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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알츠하이머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단골 소재다. 김혜자도 이미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망상성 치매 증상을 가진 독거노인 조희자 역을 맡았던 바 있다. 그러나 극중 할머니들의 삶을 조명하는 소재 중 하나였을 뿐, 전면에 드러나진 않았던 것. '눈이 부시게'에서는 김혜자가 25세 시절 과거와 70대의 현재를 동시에 살아가는 모습을 전면에 담으며 노인의 치매에 대한 젊은이들의 이해를 도왔다. 치매 노인이 마치 '악'인 것처럼 이용됐던 과거 수많은 드라마와는 결이 달랐다. 노년을 맞이한 배우들, 그리고 현실의 노년들에게도 용기를 준 작품이다. 누군가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닌 온전한 자신으로 카메라 앞에 서고, 주체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인물들로 표현됐다.
과거와 현재를 같이 살고 있는 김혜자는, 연기 인생 58년을 맞이한 대 선배 배우 김혜자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김혜자는 드라마 시작 전 제작발표회에서 "이 드라마는 제가 생전 처음 경험해 보는 드라마다. 어떤 드라마와도 비슷하지 않다. 그래서 굉장히 설렌다. 상투적이지만 너무 설레였다 너무 새로운 거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설레였다고 했다. 김혜자도 처음 해보는 연기였던 셈. '노년'을 맞은 배우 중 대표 주자로서 치매를 제대로 표현해냈다는 점에서 김혜자는 '눈이 부시게'에 의미를 더한 배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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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의 변신은 또다시 '성공'으로 마무리됐다. 58년 연기 인생으로 '국민 엄마'의 1번 반열에 오른 김혜자는 때로는 푸근하게 자식들을 품에 안았고, 때로는 자식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기 위해 독립적 삶을 살려 노력하는 치매 엄마로 열연했다. 그리고 여고생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아들을 구하는 극강의 모성애를 간직한 '마더'로도 활약하며 '국민 엄마'로 관객과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김혜자의 인생작은 손에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58년의 연기 경력을 가지고 있는 배우니 당연하겠지만, '전원일기'의 국민 엄마부터 "그래, 이 맛이야!"라는 대사로 사랑을 받았던 광고까지 김혜자의 인생작은 방송과 스크린, 광고를 불문하고 다양하게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인생작을 하나 더 추가했다. 따뜻한 감성이 살았던 '눈이 부시게'다.
김혜자의 마지막 내레이션도 감동이었다. 김혜자는 "내 삶은 때론 불행하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이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 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니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라는 감동의 메시지를 남겼다.
노년의 삶을 보여준 '눈이 부시게'가 보여준 성과는 대단하다. 첫 방송 시청률 3.2%(닐슨코리아, 유료가구 전국기준)로 출발한 뒤 마지막회에서는 9.7%를 기록, 무려 세 배가 오른 시청률을 자랑했다. 그만큼 '눈이 부시게'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세대의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던 작품이었다.
lunam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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