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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57, 빅터 플레밍 감독)에서 멜라니 해밀튼 역을 연기한 할리우드 명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104세의 나이를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
1965년 칸국제영화제 최초 여성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한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티에리 프레모 칸 집행위원장은 "그는 할리우드의 여왕이었고 영화사에서도 앞으로 추앙받을 것이다"고 밝혔다.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의 사망 소식에 미국 영화배우조합(SAG-AFTRA) 가브리엘 카테리스 회장 역시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재능이 있었다. 용감한 선지자였고 시대에 영감을 줬다. 경이로웠고 전설이었다. 편히 잠들길 바란다"며 애도했다.
이후 '캡틴 블러드'(35, 마이클 커티즈 감독) '로빈 후드의 모험'(38, 마이클 커티즈·윌리엄 케일리 감독)의 주연을 맡으며 필모그래피를 쌓은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그들에겐 각자의 몫이 있다'(46, 밋첼 레이슨 감독)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49, 윌리엄 와일러 감독) 등을 통해 두 차례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당대 최고의 여배우로 거듭났다.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영화보다 더 파란만장한 삶으로 화제를 모았다. 1943년 거대의 할리우드 제작사 워너 브라더스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그는 워너 브라더스가 계약 기간이 종료된 이후에도 권리를 주장하고 또 비련의 여인 캐릭터만 맡기면서 출연 계약을 거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기도 했다. 어떤 제작사도 배우의 동의 없이 계약을 연장할 수 없다며 계약기간은 활동정지와 상관없이 7년으로 제한하는 법원의 판결은 이후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법'으로 불리기도 했다.
또한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1979년 갈란테와 이혼했지만 그가 1998년 폐암으로 사망 전까지 친구로 지내 눈길을 끌었다. 소설과 굿리치와 재혼해 얻은 아들 벤자민은 1991년 림프종으로 세상을 떠났고 딸 지셀 갈란테 출라크는 변호인으로 일한다.
여동생과 불화설도 겪었다. 그의 여동생은 히치콕 감독의 '레베카'(54) '서스픽션'(41) 등에 출연한 고(故) 조앤 폰테인이다. 앞서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1942년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에 동생 조앤 폰테인과 함께 이름을 올렸지만 조앤 폰테인이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는 일화도 있다. 그는 1975년 어머니가 사망한 뒤 여동생과 교류를 끊었지만 이후 2013년 12월 조앤 폰테인이 사망하자 "충격적이고 슬프다"라고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2008년 미국 정부로부터 국가예술 훈장을 받은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노년의 생을 파리로 이주해 살았고 201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의 영예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기도 했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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