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종합] "생각만 해도 부아 치밀죠"…라미란, 버닝썬·페미 논란에 답하다

조지영 기자

기사입력 2019-05-02 13:08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현실이 더 영화 같아서 놀랐어요."

코미디 액션 영화 '걸캅스'(정다원 감독, 필름모멘텀 제작)에서 전직 전설의 형사였지만 현재는 민원실 퇴출 0순위 미영을 연기한 배우 라미란(44). 그가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스포츠조선과 만나 '걸캅스'에 대한 비하인드 에피소드와 근황을 전했다.

사회에 만연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소재로 시원한 액션, 짜릿한 쾌감이 더해진 현실감 넘치는 수사극을 통해 보기만 해도 속이 뻥 뚫리는 핵사이다 오락 영화로 5월 관객을 찾은 '걸캅스'. 최근 연예계 큰 충격과 공분을 일으킨 승리·정준영 등의 몰카 촬영 및 유포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여성 범죄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걸캅스'는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탄탄한 소재와 통쾌한 결말로 보는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전한다.

특히 '걸캅스'는 영화 '소원'(13, 이준익 감독) '덕혜옹주'(16, 허진호 감독) '내안의 그놈'(19, 강효진 감독),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KBS2 예능 '언니들의 슬램덩크' 등 탄탄한 연기력과 친근한 매력을 전하며 대체불가의 배우로 등극한 라미란의 첫 주연작으로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중. 매 작품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한 라미란은 '걸캅스'에서도 라미란표 생활밀착형 연기부터 강도 높은 액션, 배꼽잡는 코미디, 불꽃 카리스마까지 선보이며 폭발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박찬욱 감독)를 시작으로 데뷔해 올해 14년 차에 접어든 라미란. '걸캅스'를 통해 첫 주연작을 도전한 그는 "아직 주연작에 대한 느낌을 잘 모르겠다. 이 작품도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주연처럼 안 하고 조연처럼 연기하려고 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주연이라는 것 자체가 부담됐고 영화를 촬영하기 전엔 내 명에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캅스' 제작진과 첫 만남 때부터 '내가 했던 대로 조연 연기하듯이 똑같이 연기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조연은 많은 신이 주어진 게 아니라 매 신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지 않나? '걸캅스'도 그렇게 연기를 하려니 너무 힘들더라. 주연으로서 비중도 많아져 매 신에 열중하다 보니 중간에 지치게 됐다. 그래서 '그냥 주인공처럼 연기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생각해보니 예전에 내가 했던 조연 부분을 다른 분들이 다 메꿔주고 있더라. 내가 다 할 필요가 없겠다 싶어서 조금씩 안배를 하기 시작했다"고 주연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놨다.

그는 "사실 내겐 몇 년 전부터 주연 대본이 들어왔는데 처음에는 못한다며 거절하기도 했다. 난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다고 거절했다. 주연이라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됐다. '걸캅스'는 과거 '소원'(13, 이준익 감독) 때 작업을 같이한 제작자의 작품이었는데 이후 '나의 사랑 나의 신부'(14, 임찬상 감독) 때 우정출연을 해주면서 인연을 쌓았다. 그때부터 슬금슬금 나를 두고 주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더라. 그때 제작자가 '너의 첫 주연은 내가 꼭 할 것'이라고 약속을 했고 그렇게 첫 주연작 계약을 하게 됐다. 보통 그런 이야기는 공수표로 날리지 않나? 그런데 정말 몇 년에 걸쳐 나를 주인공으로 준비를 하더라. 나 같은 사람을 주연으로 내세워 만든다는 게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나를 너무 높게 평가해준 것 같다. 이뤄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 됐다"고 고백했다.

또한 첫 정통 액션에 도전한 것에 "나름 액션이 소질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아직 신체적으로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때리는 연기보다 맞는 연기가 더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액션을 해도 태가 안나 속상했다. 김옥빈이나 김혜수 언니처럼 멋있게 나오고 싶었는데 우리 영화 속에서는 아주머니가 뛰어다니더라. 하지만 그게 우리 영화의 미덕이기도 하다. 액션이라고 말하기보다는 막싸움에 가깝다. 앞으로 더 힘들어지기 전 액션을 바짝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노후에는 머리 쓰는 역할로 하고 싶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거대한 작품을 하는 것도 좋지만 하찮게 느끼는 작은 사건을 다룬 영화를 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액션 연기도 많이 하고 싶다. 이 영화가 잘되면 2편도 나오지 않을까? 안되면 혼자 저예산이라도 2편을 준비해보고 싶다"고 웃었다.


