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문지연 정빛 기자] "그냥 어떤 애"에서 이제는 전세계에 우뚝 섰다. 이미 세계적인 모델로서 이름을 날렸던 정호연은 자신의 발전 가능성을 하나 더 확인하며 이제는 배우로서도 전세계의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것. 첫 연기 도전작이었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통해 정호연은 '글로벌 배우'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스타가 돼 있었다.
수많은 해외 시상식에서도 수상 낭보를 전해왔던 정호연이다. 특히 제 28회 미국배우조합상(Screen Actors Guild·SAG)에서는 드라마 시리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제 2회 크리틱스 초이스 슈퍼 어워즈에서도 액션 시리즈 부문 여자 연기상을 수상하고 돌아왔다. '오징어 게임'의 새벽을 통해 해외에서도 인정받은 것. 이와 더불어 지난 7월 개최된 제1회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도 신인여우상을 수상한 정호연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설레고 긴장됐다"는 소감을 전했다.
수상의 열기와 기쁨이 채 가시지 않았던 어느 날, 스포츠조선과 다시 만난 정호연은 "상을 받았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하지?'를 먼저 생각했다. 아무리 몇 번이고 무대에 올라가 보더라도 매번 떨리는 것 같다. 머리가 새하얘지고, 정신을 제대로 붙잡지 않으면 말이 하나도 생각이 안 나더라. 분명 '정말 잘 할 수 있어!'하고 다짐을 몇 번이고 했는데도 걸어가면서 '어떡하지'했었다. '오징어 게임'이라는 작품 자체가 저에게는 작품의 성과보다도 거기서 만난 모든 스태프들, 사람들에게 너무 고마웠고 하나 하나가 너무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그래서 제 개인적 이야기보다는 그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올라갔었다"고 회상했다.
수많은 성과 속에서도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의 상은 남다른 의미를 지녔다. 해외에서 받아냈던 트로피들 사이, 한국에서 인정받은 이 성과 역시 정호연의 마음에 깊이 남은 것. 정호연은 "1회에 후보가 되고, 수상까지 했다는 것 자체가 누구에게나 오는 기회는 아닌 것 같다. 거기에 계신 많은 분들과 함께 1회를 함께 나누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여러 글로벌 팬분들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한국 팬분들을 만나고 한국 관계자들을 만나고, 한국에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좋다. 진심이다. 이건 어쩔 수 없나 보다"라며 웃었다. 또 정호연은 "해외에서 여러 상을 받고 활동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저의 원동력이 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날이 너무 좋았다. 한국에서 제 얼굴이 더 좋다고들 하시는데, 아무래도 나라가 주는 에너지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항상 여기에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삶은 수없이 변화했다. 지난 1년은 정호연에게는 잊을 수 없는 변화의 소용돌이였다. 정호연은 "연기를 시작하겠다고 스스로 마음을 먹고는 '어느 정도 삶이 달라져야겠구나, 쓰는 에너지의 종류도 달라질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변화에 대해 고민해왔다. 또 저 스스로를 변화시키려고 굉장히 노력해왔었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 이후의 이 변화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변화였다. 누가 준비가 돼있겠느냐만, 처음에는 정말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연기를 조금 더 고민하면서 디테일하게 만들어내고 싶은데, 뭔가 한 번에 확 변화하다 보니 제 연기도 그렇게 변화해야 할 것 같더라. 사실 저는 아직 한 작품밖에 안 한 배우인데, 너무 큰 사랑을 한 번에 받다 보니 '해내야 해'하는 강박이 생겼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최근 정호연은 '오징어 게임'을 마친 뒤 해외 여러 작품에 주축이 돼 활약하는 중이다. 조 탈보트 감독의 영화 '더 가버니스' 촬영과 함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애플TV+ 시리즈 '디스클레이머'도 촬영했다. 때문에 국내보다는 해외 체류기간이 훨씬 더 길었던 그다. 정호연은 "최근 해외에서 작품을 하면서 스스로 '아 지금은 계속해서 나를 깨부수는 과정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저는 사실 연기를 잘 하지는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진짜 열심히 할 수 있고 최선을 다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에 있던 이상한 강박과 불안이 조금은 해소가 됐다. 