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배종옥 "한제국으로 남자의 영역 침범? 여배우도 할 수 있죠"

문지연 기자

기사입력 2019-10-18 08:00


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

[스포츠조선 문지연 기자] 배우 배종옥(55)이 남자 캐릭터였던 한제국 역할을 소화해내며 '여배우들에게 길이 열렸다'고 했다.

배종옥은 1985년 KBS 특채 연기자로 정식 데뷔했고, KBS2 '해돋는 언덕'(1985)로 첫 연기를 선보였다. 이후 다수 작품에 출연한 배종옥은 MBC '행복어사전'(1991)에서 당당한 기자 역할을 맡으며 '도시 여성'의 이미지를 입었고, 이후 KBS2 '목욕탕집 남자들'(1995)을 통해 대중에 자신의 이름을 완벽히 각인시켰다. 평소 주체적이고 당당한 여성 캐릭터에 관심을 보였던 배종옥은 KBS2 '거짓말'(1997)과 KBS2 '바보같은 사랑'(2000) 등을 만나며 이미지를 확고히했고, SBS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를 통해 코믹 연기에도 도전했다. 배종옥은 또한 스타작가인 노희경 작가의 뮤즈로 KBS2 '그들이 사는 세상'(2008),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 그리고 tvN '라이브'(2018)에 출연해 자신만의 연기 스타일을 보여준 바 있다.

올해 특히 '열일'한 배종옥은 tvN '60일, 지정생존자'(김태희 극본, 유종선 연출)에 이어 곧바로 MBN-드라맥스 '우아한 가'(권민수 극본, 한철수 육정용 연출)에 합류하며 대역전극을 써냈다. '우아한 가'는 대한민국 상위 1% 재벌가인 MC그룹에 숨겨진 은밀한 비밀과 거대한 기업의 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물밑의 킹메이커 오너리스크팀(TOP팀)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로, 그중 배종옥은 킹메이커의 중심인 한제국 역을 맡아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우아한 가'는 1%를 유지하던 MBN 드라마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드라마로 그동안 잠잠했던 종편드라마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작품이다. 연일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닐슨코리아, 유료가구, 전국기준), 매회 짜릿하고도 통쾌한 반전을 선사하며 호평을 받기도 했다. 배종옥의 막강한 힘과 더불어 연기력이 제대로 물오른 임수향, 그리고 이장우와 김진우, 이규한 등이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였고, MC그룹을 둘러쌌던 갈등들이 마무리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배종옥은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우아한 가' 종영 인터뷰를 갖고 '우아한 가'의 출연을 결정한 이유를 한제국 때문이라고 꼽았다. 그는 "한제국이라는 캐릭터를 처음에는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계속 내 머릿속에서 그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제 또래의 여배우들에게는 할 수 있는 캐릭터가 많이 없지 않나. 그런데다가 대본이 너무 매력적으로 그려진 거다. 그게 원래 남자 캐릭터인데 저에게 온 거라 그런 것에 대한 욕심도 있었다. 대본이 작품으로 만들어져서 방송을 보기 전까지는, 내 상상만으로 어느 드라마가 될 것이라는 것은 사실 70%만 아는 것이다. 그런데 작품을 읽는데 쉬지 않고 대본이 넘어갔고, '재미있다. 정말 좋은데'라는 마음이 들어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무래도 한제국이란 인물 때문이 아닐까"라고 출연 이유를 밝혔다.


