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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닷컴 김수현기자] 김태원이 과거 힘들었던 시절부터 예능 대세, 가족 이야기까지 솔직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태원은 전설의 록밴드 '부활'의 리더로 거의 모든 곡을 작사 작곡한 능력자였다. 김태원은 잘 차려진 백반에 "조금 짜다"고 말했고, 윤정수는 '짜면 물 부어, 싱거우면 소금 넣어'라는 '밥먹다'의 표어를 가리켰다.
그때 김수미가 환한 미소와 함께 김태원을 맞이했다. 김수미는 "조금 야위웠다"고 걱정했다. 김태원은 "작년에 아팠다. 간에 문제가 와서 쇼크가 왔다. 술을 평생 마셨다. 소주 마니아다. 전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부유한 지인의 초대를 받았다. 한 병에 100만 원 짜리 와인이었는데, 와인은 처음에 안취하지 않냐. 100만 원 짜리인걸 까먹고 10병을 마셨다. 그 뒤로 그 분을 다시는 못 봤다"고 말했다.
김수미는 "예능을 보면서 '저 사람은 정말 순진한 사람이구나. 음악밖에 모르는 구나' 싶었다"라며 "전인권 씨를 요리 수제자로 만났는데 물가도 모르고, 연락도 안되고 세상 물정을 모른다"라고 말했다.
김태원은 "인감증명서 뗄 때 주민등록증이 필요한 건 안다. 두 번 움직이는 것 제일 싫어한다"라고 농담했다.
과거 대세 예능인으로 활약했던 김태원. 그는 전국민에게 각인된 2009년 첫 광고로 "혼자왔니?"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었다. 그는 "저 광고 찍을 때 스키를 한 번도 탄 적이 없어서 리프트도 처음이었다. 찍을 때는 몰랐는데 완성된 걸 보고 감탄했다. 슈퍼에 갔는데 내 얼굴이 움직이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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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뮤지션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살벌했다. 시선들이 칼날 같았다. '배신이다' '진지한 음악을 해도 객석에서 웃을 것이다'라고 저를 공격했다. 그런데 그건 1986년부터 시작된 일이다. 그때 백두산과 시나위는 메탈을 했고 부활은 록발라드를 했다"라고 밝혔다.
김태원은 "실제로 객석에서 웃는다. 토크를 할 때는 웃는다. 하지만 공연할 때는 운다. 그래서 너무 우니까 토크할 때 '혼자 왔니?' 유행어를 해주면 웃는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과거 윤형빈이 왕비호로 활동할 때 제가 '개콘'에 갔었는데 '웬 할머니가 있어?'라고 말해 그때부터 '국민 할매'가 됐다. 그때부터 1년간 공황상태였다. '국민 할매'라는 별명은 좀 그렇지 않냐. 그런데 휴게소 화장실을 가는 도중에 초등학생들이 단체로 쫓아왔다. 그걸 보면서 전 세대를 아우르는 로커가 됐구나. 부활을 알리려고 했는데 못알리지 않았냐. 알릴만 하면 무너졌는데, 새로운 통로를 발견한 거다. '대중의 호감을 얻는 게 중요하구나' 싶었다"라고 흐뭇해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예능계에서 보기 어렵게 됐던 김태원. 그는 "더이상 보여줄 게 없다고 자가진단을 했다. 내 인기에 거품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당시 '국민 멘토'로 별명이 바뀌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건 오바다 싶었다. 난 그런 정도의 말을 들을 사람은 아니었다"라고 털어놓았다.
또 "더이상 할 얘기도 없었다. 이제부터는 겹치는 거다. 방송마다 이야기가 중복되지 않나. 그럴 바에는 사라지는 게 나았다. 음악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냐. 그래서 2014년에 딱 끝냈다"라고 소신에 대해 밝혔다.
최근 근황에 대해서는 "요양이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몸이 아프니까 글이 좀 써지더라. 부모님의 첫 만남을 소재로 6개월 쉬면서 신곡을 만들었다. 아버지 회사를 지나가던 어머니에게 첫 눈에 반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글로 써봤다. 내리던 비가 그치고 '비가 그쳤는데요'라고 말을 건 한 여자의 모습으로 시작된다"며 감상에 젖었다.
김태원은 "내가 갑자기 (감정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라고 미안해하면서도 "그 다음부터 기억이 안난다. 음반을 사서 들어라"라고 농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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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온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보통은 환자에게 인지를 시켜주지만 저는 그냥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간병은 어머니가 하신다. 평생 어머니 아버지는 애들을 키우느라 애틋함이 없으셨다. 아버지가 치매를 앓으시면서 어머니만 찾게 됐다. 어머니가 그러면서 희열을 느끼시더라. 아버지가 어머니만 바라보는 게 삶에서 처음이신 거다. 다시 신혼을 만나게 됐다"라고 전했다.
