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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종합] "부족하고 채우는中"…'칸의여왕' 전도연의 부담, 그리고 오스카의 꿈

조지영 기자

기사입력 2020-02-11 13:32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칸의 여왕' 타이틀 향한 부담감과 자부심 많았지만 '기생충'(봉준호 감독, 바른손이앤에이 제작)으로 다시 아카데미라는 새로운 동기부여를 가졌어요. 하하."

범죄 스릴러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김용훈 감독, 비에이엔터테인먼트·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작)에서 과거를 지우고 새 인생을 살기 위해 남의 것을 탐하는 연희를 연기한 배우 전도연(47). 그가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스포츠조선과 만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 대한 비하인드 에피소드와 근황을 전했다.

소네 케이스케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흔들리는 가장, 공무원, 가정이 무너진 주부 등 지극히 평범한 인간들이 절박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행하는 최악의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를 그린 작품. 영화 속 인물 모두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궁지에 몰려서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은 것일 뿐, 인간의 본성은 악하지 않다는 주제 의식으로 공감을 산 것은 물론 새롭고 독특한 구성,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전개, 스타일리시한 미장센 등으로 보는 이들의 108분을 사로잡는다. 이렇듯 2월 스크린 기대작으로 등극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지난 2일 폐막한 제49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Special Jury Award)을 수상하며 연출력을 입증받기도 했다.

또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충무로 올스타전'이라고 해도 손색없는 명배우들의 압도적인 열연이 관전 포인트다. 특히 역대급 센 캐릭터로 돌아온 전도연의 파격 변신을 시도해 눈길을 끈다. 전도연은 극 중 어두웠던 과거에서 벗어나 완벽하게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술집 사장 연희 역을 맡았다. 암울한 현실을 청산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만큼 거액의 돈을 쥐게 된 인물로, 오로지 자신을 위해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헛된 희망을 이용해 범죄의 큰 판을 짜기 시작하는 주요 캐릭터다. 전작과 180도 다른 표독하고 거친 모습은 물론 때론 연인을 향한 사랑스러운 캐릭터의 양면을 동시에 소화한 전도연은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자랑하며 원조 '칸의 여왕'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전도연은 "개봉 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두 번 봤다. 처음 봤을 때는 촬영 후 가편집으로 봤는데 그때 볼 때는 한 번 보고 '내가 왜 이런 영화를 찍었나?' 싶었다. 내가 생각한 영화가 아니었다. 시간 교차가 많은 작품이라 더 그런 느낌을 받은 것 같다. 언론 시사회 때 두 번째 보게 됐는데 시사회로 보기 전까지도 영화 싫으면 홍보를 어찌하나 싶기도 하더라. 다행히 김용훈 감독이 원하는 대로 잘 나온 것 같고 나도 너무 재미있게 만족해서 봤다"고 자신했다..

그는 "처음부터 이 작품은 블랙코미디로 봤다. 내가 봤을 때 처음 편집본은 블랙코미디 요소가 많이 없었다. 물론 김용훈 감독과 장르적인 이견이 있었다면 있었다. 그렇다고 사이가 나빴던 것은 절대 아니다.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내 영화 보고 울고 웃기 정말 힘든데 이번 작품을 보면서 많이 웃었다. 이 시나리오를 봤을 때 인물들 하나하나가 정말 좋았다"며 "중반부에 투입된 캐릭터였고 내 첫 촬영도 영화가 한창 촬영 중일 때 들어갔다. 왠지 남의 현장 같더라. 더구나 첫 촬영이 산속에서 밤 촬영이라 더 낯선 느낌이 들었다. 솔직하게 첫 촬영치고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날 촬영의 모든 중심은 스모그(연기)여서 그랬던 것 같다. '이 현장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나' 싶었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실제로 전도연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주연이지만 영화 시작 중반부인 50분 뒤 등장해 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에 "'전도연이기 때문에 중반부 등장도 멋있었다'고 이야기를 해주더라. 시나리오 자체가 워낙 강렬했고 그 안에서 연희의 등장 자체가 파격적이기도 했다. 등장에서부터 에피소드가 강렬해서 중반부 등장에도 힘을 받았던 것 같다. 스스로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힘 빼고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길 원해 전보다 더 힘을 빼고 연희를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 촬영할 때도 연희처럼 중반에 들어갔는데 촬영 중반에 투입된 경우라 영화의 톤이 어떨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미 시간상 연희의 등장은 대본 읽을 때부터 파악해 연기할 때는 괜찮았지만 그럼에도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나 역시 시간의 순서가 헷갈릴 때가 많았다. 그래서 연기를 하면서 관객이 우리 영화를 보면서 혹여 불편하거나 뒤죽박죽 느낌만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기도 했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1990년 데뷔 이래 30년 만에 정우성과 첫 호흡, 그리고 연인으로 연기한 에피소드도 가감 없이 전했다. 전도연은 "정우성과 연인 호흡은 정말 오글거려서 죽는 줄 알았다. 어색했다. 정우성과 첫 촬영이 연희가 태영(정우성)에게 애교부리는 신이었다. 스스로는 천상 여성스러운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이번 연기를 통해 그동안 내가 오랫동안 애교를 안 부리고 살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더 힘들었고 어색함을 느꼈다. 첫 촬영을 하다 보니 정우성과 첫 호흡이더라. 그런데 캐릭터 적으로는 익숙한 관계였고 그래서 태영에게 던진 첫 대사가 정말 어려웠다. 더구나 정우성은 다른 배우들보다 유독 낯설더라. 너무 잘생겨서 쑥스러웠다. '밥 먹자'라며 애교를 부리는 신이었는데 내 촬영본을 보고 김용훈 감독에게 '이건 쓰지 말자'고 이야기할 정도로 너무 민망했다. 그 신 자체에 스스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웃픈 에피소드를 밝혔다.