라미란은 개봉을 앞두고 영화 속 터진 승리·정준영의 몰카 사건에 대한 솔직한 심경도 털어놨다. '걸캅스'는 현실에서 충격을 안긴 디지털 성범죄를 고스란히 담은 내용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중. 이와 관련해 "개인적으로 나는 사회 문제에 어두운 편이었다. 처음에는 '범죄를 당하기 전 클럽을 안 가면 되잖아'라고 단순하게 생각을 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대학 새내기로서 그런 곳도 가보고 싶지 않나? 범죄는 언제 어디서나 노출될 수 있다. 나도 이렇게 범죄가 구체적으로 일어날 줄 몰랐다. 극 중 대사처럼 화가 많이 났다. 피해자들이 숨고 말 못 하지 않나? 그런 지점에서 충분히 이해가 됐고 더 화가 나더라. 부아가 치밀기도 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더 통쾌한 지점도 있다""고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그는 "개봉을 앞두고 사회 이슈가 터져 깜짝 놀랐다. 지난해 여름 촬영을 끝낸 뒤에 디지털 범죄 관련해서 기사가 몇 번 났는데 그때만 해도 기사를 보면서 '우리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야'라면서 놀라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점점 관심을 갖고 있구나' 싶어 좋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후에 연예인 관련 이슈가 터지면서 슬슬 걱정됐다. 연예인들의 이야기고 유명해진 이야기니까 더 많이 확장된 것 같다. 사실 전에도 너무 빈번한 사건이었다. 많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누구는 '이걸 타깃으로 찍은 작품이다'라고 하는데 단지 타이밍이 맞았을 뿐이다. 오히려 현실이 더 영화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희화화했다는 우려도 있는데 일단 우리 영화는 상업영화이고 유쾌하게 풀어내고 싶었다. 물론 사건은 가볍지 않다. 나에게 원하는 것은 배꼽 빠지는 코미디였을 것이다. 그래서 투자를 해줬을 것이고 기대도 있을 것이다. 막상 연기하는데 분노나 그런 부분을 코미디로 할 수 없더라. 그래서 영화를 보면 실제로 코미디를 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 '어디서 웃기라는 건가' 당황하기도 했다. 나 혼자 다큐를 찍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걸캅스'를 둘러싼 페미 논란에 대해서도 솔직한 생각을 밝힌 라미란은 "우리 영화에 대한 논란을 너무 잘 알고 있다. 한 포털 사이트는 거의 우리 영화가 '페미 영화'로 도배가 됐더라. 그런데 그렇게 논란을 제기한 분들이 우리 영화를 보시려나? 막상 영화를 보면 다를 것이다. 풀어가는 과정이 궁금해서 논란이 생긴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면 결국 해결되지 않겠나?"라며 "사실 '페미 영화'로 보고 싶은 분들은 정말 그렇게 보일 여지가 많은 작품이다. 제목 또한 말이 많은데 제목을 정할 때는 촬영을 모두 마치고 나서도 고민을 했던 부분이다. '걸캅스'라는 제목이 처음엔 가제였다. 나 또한 그때 '난 걸이 아닌데?' 싶기도 했다. 워낙 '캅스' 시리즈가 많지 않았나. 다른 제목을 생각해도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정한 제목이지 다른 뜻은 없다. 개봉을 앞두고 제목을 바꿀 수는 없지 않나?"라고 호탕하게 웃었다.


마지막으로 라미란은 "가늘고 길게 가는 게 내 꿈인데 지금 너무 유명해졌다. 나중에 나를 작품에 안 써줄까 봐 너무 불안하다. 어느 포지션이라도 다 해내고 싶다. 그동안 롤모델이 없었는데 이번에 김혜자 선생님을 보면서 생겼다. 김혜자 선생님은 정말 좋은 작품을 해내셨다. 너무 부럽다. 이번에 김혜자 선생님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여기까지 올라온 것도 누군가에겐 희망이 될 수 있구나 싶다. 주변에서 '언니를 보면서 희망을 갖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길을 잘 간다면 나를 보는 후배들이 따라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 작품에도 함께한 염혜란은 '제2의 라미란'을 꿈꾼다고 하더라. 그런 경우가 많아진 만큼 더 부담스럽지만 더 잘해야 할 것 같다"고 소신을 전했다.

한편, '걸캅스'는 48시간 후 업로드가 예고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발생하고 경찰마저 포기한 사건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뭉친 걸크러시 콤비의 비공식 수사를 다룬 영화다. 라미란, 이성경, 윤상현, 최수영, 염혜란, 위하준 등이 가세했고 정다원 감독의 첫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오는 5월 9일 개봉한다.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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