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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먹다' 이연복, 우리가 몰랐던 파란만장 과거史…#도박 중독 #재벌설 #후각 상실 [SC리뷰]

이우주 기자

기사입력 2020-11-03 06:50



[스포츠조선닷컴 이우주 기자] '밥먹다' 이연복이 중식에 입문한 계기부터 여러 고비를 딛고 대가가 된 과정을 떠올렸다.

2일 방송된 SBS 플러스 예능프로그램 '밥은 먹고 다니냐-강호동의 밥심'에서는 중화요리의 대가 이연복 셰프가 출연했다.

패널들을 요리 실력으로 긴장하게 한 주인공은 이연복 셰프. 이연복 셰프는 '밥심'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몸이 안 따라줘서 은퇴도 생각하고 있다. 솔직히 많이 힘들다. 예전 같지 않다"고 고백했다. 이연복 셰프를 위해 강호동이 준비한 요리는 아귀찜. 이연복 셰프는 아귀찜을 좋아하는 이유로 '후각 상실'을 꼽았다. 이연복 셰프는 "26살 때 축농증 수술을 했는데 신경을 건드려서 냄새를 못 맡는다"며 "(후각을 되찾기 위해) 수술을 네 번을 했다. 근데 안 된다. 햇양파 나올 때 사과랑 햇양파를 눈감고 먹어봤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라고 털어놔 모두를 놀라게 했다. 레시피를 과거 기억을 토대로 만들었다는 이연복 셰프는 "우리 젊을 땐 트러플, 허브 같은 게 없지 않냐. 그 향을 모르니까 그런 걸 잘 안 쓴다" 설명했다. 이후 입맛이라도 잃지 않기 위해 술 담배를 끊고, 간을 제대로 보기 위해 아침도 먹지 않는 노력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연복 셰프는 다사다난했던 과거를 떠올렸다. 화교 출신인 이연복 셰프는 외국인 학교를 다녀 어마어마한 등록금을 내야 했다고. 이연복 셰프는 "우리 때는 등록금을 못 내면 일어서서 수업을 들어야 했다. 어린 나이지만 자존심이 상하고 학교에 가기 싫더라"라며 결국 13살의 나이에 중식당에서 배달일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성년자였던 이연복 셰프에게 큰 액수의 월급을 줄 리가 만무했다. 이에 이연복 셰프는 월급을 더 주는 주방으로 가야 겠다 결심했다고. 이연복 셰프는 "그땐 주방장 빼고 합숙을 했는데 사장님이 퇴근할 때 밖에서 문을 잠갔다. 숙소가 2층이었는데 창문에서 뛰어 내려서 다른 식당 주방으로 갔다"고 떠올렸다.

주방에서 막내 이연복 셰프에게 요리 기술을 알려주진 않았지만 이연복 셰프는 어깨너머로 독학해 스스로 레시피를 만들었다. 이연복 셰프는 "내 레시피는 정통에서 좀 벗어난다. 남들이 하는 그대로 하는 게 싫다"고 자신만의 차별화 전략을 설명했다.

노력 끝에 꽃길이 오는 듯 했다. 19살에 선배 덕에 운 좋게 한국 최초의 호텔 내 중식당 셰프로 입성했다는 이연복 셰프. 하지만 "주방에 사람이 많다 보면 항상 시끄럽다. 내 밑에 친구들에 새로 들어왔는데 특정 후배를 유독 괴롭히더라. 내가 싸움을 말리는데 욕을 하더라. 화가 나서 때렸는데 머리가 깨지고 패싸움이 됐다"고 이 사건으로 3년 만에 잘렸다고 고백했다.

이후 호텔에서 배운 기술을 살려 22살의 나이로 대만 대사관의 최연소 주방장이 되는 기회를 얻었다. 이연복 셰프는 "그때는 호텔 주방장이 70만원 정도 받았는데 나는 이것 저것 환산해서 250만 원을 받았다"고 밝혀 모두를 놀라게 했다. 당시 직장인 평균 월급이 30~50만 원이었던 80년대의 일이었다.

