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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신체극(physical theater) 한 편이 성수동 우란 2경에서 공연 중이다. 2017년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은 씨어터 리(Theater Re)의 '네이처 오브 포겟팅(The Nature of Forgetting)'이 그것이다.
치매 환자인 중년의 남자 톰이 주인공. 그는 생일을 맞아 딸이 골라준 재킷과 넥타이도 혼자서 입지 못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다. 톰은 옷걸이에 걸린 다른 옷들과 헷갈리다가 그 옷들을 통해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어린 시절 엄마와의 추억, 즐거웠던 학창시절, 달콤한 첫사랑의 순간들….
창작 당시 이 작품은 의학자들의 자문을 거쳤다고 한다. 덕분에 망각의 메카니즘을 '과학적으로' 보여준다. 신기한 점은, 인간의 기억이 조금씩 사라지고, 몇 가지들은 서로 얽히고, 또 점점 잊혀지는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쓰는 주인공의 노력을 오로지 배우들의 몸짓을 통해 실감나게 구현한다는 것이다.
톰을 중심으로 한 4명의 배우들은 70분 동안 잠시도 쉬지 않는다. 연기와 춤, 마임을 섞어가며 걷다가, 뛰다가, 빙글빙글 돌다가, 때로는 자전거를 타면서 다양한 역할을 번갈아 소화한다.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팀워크가 대단하다. 여기에 피아노와 바이올린, 드럼과 퍼커션 등을 활용한 2인조 밴드의 인상적인 라이브 음악은 드라마의 깊이와 애잔함을 더해준다.
나이가 들수록 옛날 일은 기억하지만 최근 일은 기억나지 않는 법이다. 톰이 점점 더 자신을 괴롭히는 망각의 힘과 싸우며 과거의 행복했던 추억을 소환하려고 애쓰는 과정을 보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위트있고 재기발랄하고 에너지 넘치는 텍스트에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쳐야하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인 숙명을 잔잔하게 담았다.
영화와 드라마는 물론, 공연계에서도 감정과잉의 멜로 드라마가 만연한 세상에서 슬픔을 한 단계 여과하여 승화하는, 그리하여 '삶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끔 하는 작품이다.
'연극열전 7'의 네 번째 작품으로 우란문화재단이 기획을 맡았다. 18일까지.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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