부활을 결성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음악하는 친구들끼리 하는 합주실이 있었다. 거기서 만난 친구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서 활약 중인 이태윤과 'THE END'이다. 그 다음은 '부활'이 된 거다. 첫 데뷔 곡은 '희야'였다.
부활은 보컬 이승철을 영입하며 30만 장을 판매하는 인기를 끌었다. 이승철을 포함해 '부활'의 보컬은 총 10명이 거쳐갔다. 김태원은 부활의 노래 BEST 3를 뽑아달라는 말에 "1987년에 '회상3'라는 곡이 있다. 그게 이승철 씨가 '마지막 콘서트'라고 리메이크를 하게 된 곡이다"라며 즉석에서 노래를 불러 감탄을 자아냈다.
김태원은 아내에 대해 "회상3는 아내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다. 아내는 과거 내가 중독 되었을 때 무대에 선 내 모습이 보기 싫다더라"라며 과거에 대해 후회하는 회상을 했다.
김태원이 뽑은 부활 노래 두 번째는 '사랑할수록'이었다. 김태원은 "마지막에는 정신병원까지 들어갔다. 그런데 아버지가 거기 있으면 더 망가질 거라 생각하셔서 서재에 나를 가두셨다. 거기 갇혀 있는 동안 서재에서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의 이야기를 적은 걸 봤다. 희열에 차 있는 글들이었다. 그래서 대마초 등을 한꺼번에 끊게 됐다. 내 인생의 중요한 포인트가 됐다"라며 "모든걸 담은 곡이 '사랑할수록'이다. 그래서 사랑을 받았나보다"라고 털어놓았다.
'사랑할수록'을 부른 보컬 김재기는 녹음을 끝마치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김태원은 "그래서 첫 녹음을 잘 편집해서 앨범을 냈다"며 동생 김재희를 보컬로 영입해 활동했다고. 부활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이었다.
2003년 병원에서 간에서 까만 덩어리가 발견됐던 김태원. 그는 "정밀 검사를 하게 됐는데 문제가 있다더라. 그때 술을 안마시면 글을 못 썼다. 맑은 정신이 더 괴로웠다. 결국 기타를 들고 산으로 갔고, 일주일간 만든 노래가 '아름다운 사실'이었다"라며 "아내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였다. 유작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밀 검사 결과 다행히 오진이었다고.
김태원은 "생사의 기로에 놓이거나 궁지에 몰리면 그때 뭐가 하나 나온다"라며 "이승철의 앨범을 준비하는데 날짜에 맞춰 곡을 만들어야했다. 그런데 곡이 안만들어졌다. 제가 작곡 히스테리가 정말 심하다. 결국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외국으로 떠난다. 나는 나쁜 놈이다. 가족한테도 그 히스테리가 심해져서 결국 떠나게 된 거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가족들이) 떠난 상태에서 혼자 살아보니까 나중에는 음악이고 뭐고 다 필요없더라. '내가 뭐 때문에 사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운전하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끝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거였다"라며 "그날 밤에 꿈에서 이 노래 가사 떠올랐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라는 가사였다. 그 가사를 바탕으로 곡을 썼다. 그때 아내가 제가 위험한 걸 알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이승철 씨와 다시 만나 '네버 엔딩 스토리'가 탄생했다"라고 밝혔다.
결혼 전에도 두 번 김태원의 곁을 떠났던 아내. 김태원은 "한 번은 그 친구가 사라졌다. 내가 그때 각혈하고 안좋았을 때였다. 아내를 찾으러 전국을 찾아다녔다. 알고 보니 우리 옆집에 있더라. 그걸 모르고 전국을 다녔다. 아내 형제의 집을 다 다녔다"라고 말했다. 이에 "아내 분이 궁금하다"라는 말에 "차에 있다. 내 스케줄에 함께 잘 다닌다"라고 아내를 데리고 오겠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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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은 "첫 만남부터 학력고사 320점 만점에 120점을 받았다고 이야기 했다"라고 말했고, 이현주는 "창피한 게 없다"라고 농담했다.
