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리뷰] "사기캐 이정재X인생캐 정우성"…'헌트' 23년 기다림 헛되지 않은 첩보 액션 랑데부(종합)

조지영 기자

기사입력 2022-07-28 12:19 | 최종수정 2022-07-28 13:17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짜릿하고 섹시하다. 쫄깃하고 화끈하다.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다뤘던 '남산'의 이야기는 모두 잊어도 좋다. 관객이 원하고 기다렸던, 가장 완벽한 엔터테이닝 첩보 액션의 결정판이 사기캐 이정재의 손에서 태어났다.

첩보 영화 '헌트'(이정재 감독, 아티스트스튜디오·사나이픽처스 제작)는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안기부 요원들이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올해 5월 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을 통해 전 세계 최초 공개된 데 이어 마침내 지난 27일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 국내에서도 베일을 벗었다.


'헌트'는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간혹 다뤄졌던 '남산 누아르'의 계보를 계승하면서도 또 반대로 전혀 다른 결의 '남산' 영화를 완성한 노력이 곳곳에 엿보인 완성형 첩보 액션물로 모습을 드러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점으로 전두환 정권의 폐허를 정공법으로 파고든 '헌트'는 안기부 내의 스파이 색출이라는 가면 아래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쫓고 쫓기는 사냥을 촘촘하고 정교한 심리전으로 풀어내며 장엄한 파국을 완성했다. 여기에 장교 이웅평 월남 사건, 아웅산 테러 사건 등 실제 한국 근현대사를 뒤흔든 굵직한 사건을 중요한 순간 적절히 투입해 스토리의 진정성과 의미를 견고하게 다진 부분도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를 찾은 전두환이 시민 사살 지시를 내리는 설정 아닌 설정을 다룬 지점은 감독의 과감한 용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대목으로 관객을 뜨겁게 달군다.

실화로 얻은 스토리의 힘을 원동력으로 쉼 없이 전력 질주하는 액션도 매력적인 페로몬을 뿜어낸다. 도심을 종횡무진 누비는 카체이싱부터 화끈하게 난타하는 총격전, 대규모 폭파까지 첩보 액션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쾌감을 쏟아 부었다. 총기 액션과 카체이싱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서 무려 1만발의 총탄과 520대의 차량이 투입된 압도적 스케일과 다채로운 액션은 고도의 심리전과 함께 관객들로 하여금 숨 쉴 틈 없는 긴장감과 몰입감을 자아내며, 엔터테이닝 무비로 극강의 재미를 선사한다.


첫 연출에 나선 이정재는 '헌트'를 통해 숨겨진 뛰어난 연출 감각에 대한 평가를 새롭게 받을 전망이다. 첩보 액션물 특유의 장르적 쾌감을 살림과 동시에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연출자 적 시각을 확고하게 담아낸 이정재는 '헌트'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125분 내내 부족함 없이 보여준다. 직접 제작은 물론 각색, 그리고 연출 및 출연까지 도전한 이정재는 '짝사랑'이 '찐사랑'으로 진심을 다해 '헌트'에 다가갔다.


이정재 감독의 성공적인 연출 데뷔도 돋보이지만 그의 오랜 동료이자, 깐부, 그리고 부부로 불리는 소울메이트 정우성의 인생 연기도 '헌트'의 완성도에 크게 기여했다.

농담 반 진담 반 '헌트'의 출연을 사고초려(四顧草廬) 했다는 정우성은 5·18 민주화운동에 가담한 군인 출신으로 안기부 국내팀 차장을 맡게 된 이후 안기부 해외팀 차장 박평호(이정재)와 끊임없이 대립하는 인물로 강렬한 변신에 나섰다. 조직 내 스파이를 색출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박평호의 숨통을 쥐고 흔드는 김정도 그 자체가 된 정우성은 단단하고 굳건한 신념을 지키려는 과정에서 빠지는 딜레마를 묵직하고 강직하게 담아 '헌트'의 촘촘한 서사를 더욱 짙고 여운 있게 만들었다. 가히 '인생 연기'라고 해도 아깝지 않은 '헌트' 속 김정도로 엔딩까지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태양은 없다'(99, 김성수 감독) 이후 '헌트'로 23년 만에 호흡을 맞춘 이정재와 정우성은 23년 전 도철(정우성)과 홍기(이정재)의 중년 버전으로 보다 더 농후하고 노련해진 케미스트리를 자아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제대로 빼앗는다. 경쟁 구도에 있는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현장에서도 사적인 교감을 배제, 치열하게 캐릭터에 빠져든 두 사람의 만남. 함께할 때 더욱 빛나는 시너지가 '헌트' 안에 고스란히 녹여져 있다. 23년의 기다림이 결코 헛되지 않은 의미 있는 랑데부다. 더불어 각각 두 사람의 편에 선 전혜진, 허성태, 그리고 고윤정까지 쫀쫀한 서스펜스를 이끌며 환상의 앙상블을 구축했다.


'헌트'는 '외계+인'(최동훈 감독) '한산: 용의 출연'(이하 '한산', 김한민 감독) '비상선언'(한재림 감독)에 이어 올여름 극장가 빅4 마지막 주자로 등판했다. 순제작비 기준 '외계+인' 1부가 330억원(730만명), '한산'이 280억원(600만명), '비상선언'이 260억원(500만명)의 버젯으로 제작된 대규모 블록버스터이지만 '헌트'는 앞선 세 작품보다 다소 가벼운 195억원(420만명) 규모의 미들급 작품으로 관객을 찾는다.

비교적 소박한(?) 위용으로 여름 극장 마지막 순번 이름을 올린 '헌트'지만 실체는 결코 최약체가 아님을 작품을 통해 입증했다. 모름지기 뚝배기보다 장맛이고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법이다. 최약체의 탈을 쓴 '헌트'의 본체는 사실상 올여름 빅4 중 호불호 리스크가 가장 낮은 최강체였던 것. 엔터테이닝 무비로 손색이 없는 수작으로 괴물 같은 면모를 드러내며 흥행 청신호를 켰다.


'헌트'는 이정재, 정우성, 전혜진, 허성태, 고윤정, 김종수, 정만식 등이 출연했고 이정재 감독의 첫 연출 데뷔작이다. 오는 8월 10일 개봉한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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