또한 "그렇다고 정우성과 안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워낙 함께 활동을 해와서 오며 가면서 정우성을 많이 봤는데 이 정도로 연기하는 게 어색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나중에 적응한 뒤에는 정우성과 촬영이 재미있다 싶었는데 촬영이 끝나더라"며 "현장에서 봐도 똑같이 정우성이더라. 현장에서 정우성의 연기를 처음 봤는데 정우성에 대한 어색함이 아니라 알고 보니 캐릭터인 태영에 대한 어색함이었다. 정우성은 여전히 멋있고 이야기하면 고개를 끄덕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지 않나? 나중에는 정우성과 코미디를 해보고 싶더라. 정우성의 연기를 현장에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내가 해보지 않았던 장르이지만 코미디를 정우성과 한다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정우성의 연기를 처음 봤는데 자신을 내던지면서 캐릭터를 구현하더라. 상대 배우로서 그걸 즐기면서 촬영했다"고 덧붙였다.

코미디 장르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 전도연은 "사실 사람들은 나에 대해 심각한 것만 봐서 오해가 많다. 원래 나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이 영화도 심각한 전도연의 신작으로 오해할까 봐 걱정했다. 사실 나는 심각한 사람이 아니다"며 "앞으로 멜로라기 보다는 장르적으로 다양한 작품이고 좋으면 너무 하고 싶다. 전작 '백두산'(이해준·김병서 감독)에서는 잠깐이나마 이병헌과 부부 호흡을 맞췄는데 이병헌과는 '협녀(15, 박흥식 감독) '내 마음의 풍금'(99, 이영재 감독)과 호흡을 맞춰 이야기하지 않아도 호흡이 잘 맞다. 이병헌이란 사람 자체가 인간적으로도 매력 있는 사람이다. 언제라도 우리 두 사람의 재회는 가능할 것 같다. 또 정우성도 이번 작품을 통해 많이 알게 됐다. 내가 몰랐던 매력이 있더라. 그래서 앞으로의 케미가 더 기대된다. 현장에서 정우성과 호흡을 적응하느라 어려웠지만 좀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더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정우성이 먼저다"고 함께 호흡을 맞춘 정우성을 향한 기대감을 밝혔다.


원조 '칸의 여왕'으로서 한국 영화 전례 없던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낭보도 뜻깊게 와닿은 전도연은 한국의 대표 배우로서 소회도 잊지 않았다. 전도연은 "오늘(11일) 신인의 자세와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지난밤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4관왕이라는 전례 없는 역사를 쓰지 않았나? 특히 아카데미는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는데 현실이 됐다. 나는 아직 멀었다. '기생충' 덕분에 꿈을 꾸는 배우가 됐다. 이제부터 시작이고 윤여정 선생님과 아카데미를 가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앞으로 나는 '최고를 꿈꾸는 여배우'가 되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드러냈다.

앞서 전도연은 2007년 열린 제60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 배우 최초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 '칸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전도연의 수상 이후 지난해 열린 제72회 칸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또 지난 10일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국제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 갱상 등 4관왕의 영예를 안는 등 전도연의 수상 이후 계속해서 한국 영화에 낭보가 이어지고 있다.

독보적인 '칸의 여왕'으로 군림 중인 전도연은 "물론 자부심이라는 걸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부담스러웠다.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밀양'(07, 이창동 감독)을 찍고 나서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얻었고 앞으로도 계속 '칸의 여왕'에 맞는 작품으로 내 필모그래피를 채우고 싶었다. 욕심이었다. 현실적으로 되지 않더라. '칸의 여왕'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과연 '칸의 여왕'이라는 말에 맞는 작품을 채우고 있나?'라는 갈증을 많이 가졌다.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스스로 '채우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 부담을 버릴 수 없어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 앞으로도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아직도 나는 부족하고 채우고 있고 채워가고 싶다. 작품도 많이 하고 싶다. 계속 채워가고 싶다"고 소신을 전했다.

이어 "어제(10일) 나 역시 '기생충'의 낭보를 함께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갱상만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4관왕을 수상했더라. 같이 작품 한 스태프가 나를 추켜세우느라 '전도연이 작품 했으면 연기상도 받았을 것'이라고 해주더라. 물론 그렇다고 '내가 받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기생충'의 배우들도 정말 대단했다. '기생충'을 통해 우리의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 꿈은 꿔볼 수 있지 않나? 스스로 동기부여가 됐다"고 의미를 더했다.

더불어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은 정말 너무 대단하다. 지난해 열린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을 때도 정말 너무 대단했다. 당시에 봉준호 감독, 송강호에게 너무 축하한다고 연락하기도 했다. 새로운 역사를 썼는데 '악' 소리도 나지 않을 만큼 대단한 것 같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제 한국 배우들, 감독들에게도 기회가 열렸다. 나도 칸에서 상을 받았을 때 한국 배우들에게 조금이나마 길을 연 것이 아닌가? 아카데미도 마냥 다른 세상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다들 '나도 좋은 작품으로 갈 수 있겠다'라는 희망을 갖게 했다.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일을 '기생충'이 한 것이다. 너무 어마어마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고 벅찬 소감을 덧붙였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인생 마지막 기회인 돈 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최악의 한탕을 계획하는 평범한 인간들의 범죄극이다. 전도연, 정우성, 배성우, 정만식, 진경, 신현빈, 정가람, 박지환, 김준한, 허동원, 그리고 윤여정 등이 가세했고 '거룩한 계보' 연출부 출신 김용훈 감독의 첫 장편 연출 데뷔작이다. 오는 12일 개봉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19일 개봉을 연기했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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