또 이현주는 '음악이 좋았냐'는 말에 "부활 음악이 좋았던 적은 없다"라고 거침없이 이야기 했다. 이현주는 "우리 시대는 팝 세대다. 저는 중학교 때 산울림을 좋아했다"라고 말해 김태원을 머쓱하게 했다. 김태원은 "자존심이 상했었다. 부활 음악을 좋아하질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이현주는 "첫 인상은 아저씨였지만 솔직한 매력이 있었다. 이 사람의 배경 보다는 사람만 보였다.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고 미소지었다. 부모님께는 만남을 숨겼다고. 부모님 뿐만 아니라 오빠 때문도 있었다. 5남 4녀의 8번째 이현주는 "말을 못했는데 사귄 지 4년 됐을 때 새벽에 날 불러냈다. 새벽 3시에 택시 타고 가다가 걸렸다. 그래서 김태원을 데리고 엄마한테 갔다. 4년 만났다니까 더이상 말씀 안하시더라"라고 말했다.
김수미는 "엄마 입장에서는 '4년이면 말리긴 힘들겠다'고 생각하셨을 것 같다"고 공감했다. 이현주는 "저희는 10년 연애하고 결혼했다. 저는 김태원이 첫사랑이지만 이 사람은 따로 첫사랑이 있다"라고 말해 김태원을 말문 막히게 했다.
'결혼하지 잘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순간'에 대해서는 "전에 라디오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밤에 물 떠다 줄 사람이 없어서 아쉽다'고 답했다. 제가 해달라고 하면 다 해주는 자상한 성격이다. 매순간마다 잘하는 사람이었다. 감동할 때가 있다. '당신은 참 착한 사람'이라고 칭찬하면 '나는 착한게 아니라 선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그런 모습이 좋다"라고 말했다.
둘째는 발달 장애가 있다고. 김태원은 "아내가 충격이 컸는데 제가 음악을 핑계로 나몰라라 했다. '나는 아버지가 될 자격이 없는 건가?'라고 생각했다"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현주는 마음이 약한 김태원을 이해했다. 김태원은 "음악을 핑계로 히스테리를 많이 부렸다. 그게 내 인생에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다"라고 말했다.
캐나다로 가게 된 이유에 대해 이현주는 "제가 괴로워서 간 거다. 남편 보다는 아이가 먼저였다. 저는 사실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당시 컴퓨터 카메라로 영상통화를 했는데 고장이 나서 2주간 연락을 못했다. 그때 말 없이 눈물을 흘리더라. 그래서 급하게 둘째만 데리고 귀국했다"라고 전했다.
김수미는 "김태원 씨는 아내를 만나서 굉장히 운이 좋다. 이렇게 신중하게 남편을 사랑하다니. 사랑하고 이해하고는 다른데 그걸 다 해준다. 태원 씨는 건강만 해라"라고 감탄했다.
김태원은 "바람이 있다면 내가 죽는 날 아내가 내 옆에 있는 게 소원이다"라고 말했고, 김수미는 "분위기 좋은데 왜 죽음을 이야기하냐. 부활 아니냐"고 타박했다.
이에 김태우너은 "내가 또 나쁜놈이다"라면서도 아빠 답고 남편 다운 사람이 되겠다. 그게 삶의 목표다. 예전에는 제일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면 지금은 다르다"라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이현주는 "저는 지금처럼만 해줬으면 좋겠다. 건강 관리는 본인이 알아서 잘 해줘야 한다"라고 남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김수미는 "오늘 아내분을 만나보니까 정말 든든하다"라며 엄마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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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희 씨는 "저희는 단순 감기인줄만 알았다. 잠이 쏟아진다며 눕길래 이불을 덮어줬다. 그리고 가방만 놓고 왔는데 그 사이에 심정지가 온 거다"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고작 1, 2분 사이였다. 김수미는 "정말 힘들겠다"라고 걱정했다.
미희 씨는 연이은 형제의 죽음에 우울증과 대인공포증까지 왔다. 그는 "살아갈 희망이 없는 기분이었다"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어머니 역시 "아직도 한 쪽 마음이 쓰라리다"라고 씁쓸해했다.
어머니는 슬픔을 잊기 위해 술에 의존했다. 아버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던 모녀. 미희 씨는 "스무살 때 아버지는 가출하셨다. 오빠가 죽었을 무렵이었다. 경제적인 문제로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다. 지금도 연락을 하진 않는다"라고 말했다.
'언니 장례식에는 안왔냐'라는 말에 미희 씨는 "연락을 해봤는데 안온다더라. 비용조차 보태주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어머니 역시 간경화가 왔지만 미희 씨는 지방간을 앓고 있어 이식이 불가능한 상황. 결국 몸무게를 감량하고 어머니를 위해 간이식을 해줬다.
미희 씨는 오빠를 생각하며 "거기가서는 내 걱정하지 말고 맘 편했으면 좋겠다"며 결국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렸다.
shy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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