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종합]"나이 먹는다고 어른 아냐"…신인 감독 김윤석, '미성년'으로 던진 질문

이승미 기자

기사입력 2019-04-03 14:45



[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섬세함, 위트, 유머…, 첫 연출작 '미성년'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모두 끄집어낸 김윤석(51). 31년차 베테랑 배우가 아닌 막 첫발을 내딛은 신인 감독의 비범한 데뷔가 놀랍다.

평온했던 일상을 뒤흔든 폭풍 같은 사건을 마주한 두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미성년'(김윤석 감독, 영화사 레드피터 제작). 연출과 주인공 대원 역을 맡은 김윤석이 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가진 라운드 인터뷰에서 개봉을 앞둔 소감과 작품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배우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인 '미성년'은 불륜과 그로인한 임신이라는, 어찌보면 자극적일 수 있는 영화지만 사건 그 자체가 아닌 인물들의 내면에 집중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다섯 명의 주요 인물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직면한 상황을 대면하는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아이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만든다. 연출 데뷔작에서부터 이런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선은 물론, 메시지와 유머까지 잃지 않는 능력은 보여준 '감독 김윤석'의 차기작에도 자연스레 기대가 모아진다.

물론 '미성년'은 충무로 최고의 배우 김윤석의 뛰어난 연기도 빛나는 작품이다. 그동안 묵직하고 강렬한 선굵은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아온 그는 이번 작품에서 우유부단하면서도 무책임한, 비겁하고 옹졸하기까지 한 주인공 대원 역을 맡아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본인이 저지른 일을 수습하려하기는커녕 도망치기만 하는 대원의 모습은 지질하다 못해 이상한 웃음까지 자아낸다.
이날 김윤석은 감독으로서 첫 작품 개봉을 앞둔 소감을 묻자 "감독이 되니까 한 컷 한 컷이 다 신경이 쓰인다. 몇 초되지 않는 한 컷까지 신경이 쓰이더라"고 답했다. 이어 영화의 호평이 쏟아지고 있는 것에 대해 "아직까지 영화평을 스스로 안찾아보고 있다. 안보는게 좋을 것 같아서 보지 않고 평점심을 유지하고 있다"며 웃었다.

'미성년'이라는 작품을 처음 만났던 순간에 대해 설명했다. "제가 원래 짬짬히 대학로 연극 공연을 본다. 동료들도 아직도 연극하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그러던 중 2014년 12월에 소극장에서 젊은 연극인들이 보여서 창작극 페스티벌을 봤다. 굉장히 좋은 발표회다. 외국 희곡이 아닌 창작극을 발표하는 거니까. 정식 공연은 아니었다. 일반 대중을 볼 수 없고 관계자들 앞에서 시연하는 식의 발표회였는데 그때 선보였던 작품 중 하나가 '미성년'이었다. 그 작품에서 굉장히 독특한 시선이 느껴지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그 공연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작가님을 만났고 시나리오화를 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전달했다. 원래 연극에서는 주리가 남학생이었다. 작가님께는 두 학생을 모두 여학생들로만 바꾸고 싶다는 의견을 전했다. 남여학생으로 하면 불필요한 다른 느낌으로 전달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여학생 둘로 바뀌는게 나을거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때 이후 영화로 나오기까지 5년이 걸렸다"고 입을 연 김윤석. 그는 "감독님들께 여쭤보니 하나의 작품이 영화화 되기까지 가장 길게 걸리는 시간이 3년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저는 5년이 걸렸다. 해보니까 쉬운일이 아니더라"며 웃었다.
원래 연출가의 꿈이 있었냐는 질문에는 "원래 언젠가는 연출가를 하려는 막연한 목표가 있었다. '황해' 찍을 때도 하정우씨랑 '형이 먼저 하세요' '네가 먼저해라'라면서 연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했다. 원래 연극 연출도 했었고 언젠가는 영화 연출도 꼭 하고 싶었다. 언젠가 내가 직접 연출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게 되면 꼭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어 "어떤 사람들은 제게 연출 데뷔를 너무 늦게 한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지만 저는 준비가 필요했다. 준비도 없이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좋은 이야기를 만났고 지금 선보이는게 시기적으로 잘 맞은 것 같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늦으면 안될 것 같긴하더라"고 덧붙였다.

평소 배우로서 출연한 작품에서는 남성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주로 선보였던 김윤석. 하지만 감독 김윤석이 선보인 '미성년'은 인물의 감성을 따라 진행되는 드라마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제가 좋아하는 영화가 있고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는데 제가 연기했더 캐릭터는 너무 달랐다"며 웃었다. 이어 "이 영화에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표현됐다. 저는 원래 드라마와 연기로 흘러가는 작품을 좋아한다. 정말 오래갈 수 있는 테마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왕이나 히어로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웃의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야 말로 오래 갈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야기들이야 말로 몇번을 꺼내봐도 질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김윤석은 여성 서사 중심의 이야기를 통해 '김윤석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에 대해 "저는 집에 가면 혼자 남성이다. 아내와 딸들. 우리집 강아지도 여성이다. 네 명의 여성과 늘 살고 있다"며 웃었다. 이어 그는 "다만 연출자로서 남성으로서 어쩔 수 없이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그런건 언제나 주변에 물어보려고 했다. 공동작가고 편집기자도 모두 여성이었다. 그들에게 도움을 많이 보고 의견을 많이 들으려 했다"고 말했다.


