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초점] 120억에 넷플릭스行 택한 '사냥의 시간' 속사정, 그리고 명과 암

조지영 기자

기사입력 2020-03-23 16:19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터질 게 터졌다. 전 세계를 집어 삼킨 코로나19 사태로 신작들이 연이어 개봉일을 잡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추격 스릴러 영화 '사냥의 시간'(윤성현 감독, 싸이더스 제작)이 극장을 포기하고 OTT(Over-The-Top, 인터넷을 통하여 방송 프로그램, 영화 등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플랫폼인 넷플릭스를 택하면서 영화 산업의 파란을 일으켰다. 한국 상업영화가 극장이 아닌 OTT 플랫폼을 통해 영화를 개봉하는 것은 '사냥의 시간'이 최초다.

당초 '사냥의 시간'은 지난달 26일 개봉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개봉일을 연기, 더는 극장 개봉을 미룰 수 없다는 판단하에 과감히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오는 4월 10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개국에 29개 언어의 자막으로 단독, 또 동시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사냥의 시간'의 투자·배급사인 리틀빅픽쳐스는 "최근 코로나19로 인하여 개봉을 잠정 연기한 '사냥의 시간'은 지난 11일(현지 시간) 세계 보건 기구 WHO의 팬데믹 선언 소식을 접하게 됐고 이에 리틀빅픽쳐스는 '사냥의 시간'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현 상황에서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에 대해 고민을 거듭한 끝에 세계적인 넷플릭스에 제안을 해 공개하게 됐다"고 이유를 밝혔다.

계속되는 극장가 기근 현상 속 하염없이 사태가 완화되길 바라만 보고 있는 신작들에 OTT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한 '사낭의 시간'에 대해 고무적인 반응을 보인 이들도 많지만 반대로 이런 '사냥의 시간'을 둘러싼 논란과 우려의 목소리도 상당하다. 더구나 '사냥의 시간'은 해외 세일즈 부분에서 이중 계약 논란이 불거지며 대규모 국제 소송 위기까지 휩싸이는 등 잡음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 과연 '사냥의 시간'이 넷플릭스를 선택해야만 했던 속사정과 또 OTT 공개에 대한 영화계 명(明)과 암(暗)은 무엇일까.


기약 없는 극장가, 중·소 신작들 파산 위기

코로나19로 인해 국내 극장가와 영화계는 올스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달 19일 개봉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김용훈 감독) '1917'(샘 멘데스 감독)을 끝으로 기대작으로 손꼽혔던 신작들이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인해 개봉을 무기한 연기했기 때문. '사냥의 시간'은 물론 '기생충: 흑백판'(봉준호 감독) '결백'(박상현 감독) '침입자'(손원평 감독) '콜'(이충현 감독) 등 무려 50여편이 넘는 작품이 개봉일을 잡지 못하고 코로나19 사태만 끝나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덩달아 관객들도 극장에 발길을 끊었다. 평일 관객수 3만명, 주말 7만명대로 연일 역대 최저 관객수를 기록하며 추락 중이다. 사상 초유의 보릿고개에 개봉을 준비하는 신작들만 애타는 상황이다.

특히 '사냥의 시간'은 순 제작비 90억원, 총 제작비 115억원 버젯의 중형급 작품으로 이번 개봉 연기로 손해가 상당하다. 제작발표회를 시작으로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등 각종 굵직한 홍보 행사를 통해 마케팅 비용을 사용, 개봉하기도 전 이미 마이너스인 상태였던 '사냥의 시간'은 개봉을 나흘 앞두고 개봉일을 연기하게 돼 더욱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였다. 게다가 기약 없는 극장가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그동안 이렇다 할 흥행작이 없었던 '사냥의 시간' 투자·배급사였던 리틀빅픽쳐스는 그야말로 회사의 존폐 위기까지 맞게 됐다. 비단 리틀빅픽쳐스뿐만 아니라 다른 중·소 신작들의 개봉을 준비하는 투자사들 역시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무기한 개봉이 밀리면서 파산 위기를 맞게 된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코로나19 패닉 속 해답은 OTT뿐

