과를 떠나 그라운드에는 감동이 물결쳤다. 수원월드컵경기장을 가득 메운 4만4537명은 단 1초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슈퍼매치다웠다. 희비는 엇갈렸다. 내용에서 FC서울이 우세했다. 승리의 여신은 수원의 손을 들어줬다. 수원이 3일 안방에서 벌어진 FC서울과의 라이벌전에서 1대0으로 신승했다. 3위의 주인이 바뀌었다. 정규리그 홈 7연승의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린 수원이 접수했다. 승점 48점으로 서울과 동률을 이뤘지만 골득실차(수원 +15, 서울 +13)에서 앞섰다.
90분 혈투에서 서울이 89분을 이겼다. 수원이 1분을 이겼고, 웃었다. 후반 33분 서울 골망이 흔들렸다. '마케도니아 특급' 스테보의 머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골이 터졌다. 세트피스였다. 미드필드 중앙에서 염기훈이 크로스한 볼을 박현범이 헤딩으로 재차 골에어리어 정면으로 연결했고, 스테보가 마침표를 찍었다. 박현범의 위치가 오프사이드였다. 그러나 휘슬은 울리지 않았다. 뒷맛은 찜찜했지만 골은 골이었다.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선수들이 90분 내내 정신력으로 잘 싸워줬다. 이 때문에 승리했다." 윤성효 수원 감독의 소감이었다.
서울은 아쉬움으로 몸서리쳤다. 수원을 압도했다. 몰리나의 개인기에 상대 수비라인이 흔들렸다. 고명진은 중원의 패권을 거머쥐었다. 중앙 수비도 몇 차례의 실수는 있었지만 수원의 칼날을 효과적으로 봉쇄했다.
문제는 골결정력이었다. 후반 8분 골에어리어 오른쪽에서 올린 크로스가 '왼발의 마술사' 몰리나의 발끝에 걸렸다. 하지만 왼발이 아닌 오른발이었다. 그의 발을 떠난 볼은 허공을 갈랐다. 9분 뒤 몰리나의 프리킥은 수원 수문장 정성룡의 허를 찔렀지만 골대를 스치며 땅을 쳤다. 후반 26분 최태욱이 볼을 가로챘다. 몰리나, 데얀과 함께 수원 골문으로 진군했다. 수적 우위였다. 그러나 호흡이 맞지 않아 결정적인 기회를 날렸다. 후반 28분 데얀이 터트린 회심의 슈팅은 정성룡의 선방에 막혔다.
"원정경기에도 라이벌을 상대로 공격과 수비에서 압도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후반 몇 차례의 찬스에서 득점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쉽다." 최용수 서울 감독대행의 탄식이었다.
라이벌전은 또 업그레이드 됐다. 명품매치였다. 더 이상 감정적인 대립은 존재하지 않았다. 선수들의 투혼은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상대 선수가 쓰러지면 손을 내미는 훈훈한 광경이 경기내내 연출돼 가슴을 뜨겁게 했다.
K-리그는 올시즌 승부조작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 수원 서포터스 그랑블루는 경기 전 'K리그♥'를 표현한 카드섹션을 응원을 펼쳤다. 한국 축구의 젖줄인 K-리그를 더 사랑해달라는 무언의 항변이었다.
수원-서울, 아시아 최고의 더비가 희망이었다. 유럽 축구가 결코 부럽지 않았다. 이날 빅버드(수원월드컵경기장 애칭)에 K-리그의 모든 꿈이 담겼다. 재도약의 싹이 텄다.
수원=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