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종합]"갈수록 어려운 연기, 난 운 좋은사람"…'후쿠오카' 권해효, 배우로 살아온 30년

이승미 기자

기사입력 2020-08-21 15:15


[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연기 인생 30년. 난 운이 좋은 사람이죠."

28년 전 한 여자 때문에 절교한 두 남자와 귀신같은 한 여자의 기묘한 여행을 담은 영화 '후쿠오카'(장률 감독, ㈜률필름 제작). 극중 해효 역을 맡은 권해효(54)가 21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 스윗라운지에서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1990년 연극 '사천의 착한 여자'로 데뷔한 이후 연극, 드라마, 스크린까지 경계를 넘나들며 100여 편 이상으 작품에서 관록의 연기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아온 30년차 배우 권해효. 특히 올 여름 초대형 액션 블록버스터 '반도'에서 폐허가 된 반도에서 희망을 놓지 않는 김노인 역으로 분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그가 시네아스트 장률 감독의 신작 '후쿠오카'를 통해 전혀 다른 얼굴과 매력을 선보인다.

극중 권해효가 연기하는 해효는 사회 격변, 혁명, 사랑이 치열하게 뒤섞였던 80년대의 기억에 머물러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로 일본 후쿠오카에서 작은 술집을 운영하고 있다. 어느 날 첫사랑 때문에 28년째 앙금을 쌓고 있는 대한 후배 제문(윤제문)이 신비한 매력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소담(박소담)과 함께 일본으로 자신을 찾아오자 한껏 짜증을 내지만 함께 후쿠오카 도시를 여행하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이날 권해효는 최근 교회 등을 중심으로 갑자기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불안한 시국에 극장 개봉을 하게 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후쿠오카'는 2018년에 촬영을 하고 작년에 개봉을 하려 했으나 제목이 '후쿠오카'라서 반일 분위기로 개봉이 올해 초로 개봉이 미뤄졌었다. 그러다가 신천지로 인한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으로 또 개봉이 미뤄졌다가 이제야 극장에 개봉을 하게 됐다. '반도'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으로 극장이 재개될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또 급격히 퍼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안타까운게 사실이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일본 후쿠오카에서 진행된 10일간이 촬영이 자신에게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권해효는 "2018년 촬영을 했는데, 결혼생활 24년만에 아내와 4일이상 떨어져 본게 처음이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어 "이후에는 '보고타' 해외 촬영 때문에 좀 떨어져보긴 했는데, 당시에는 처음있는 일이었다"며 "그래서 걱정을 했는데, 생갭다 즐겁게 촬영했다. 저에겐 특별한 경험이었다. 타국의 도시에 영화 작업을 하는데, 영화 촬영을 제외하고는 온전히 나혼자 보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덧붙였다.