이런 상황 속 '사냥의 시간'은 해결책으로 OTT 플랫폼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판 '매드맥스'(15, 조지 밀러 감독)를 자신할 정도로 스타일리시한 비주얼과 새로운 스토리, 또 360도 서라운드 입체 사운드를 선사하는 돌비 애트모스 도입을 시도한 '사냥의 시간'. 스크린에 최적화된 작품이지만 결국 기약 없는 스크린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관객을 찾기 위해 스크린이 아닌 OTT를 선택해야 했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중의 OTT 관심은 뜨거워졌다. 극장으로 가던 고정적인 관객 층이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 일환으로 자발적 격리에 돌입하면서 극장을 찾는 영화 관람 대신 TV, 또는 스마트 폰을 통해 영화 및 콘텐츠를 관람하기 때문. 자연스럽게 OTT 플랫폼의 콘텐츠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때아닌 호황을 맞았다. 이런 상황에 개봉일을 잡지 못한 신작들은 OTT 플랫폼 시장은 답답했던 현실 속 한 줄기의 빛이 될 가능성이 된 것. 오히려 OTT 플랫폼을 통해 국내 극장에서 상영뿐만 아니라 전 세계 관객에게 영화를 알릴 수 있다는 매리트까지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사냥의 시간'은 넷플릭스에 추정 약 120억원에 독점 공개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만으로 일단 제작비는 환수한 셈. 여기에 공개 후 반응에 따라 러닝개런티 같은 추가 보너스도 받을 수 있게 된다. 코로나19 사태가 없더라도 2, 3월 극장가는 1년 극장가 중 비수기로 꼽히는 달로 꼽히는데, '사냥의 시간'이 코로나19 사태가 없더라도 손익분기점인 300만명을 넘기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맥락을 감안했을 때 넷플릭스와 계약은 결코 손해 본 장사는 아니다.


해외 세일즈와 신뢰, 공든 탑 무너졌다

여러모로 '사냥의 시간'과 넷플릭스의 협업은 영화계 큰 사건이자 파란, 그리고 변화로 많은 관심을 받게 됐지만 그 이면엔 어두운 논란도 발생하게 됐다. 매끄럽지 않았던 이중 계약이 문제가 된 것. '사냥의 시간'은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 해외 배급 대행사인 콘텐츠판다를 통해 이미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해외 30개국에서 선판매됐고 해외 배급사들 역시 콘텐츠판다에 배급 계약금 일부를 건넸다. 여기에 지난달 열린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를 통해 호평을 얻은 '사냥의 시간'은 추가로 70여개국과 계약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돌연 리틀빅픽쳐스가 콘텐츠판다와 충분한 논의 없이 계약 해지를 요청했고 넷플릭스와 독점 계약을 발표한 것. 리틀빅픽쳐스는 극장개봉을 준비하고 있는 해외 영화사들로부터 기존에 체결한 계약을 번복할 의사가 없음을 직접 확인했지만 넷플릭스와 계약을 강행해 해외 배급사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콘텐츠판다는 국제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리틀빅픽쳐스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할 계획. 해외 배급사들 역시 이 소송에 동참할 것으로 대규모 국제 소송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이러한 '사냥의 시간' 사례가 영화계 우려를 모으는 이유는 그동안 해외 시장에서 수십 년간 어렵게 쌓은 한국 영화에 대한 신뢰가 '사냥의 시간'의 사례로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생충'(봉준호 감독)으로 한국 영화의 위상이 최고조의 달한 지금, 단순히 금액으로 계산할 수 없는 가치를 손실했다는 것. '사냥의 시간' 한 작품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한국 영화의 해외 세일즈에 있어서 신뢰와 믿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상당하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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