가난에서 벗어나 갑작스러운 부를 얻게 되자 돈을 헤프게 썼다는 이연복 셰프. 이연복 셰프는 잦은 지각으로 대사의 분노를 부른 사고까지 쳤다며 "한 번은 대사가 너무 화가 나서 나를 불렀다. '나 대사야. 네가 나를 밥을 굶겨?'(라며 화를 내더라) 세네 달 열심히 하다가 또 지각했다"고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패널들은 그럼에도 잘리지 않은 이연복 셰프에게 "손맛 덕분"이라고 밝혀 웃음을 안겼다.
승승장구하던 이연복 셰프에게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당시 지인들이 버블경제로 경제 호황기였던 일본으로 가 큰 돈을 벌기 시작한 것. 일본에 가자는 지인의 말에 이연복 셰프는 대만 대사관에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대사는 아들이 미국에서 식당을 운영한다며 미국으로 가자는 제안을 했다고. 하지만 이연복 셰프는 "젊은 날의 패기가 문제였다. 그만둔다고 했는데 다시 알겠다고 하기가 그랬다"며 미국이 아닌 일본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아이들도 부모님께 맡기고 아내와 단둘이 일본에 갔지만 시련의 시작이었다. 예정보다 늦게 도착했다는 이유로 이미 다른 직원이 고용됐던 것. 설상가상 일본의 사행성 게임 파친코에 빠지기까지 했다는 이연복 셰프. 이연복 셰프는 "제어가 안 된다. 두어달 지나니까 나중에 생활이 피폐해지더라"라며 "내가 힘들고 사고칠 때 우리 아내가 돈도 빌려오고 다 했다. 그런데 나한테는 기죽을까 봐 얘기를 한 번도 안 했다"라고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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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힘든 건 아이들과의 생이별이었다. 이연복 셰프는 "밤마다 통화를 하는데 통화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짠하다. 지금도 가끔 일본이 생각나서 놀러 가면 공중전화가 생각난다"고 고백했다.

그러던 중 일본 술집 주방장 일자리가 들어오며 다시 일하게 됐다며 "안주 만들기는 너무 쉬웠다. 어느날 한 손님이 맛있는 걸 만들어달라 해서 마음대로 음식을 만들었다. 그게 소문이 나서 가르쳐달라는 사람들이 생겼고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마침 사장이 부르더니 음식 재료비가 너무 많이 나온다더라. 매출 올린 건 생각 안 하고"라며 다른 곳으로 이직해 2년 만에 한국에서 집을 샀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일하던 중 아버지의 비보를 접한 이연복 셰프. 이연복 셰프는 "가족들이 우는데 눈물이 안 나더라. 방에 혼자 들어가니까 그때서야 눈물이 쏟아졌다. 항상 '조금 더 벌면 효도해야지' 했는데 말이 안 된다. 돈이 없더라도 따뜻한 말 한 마디하는게 진짜 효도인데"라고 애통해했다.

이연복 셰프의 일을 이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아들 홍운 씨는 기러기 아빠 생활로 이연복 셰프와 똑같은 길을 걷게 됐다. 이연복 셰프는 아들 홍운 씨에 대해 "트러블이 많다. 이상하게 잔소리를 많이 하게 된다"며 "사실 믿을만하기 때문에 잔소리를 하는 건데 오해가 생겼다"며 엄격한 호랑이 스승 역할로 아들을 서운하게 했다고 밝혔다. 친구처럼 같한 사이였지만 어느새 아들은 자신을 무서워하게 됐다고.

하지만 홍운 씨는 이연복의 속마음을 알고 있었다. 홍운 씨는 영상편지를 통해 "엄한 아버지, 카리스마 넘치는 아버지, 이런 모습이 저한테 때로는 무섭게도 느껴진다. 근데 저는 정말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돼서 더 큰 보답이 되어드리고 싶다"고 전했고, 이연복 셰프는 감동 받은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이연복 셰프는 "요즘 트러블이 있었다. 은퇴 고민이 있어서 더 조급하다"며 "얘한테는 더 많은 사업을 하게 하고 싶다. 정말 많은 제안이 있는데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된다)"고 아들에게 유독 엄격하게 대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이연복 셰프는 항간에 재벌이라는 설이 떠돈다고. 이에 대해 이연복 셰프는 "좀 억울한 게 있다. 요식업이라는 게 돈이 많이 나간다. 잘 안 되면 요즘은 힘들다. 정 못 믿겠으면 연희동 은행에 가서 내가 대출을 얼마나 받았는지 확인해봐라"라고 억울해했다.

갑작스러운 은퇴 언급에 패널들이 걱정의 이어졌다. 하지만 이연복 셰프가 의미한 '은퇴'는 요리하는 시간을 점차 줄여나가는 것. 이연복 셰프는 "요리한 시간이 원래 10시간이었다면 이제 좀 줄이고 관리를 담당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방송 말미 이연복 셰프는 "여기서 밥 먹으니까 생각이 바뀌었다. 힘이 났다"고 충분히 충전됐다고 흐뭇해했다.

wjle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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