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
배종옥이 매력을 느낀 한제국이라는 역할은, 사실 남자 배우에게 돌아갔어야 하는 역할로 기본적인 설정 성별이 남성이었다. 그러나 이 역할이 배종옥에게로 돌아가며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인물로 재탄생하게 됐다. 배종옥은 "드라마 출연을 확정하고 작가님과의 식사 자리에서 이름도 대사 톤도 바꾸겠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러지 말라고 했다. '내 톤으로 하겠다'고 했다. 여자 톤으로 대사를 바꾸게 되면, '하시겠어요'가 되지 않나. 그 톤은 한제국같지 않았다. '하겠습니까. 했습니다. 하시겠습니다'가 원래 대사였는데, 처음에는 '어떻게 소화하나' 생각한 부분도 있었지만, 감정이 들어가니 다르게 느껴졌다. 이 선택도 좋았다. 만약 한제국이 아닌, 한제숙이었다면 어땠겠나. 한제국이니 훨씬 멋진 거다. '제국'이라는 이름을 가지니 비서가 아닌, 수장으로서의 느낌이 오지 않나"라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최근 축소되고 있는 '역할 시장'에서 50대를 넘어가는 여배우가 맡을 수 있는 배역은 좁다. 누군가의 엄마, 혹은 할머니로 넘어가는 때에 배종옥이 선택한 한제국은 충격이었다. 그는 "이런 역할을 하기 어렵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역할이 없었다. 한제국은 전무후무한 캐릭터다.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 찾아볼 수 없고, 드라마에서는 이게 다 남자의 영역이었다. 다 남자들의 영역이었던 거다. 정치와 권력은 남자의 파트에 속해있다. 영화도 보면 다 남자같지 않나. 여자인 제가 이 역할을 해서 이렇게 반응이 좋으니 기분이 좋다. 만약 제가 연기했다가 '그래 저건 남자가 하는 게 맞아. 파워가 안 느껴져'라고 하면 망하는 것인데, 여배우로서 배종옥이 새로운 장르를 썼다는 평가를 받게 되니 저에게는 완전히 기분이 좋은 일이다"고 말했다.

고민도 있었다. '이 여자가 어떤 내면을 가지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한제국을 만들어내는데 도움이 됐다는 설명이다. 배종옥은 "캐릭터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작품 초반에도 나오듯이 선배들의 부정한 행위를 과거 보게 되고, 옳지 않다고 지적했을 때 한제국에게 떨어진 것은 유리천장을 깨고 싶은 이상이 아니라 지방으로 좌천되는 굴욕이었다. 그때 마침 MC 회장님에게 제의를 받고 그 제의를 받아들이는 순간, 이 여자는 어떤 꿈을 꿨겠나. 바로 비틀어진 욕망이다. '너희가 그렇게 명예롭고 정의롭냐. 그러나 너희도 돈이 필요하고 그것에 따라 움직이지 않냐. 나도 그것과 손을 잡았지만, 너희처럼 명예의 가면을 쓰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움직인 거다. MC그룹의 자본과 정보로 그들을 쥐락펴락하며 악으로 이용했지만, MC그룹 측면에서는 완전한 악은 아니었다. 자신의 야망을 실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내면으로 한제국은 움직인 거다. 그래서 이 여자는 늘 당당하다. 자기의 능력으로, MC의 자본으로, 내가 움직이지 않더라도 누가 세상을 그렇게 움직이고 나만의 일이 아니라고 항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재계와 손을 잡았으니"라고 설명했다.


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

배종옥이 앞길을 닦았으니, 앞으로 여배우들의 입지 역시 넓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배종옥은 "이런 작품이 나왔으니, 또 누군가는 상상의 날개를 펼치지 않겠나. 이런 일들이 고무적인 것 같다. 새로운 캐릭터들이 만들어지면 거기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발전된 캐릭터로 돌아오더라 제가 '거짓말'을 했을 때에는 그걸로 끝나는가 했는데, 이후에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작품도 했다. 다른 캐릭터였지만, 박찬욱 감독님이 '거짓말'을 생각했다고 하더라. 이번에는 킹메이커였는데,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가 킹메이커 아니냐. 그 역할이었다. 똑같은 캐릭터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그 이미지를 통해 다른 상상을 하고, 또 다른 것들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드라마나 영화 시장의 캐릭터적인 면에 있어서는 고무적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역할을 봤을 때, 굳이 남자로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 여배우들에게도 기회가 될 것 같다"고 밝혔다.

배종옥은 '우아한 가'를 마친 뒤 그의 말대로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그러나 쉼이 길어지지는 않을 것. 배종옥은 "한제국을 털어내기 위해 얼른 다른 작품을 찾아야 한다"고 예고했다.

문지연 기자 lunam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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