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을 잡으려 작정하고 나섰다는 것을 한-일전 3시간 전 삿포로 돔에 들어서면서 금방 알 수 있었다. 선수들의 각오를 담은 동영상이 경기 시작 1시간 전부터 차례로 대형 전광판을 통해 흘러나왔다.
일본축구협회는 이번 한-일전 홍보에 엄청난 신경을 썼다는 후문이다. 4만여장이 매진됐다. 빈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경기전 삿포로 돔 밖은 암표상과 표를 사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는 일본팬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일본의 동기부여 퍼레이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달초 훈련중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사망한 전 일본 국가대표 마츠다의 장례식은 이틀전 일이었다. 이날 경기전 한-일 양국 선수들은 명복을 비는 묵념을 했다. 일본 선수들은 경기전부터 "마츠다를 위해"를 외치며 전의를 붙태웠다.
사실 이날 경기에 앞서 일본축구협회는 한국의 올림픽대표팀도 불러 '더블 한-일전'을 열고 싶어 했다. 하지만 한국은 올림픽대표팀 선수들 중 상당수가 A대표팀에 속해 있는 등 물리적으로 어려움이 있어 난색을 표했다. 결국 이날 일본 올림픽대표팀은 이집트 올림픽대표팀을 불러 한-일전에 앞서 '오프닝 게임'으로 평가전을 치렀다. 일본이 이집트에 2대1로 이겼다. 이날 삿포로돔에는 7시간 넘게 일본 축구팬들로 넘쳐났다.
일본대표팀 서포터스 '울트라 닛폰'은 아예 'KING OF ASIA'라고 쓴 문구를 내걸었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정상에 서고자 하는 그들의 꿈이었다.
이날 경기는 축구를 넘어 전면전, 백병전이었다. 공중볼이 뜨면 3,4명이 몸을 사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태클의 강도와 몸싸움이 보통의 평가전에선 절대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라운드 잔디가 억세 선수들이 자주 중심을 잃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지만 몸보다 마음이 앞선 결과였다. 김영권은 몸싸움 도중 왼발목을 접질렀고, 박원재는 상대 슈팅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아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 MRI(자기공명영상)촬영을 했다.
늘 일본에만 오면 더욱 힘을 내던 한국. 1998년 3월 도쿄에서 열린 다이너스티컵에서 일본은 한국을 상대로 2대1로 이긴 이후 13년 넘게 홈에서 한국을 꺾은 적이 없었다. 이날 경기 이전까지 한국은 원정 한-일전에서 3승2무로 절대적 우위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치밀하게 한국을 무너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분위기 조성 뿐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실력도 키우고 있었다. 가가와의 선제골에 이은 혼다의 추가골, 그리고 가가와의 세번째 골까지. 골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한국 선수들을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다.
삿포로 돔은 4만여명의 일본팬들이 한꺼번에 함성을 내지르자 소리는 메아리 쳐 계속 허공을 맴돌았다. 580여명의 '붉은 악마' 응원단은 한국 선수들이 움츠러 들면 들수록 더 크게 '대~한민국'을 외치고, 북을 치고, 꽹과리를 쳤다. 하지만 이날만은 더이상 한국이 아시아의 맹주가 아니었다. 삿포로=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