차근 차근, 이렇게 가면 되겠다 싶었다. 수상소감에서도 '한 발 한 발 열심히 가보겠다'고 했는데, 정말로 멀리뛰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연기자라는 직업은 저에겐 '스텝 바이 스텝'이 있는 직업인 것 같다. '오징어 게임'의 새벽을 통해 한 스텝, 또 다른 작품에서 한 스텝을 나아가면서 제가 나중에 중년을 넘어갔을 때 연기가 오히려 스스로 기대된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글로벌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정호연에게는 불안감도 동반자다. 정호연은 "너무 생각지 못한 일들, 너무 좋은 일들이 생기다 보니 불안감이 생기기도 했다. 왜냐면 정말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정말 정신일 잘 붙들고 '잘 해낼 수 있어! 해낼거야!'라고 할수록 불안감이 오히려 더 커지는 듯한 경험을 했다. 그래서 '아 이걸 스스로 내려놓고, 깨부수고, 계속 현장에서 나를 발가벗겨놓은 상태로 놔두는 게 나쁜 일이 아니구나'를 느꼈다. 나의 모든 것을 꺼내놓고, 거기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하나씩 성장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뭘 하나를 책임지고 '해내겠어!'라고 할수록 남의 도움도 더 못 맏게 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일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고, 또 하나 배웠다"고 말했다.
이미 글로벌 모델로 활약하고 있던 정호연이지만, 이제는 세계가 주목하는 배우가 됐다. 과거에는 큰 영화의 동양인 출연인 정도였던 국내 배우들의 위상도 K-콘텐츠 바람을 타고 높아졌다.
"해외에서 '이 분이 나를 알아?'하는 경우도 있었다. 메릴 스트립도 그랬고 알폰소 감독님도 '오징어 게임'을 봤다고 하셨다. 제가 평소 존경하는 분이었고, 인생에서 단 한 번을 만날 거라고 생각지 않은 분들이 저를 알아보실 때 신기했다. 우리 문화가 정말 글로벌 콘텐츠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모델 일을 하면서도 해외에 나가서 일을 했고, 칼 라커펠트와도 일했는데, 저희가 '주류'가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한혜진 선배님의 활약 이후에 저희도 자리가 넓혀지는 시점이었지만, '우리가 완전히 주가 될 수 있을까' 의문이 있었는데, '오징어 게임'을 겪고 나서는 앞으로는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는 둥글다. 크지 않다."
자신을 "그냥 그런 어떤 얘"라고 소개했던 정호연은 지금은 어떤 "애"가 돼 있을까. 정호연은 "아직 저도 잘 모르겠다. 저 자신에게 이렇다 저렇게 정의를 내리고 싶지 않다. 사람은 변화한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변화하고, 지금 시점의 저는 그냥 연기를 너무 잘하고 싶어하는 초급 연기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1년, 2년, 3년 뒤의 나는 조금 더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해외에서 모델일을 하면서 저는 그냥 전문 업계에 종사하는, 저 스스로는 그냥 외국에서 일하는 일꾼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었는데, 그 뒤에 브이로그를 통해 사람들에게 저를 소개하려니 부끄럽더라. 그런데 그 두 달 후에 '오징어 게임' 덕분에 이슈가 됐는데, 그래서 저는 정의를 내리지 않고 살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정호연은 앞으로 나아간다. 정호연은 "더 차근차근 배워간다고 생각하고 하고 싶다. 연기가 너무 재미있는 것이 해도 해도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다. 할수록 어렵고, 알 것 같다가도 하나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도 뭔지는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것이 또 인생과 닮아 있다는 생각도 했다. 너무 짜릿하고, 그래서 더 재미있지만 두렵다. 저희가 인생을 계획해보려 하지만, 막상 계획처럼 되지 않고, 결국 어느 순간에는 몸을 맡겨서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가게 되는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제 삶에 그런 좌우명까진 아니지만, 그런 마음에 새기는 말 같은 것에 '조금 자연스럽게'가 있다. 연기도 그렇게 해보고 싶은 생각이다. 밖으로는 자연스럽게 흘러가지만, 저는 백조처럼 물 밑에서 발을 세차게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보고자 한다"라는 각오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