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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닷컴 정안지 기자] '밥은 먹고 다니냐' 김수찬, 노지훈, 류지훈이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사를 털어놨다.
세 사람은 배고팠던 시절을 언급했다. 김수찬은 "고1 때 1년 동안 편하게 지내기 위해 담임선생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렀다. 그 일을 계기로 트로트 가수의 꿈을 키우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교장 선생님이 보시고, 교장 선생님 추천으로 청소년 가요제 나가서 대상 타고 전국 노래자랑에 나갔다"고 떠올렸다.
김수찬은 "'금수저일 것이다'고 오해를 많이 하셨다"면서 "어려서부터 엄마의 영향을 받아 긍정적이었다. 비가 많이 와 집에 물이 넘치면 엄마와 누가 물을 더 많이 푸는지 내기를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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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훈은 "2년 동안 방탄소년단과 숙소 생활을 했다"면서 "'위대한 탄생'을 하면서 시혁이 형이 '같이 준비 해볼래?'라고 해주셨다. 숙소 생활을 해봐라 해서 했다"고 했다. 그는 "꿈이 솔로가수였다. 제2의 비를 꿈꿨다. 때 마침 비를 만드신 대표님께서 러브콜이 왔다"면서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엄청나게 준비했던 친구들이어서 내가 거기에 있었어도 방탄소년단이 되진 못했을 것 같다"고 했다.
노지훈은 트로트로 전향하게 된 계기도 전했다. 노지훈은 "무대에 서고 싶었다. 많은 러브콜에 연예인병에 걸렸었다"면서 "댄스 가수로 데뷔를 했는데 그 이후로 공백기가 길었다. 슬럼프가 오더라.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해봤다"고 털어놨다. 그는 "할 줄 아는게 노래 밖에 없더라. 노래와 무대만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우연히 무속인 삼촌이 '트로트 해봐라'라고 하셨다. 당시는 거절했지만, 그때부터 트로트를 듣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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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훈은 "당시 저는 친척 집을 전전 했고, 누나들은 찜질방에서 생활을 했다"며 "누나들의 희생이 없었으면 내가 이 자리에 없었을 것 같다"며 누나들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아버지의 유언이 '가슴에 태극기를 달아라'였다. 그래서 열심히 했다. 운동이 회비, 훈련비가 많이 든다. 누나들이 뒷바라지 해줬는데 염치가 없더라"며 "그래서 더 열심히 했서 청소년 국가대표까지 발탁이 됐는데 중학교 3학년 때 무릎에 큰 부상을 당했다. 십자인대 100% 파열이었다. 이후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다 보니 '다했다'는 느낌이 왔다"고 털어놨다. 노지훈은 "가수의 꿈을 중학교 3학년때부터 꿨다. 다친 이후로 위로를 해주고 받은 게 음악이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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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축구선수를 꿈꿨다는 류지광은 어머니의 잘못된 보증으로 가정형편이 기울어지자 축구를 포기했다고. 류지광은 "부모님이 성실하다. 진짜 열심히 하셔서 6년 만에 다 갚으셨다"며 부모님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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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광은 "어려웠을 때 휴대폰 비를 내주고, 행사를 잡아주고 맛있는 걸 사줬던 분들이 계시다. 얼마 전에 마음껏 드시라고 한우를 쐈다. 그 마음이 너무 좋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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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김수찬은 영원한 스승으로 남진을 꼽았다. 김수찬은 "19살에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경험하지 못한 것을 표현할 때 남진 선생님이 '노래라는 건 연기다'고 해주셨다"면서 "충분이 연기로 그 마음을 대중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며 가수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주셨다"고 했다. 그는 "'전국노래자랑'을 보시고 남진 선생님이 연락을 주셨다. 그때 이후로 2년 반 동안 현장 연습생을 하게 됐다"면서 "그때의 경험이 무대의 담력을 쌓는 데 좋은 기회였다"고 했다.
노지훈은 스승으로 아내를 꼽았다. 그는 일찍 결혼한 이유에 대해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게 영향이 컸다.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인생의 꿈은 사랑이었다"고 했다. 노지훈은 "아내를 통해서 많은 것 들을 도전하고, 많은 걸 극복하고 많은 걸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됐다"며 아내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anjee8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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