극중에서도 자신의 본명을 그대로 쓰는 '후쿠오카'. 권해효는 그 역시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다며 "극중에서 본명을 쓴다는건 배우에게는 굉장히 불편한 일이다"며 쑥쓰럽게 웃었다. 이어 "예를 들면 제가 예능 같은 걸 잘 못하겠는 이유도 배우가 아닌 '자연인 권해효'로서 보여지는게 불편하기 때문이다. 저의 특별한 성향일지도 모르겠다. 배역은 수행하는 역할이다. 그런데 권해효가 권해효의 역할을 한다는 건 굉장히 생경한 느낌을 주더라"고 말했다.
자신만의 색이 뚜렷한 장률 감독의 영화에 대해 "장률 감독의 영화는 타지에 떨어진 이방인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보니까, 촬영할 때마다 모르는데로 소풍을 가는 느낌이 들더라"고 말했다.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또 다른 감독인 홍상수 감독과는 여러편의 작업을 해왔던 그는 장률 감독과 홍상수 감독과의 촬영을 비교하며 "홍상수 감독과의 작업은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오늘은 어디를 가야 하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차에 올라타는 느낌이라면 장률 감독의 작업은 '오늘은 어디를 간다는데, 가서 어떻게 놀지?'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상수 감독과 장률 감독은 완전히 결이 다르다고 강조하면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있는건 아니지만 누군가의 대화를 깊이 있게 들어보게 만들어 사람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하지만 장률 감독의 영화는 관객도 새로운 곳에 여행을 간다는 느낌을 주게 만드는 영화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또한 장률 감독은 현장에서 굉장이 개구쟁이 같다. 현장에서 벌어진 수많은 요소들을 보고 '바로 그걸로 하자'라고 말하기도 한다"며 "장률 감독님을 처음 보고 '스타워즈'에 요다를 닮았다고 했었다. 그런 분이 현장에서는 아이처럼 바뀌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장률 감독 특유의 모호한 표현과 설정들에 대해서는 "장률 감독의 영화에서는 인물들을 모두 이해하기는 어렵다. 자연스러운 일상성을 획득하려는 영화는 아니지 않나"라며 "그런 것에 대해 모두 이해하려고 하고 모든 것을 감독님께 묻는다면 지루할 것 같다. 굳이 감독님께 질문을 하려하지도 않는다. 그저 주어진 신에 대해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거다"고 설명했다.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먼저 공개됐던 '후쿠오카'. 권해효는 이때 관람한 관객의 반응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는 "서독제에서 일부 관객들이 젊은 여성과 40대 후반의 남성이 함께 걷는 모습이 불편하다는 반응이 있더라"라며 "요즘 한국 사회가 남녀간의 문제가 그냥 남녀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위계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직위, 나이, 이런 것들이 깊이 베여있다 보니까 그렇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 것 같다. 요새 워낙에 흉흉한 일이 많다보니가 그런 시선으로 보는 시각이나 의견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해효는 오랜 시간 연극 무대에서부터 오랜시간 함께 해온 윤제문과의 연기 호흡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제문 씨와는 아주 오랜 시간 무대에 서왔고 늘 친한 친구였다"는 그는 "저는 윤제문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귀엽다"며 "등장과 동시에 영화의 공기를 바꾸는 배우는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윤제문은 그걸 하는 배우다. 등장만 해도 '헉'하게 되는게 있다. 그리고 선함과 악함, 아이같음과 어른같음의 경계에 있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올해 벌써 연기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권해효. 그는 "벌써 30년이 됐다. 그렇게 오래했는데도 아직도 이렇게나 못하나 싶다. 연기란건 하면 할수록 어렵다. 배우가 나이가 들어가면 굉장히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연기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보니 만만치가 않더라"고 소회를 밝혔다.

30년간 배우로서 살아온 그는 자신을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표현한 그는 "지금까지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건 능력이나 서포트로 가능한게 아니다. 정말 운이 중요하다. 이런 쇼비지니스에서, 일년에서도 수백 수천명이 뜨고 지는 이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빚지지 않고 내 몸뚱아리를 내세워 누군가의 것을 뺏지 않고 살아왔다는게 큰 행운인 것 같다"며 웃었다.
그리고는 '배우라는 직업이 천직인 것 같냐'라는 질문에 "천직은 아닌 것 같다. 과연 천직이란 게 있을까 싶다. 사실 30대 때만해도 배우 일은 언제든 때려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답해 눈길을 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배우로서 살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묻자 "일단 운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무언가를 절박하게 하는 것도 좋지만, 이 일이 절박하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걸 늘 생각해 왔다. '아니면 말고'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이 일은 견디기 힘들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거리두기를 늘 해왔던 것 같다. 이 직업의 영역군에 갇히는게 아니라 그 밖에서 내가 모르고 있던 세상에서 거리두기를 하면서 바라봤던 것 같다. 그게 도움이 되거나 힘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후쿠오카'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 '춘몽'(2016), '필름시대사랑'(2015), '경주'(2013) '두만강'(2009), '이리'(2008), '망종'(2005) 등을 연출한 장률 감독의 신작이다. 권해효, 윤제문, 박소담이 출연하며 오는 27일 개봉한다.

이승미 기자 smlee0326@sporthschosun.com 사진 제공=(주)인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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