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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닷컴 이우주 기자] '유퀴즈' 박정하 씨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던 매몰 사고의 기억을 털어놨다.
박정하 씨는 27년 경력의 광부. 박정하 씨는 "제가 오후 출근조여서 4시에 입갱을 했다. 5시 38분에 광산이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박정하 씨는 63빌딩 정도 되는 깊이였던 190m 아래 고립됐다.
박정하 씨는 "처음 붕괴되기 시작할 때는 굉음이 너무 컸다. 엄청난 양의 암석, 폐기물이 쏟아져서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었다. 6~7m 후방에서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2시간이 지나니까 좀 잠잠해져서 확인해보니까 파이프, 나무가 얽혀있더라. 탈출을 할 수 없었다"며 "같이 있던 동료는 온지 4일밖에 안 된 친구였다. 주저 앉아 울면서 겁을 내더라. 이 안에서 최소한 버텨낼 수 잇는 조건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해서 비닐을 모아서 바람을 피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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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하 씨의 아들 박근형 씨는 "그날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는데 밥을 먹느라 길게 통화를 못했다.밥 먹으려고 끊었던 게 그게 너무 후회되더라"라고 밝혔다.
구조가 되지 않을까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박정하 씨는 "구조작업을 하다 보면 큰 소리가 들리는데 아무 소리도 안 들려서 우리 위치를 잘못 알고 있나 싶었다"며 "같이 간 친구가 겁이 많았다. 되지도 않는 인터폰을 켜고 농담을 하면서 친구를 안심시켰다. 이 친구가 있어서 저도 버틸 수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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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식량과 연료들은 떨어져갔고, 두 사람의 두려움은 점점 커졌다. 박정하 씨는 "우리 곁에 있던 것들이 한 가지씩 전부 없어지는 상황이었다. 옷을 말리면서 처음으로 후배한테 우리 희망이 없어 보인다고, 대비하자고 했다. 그 얘기를 하는 순간 두려움, 공포가 한 순간에 몰려오는데 가슴이 터질 것 같더라"라고 밝혔다.
박정하 씨는 "장작 여섯 개비 피워봤자 2시간 뿐이다. 마지막 방법은 비닐 움막을 몸에 감는 것뿐이었다"며 "죽는 게 이런 거구나 싶어 진짜 무서웠다. 신에게 1분만 달라고, 아내 손 잡고 고생시켜서 미안하다고 말 할 시간만 달라고 빌었다"고 떠올렸다.
그때 박정하 씨에게 '발파'라는 소리가 들렸고, 곧 불빛이 보였다. 동료들은 박정하 씨를 찾았고, 박정하 씨와 후배는 기적적으로 구조됐다.
박정하 씨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을까. 박정하 씨는 "우리는 산업전사라는 자부심을 갖고 일했다. 모든 산업은 기계화되고 있는데 채광 방식은 70년대 말과 똑같다. 얼마나 위험에 노출되어있겠냐"며 "위험에 노출되어 일하는 동료 광부들의 처우나 근로 조건이 개선돼서 '힘들지만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예전의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환경 개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wjle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