또한 김 감독은 "제가 이 작품을 만들 때 가장 동력이 됐던 모습이 있다. 죄를 지은 어떤 사람은 코를 골며 자고 죄를 짓지 은 어떤 사람은 가슴에 멍이 들도록 뜬눈으로 밤을 하얗게 세우면서 이성과 자존감을 지키지는 모습. 저는 우리 영화를 통해 그런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게 바로 이 영화의 그리고 싶은 가장 큰 그림이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대원을 제외한 네 등장인물을 표정을 담아내는게 가장 중요했다. 영화가 클로즈업 장면을 굉장히 많이 쓰는데 그런 순간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완전히 다가가야 했다"고 강조했다.

극중 남자 주인공 대원 역을 직접 연기한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원래 제가 아닌 다른 배우에게 대원 역을 주려고 했다. 그런데 소위 '빠꾸'를 많이 맞았다. 야멸찬 거절이 아니라 '아 이 역할은...'라며 거절을 당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그러다보니 누군가에게 드리긴 애매한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제가 생각했던 대원의 모습은 거의 '뒷모습'이다. 영화 속 대원은 거의 뒷모습, 옆모습, 포커스가 아웃된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나. 그런데 주연배우 타이틀롤로 이 배역을 맡은 배우에게는 그런 게 실례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내가 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대원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저는 대원이 익명성이 띄길 바랐다. 고유명사가 아니라 우리의 약하고 비겁한 모습을 보여주는 익명성을 띈 인물. 그래서 이름도 '대원'이다. 사전적 의미가 '집단을 이루는 구성원'이라는 뜻이다"고 설명했다.
염정아를 주인공 영주 역으로 캐스팅 한 이유에 대해서도 물었다. "저는 '오래된 정원'(2007, 임상수 감독) 속 염정아씨의 모습을 굉장히 오래 동안 기억하고 있다. 그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 부분은 영화가 캐릭터의 내면에 집중한다는 것이었다. 잘 만든 시나리오가 아니라면 그런 걸 표현하기가 정말 힘들다. 그리고 염정아 씨도 너무 잘해줬다. '오래된 정원'에서 윤희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염정아를 떠올리니 꼭 이 배우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사실 초반 시나리오가 친절한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지문이 많이 없고 거의 대사로 이뤄진 시나리오였는데 염정아씨가 하루만에 OK를 해줬다. 정말 너무 감사했다"고 전했다.

극을 이끌어가는 아주 중요한 캐릭터인 고등학생 주리(김혜준)과 윤아(박세진) 역을 유명한 배우들이 아닌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신인 배우들에게 맡긴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주리와 윤아는 고등학교 2학년이다. 물론 연기를 너무 잘하고 뛰어난 젊은 배우들도 계시지만 그 분들은 이미 대학에 진학하셨다는 기사도 났고, 그분들이 학생연기를 맡으면 '또 학생역이야?'라는 선입견의 시선도 받으실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래서 보자마자 학생 느낌이 나는 신인 배우들을 쓰고 싶었다. 혜준씨와 세진씨 모두 연극영화과 학생이지만 보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얼굴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또한 김윤석은 김희원, 이희준, 이정은 등 뛰어난 베테랑 연기자들의 조연 출연에 대해 "그분들을 카메오, 혹은 특별출연 형식으로 출연 부탁을 드리고 싶진 않았다. 카메오는 우리 영화의 톤과 맞이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저를 도와주고 싶어하셨던 배우분들은 많았다. 작은 역할이라도 카메오로 출연해주겠다고 마음을 전해주신 분들도 계셨다. 하지만 카메오나 특별 출연 느낌이 강하면 영화의 집중이 안된다고 생각해서 김희원, 이희준, 이정은 배우분들게 '조연'으로서 연기를 부탁드렸다"고 말했다.

배우 출신 감독으로서 앞서 먼저 연출에 도전했던 하정우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는 김윤석 감독. 그는 "정우씨가 '형 감독으로서 모니터 앞에 있으니까 더 많이 보이는게 있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연출을 해보니 정말 그렇더라. 계속 모니터 안에 있는 배우로 살다가 모니터를 통해 배우를 보니까 굉장히 다른게 보이더라. 그래서 배우로서도 우리 '미성년' 배우들에게 정말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진정한 어른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영화 '미성년', 김윤석 감독은 "본인이 생각하는 진짜 어른이란"이라는 질문에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며 입을 뗐다. 그는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는 모습이 젊었을 때는 추하게 보여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보이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그런 감각이 없어진다. 막 이쑤시개를 물고 다니는 사람까지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런 모습이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무뎌지는 거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느 순간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어른이 되려면 무뎌지지 않게 계속 노력을 해야 발전이 된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됐다고 나를 확 놓는 순간 추해지는 것 같다. 어른은 계속 노력해야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미성년'은 김윤석이 메가폰을 들었으며 김윤석, 염정아, 김소진, 김혜준, 박세진 등이 출연한다. 오는 4월 11일 개봉.

smlee0326@sportschosun.com, 사진 제공=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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