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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종합] "밥 잘 사주는 착한 형"…진선규, 청룡이 가져다준 소확행

조지영 기자

기사입력 2019-01-17 15:13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다들 제게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고 하는데 지금 제게 정말 필요한 것은 '노 젓기보다는 내가 가야 할 곳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는 것'이라 생각해요."

충무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배우 진선규(42). 강렬한 악역을 벗고 친근하고 인간적인, 진선규다운 모습으로 돌아온 그가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담은 연기 소신을 밝혔다.

수사 코미디 영화 '극한직업'(이병헌 감독, 어바웃필름 제작)에서 잠복근무 중 우연히 절대 미각을 발견하게 된 마형사를 연기한 진선규. 그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스포츠조선과 만나 '극한직업'에 대한 비하인드 에피소드와 근황을 전했다.

불철주야 달리고 구르지만 실적은 바닥, 급기야 해체 위기를 맞은 마약반이 국제 범죄조직의 국내 마약 밀반입 정황을 포착한 뒤 치킨집에 잠복 수사에 나섰지만 뜻밖에 치킨집이 맛집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수사는 뒷전이 된 마약반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펼친 '극한직업'. 닭을 팔기 위해 수사를 하는 것인지, 수사를 하기 위해 닭을 파는 것인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마약반의 고군분투를 다룬 '극한직업'은 보는 이들에게 큰 웃음을 전하며 설 극장을 사로잡을 전망이다.

특히 이번 '극한직업'은 '범죄도시'(17, 강윤성 감독) 위성락으로 제38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충무로에 파란을 일으킨 진선규의 첫 코미디 도전으로 시선을 끈다. 극 중 사건 해결보다 사고 치기에 바쁜 마약반의 트러블 메이커 마형사로 변신한 진선규는 수원 왕갈비집 아들로, 갈비 양념 비법을 전수받은 레시피를 이용해 잠복한 치킨집을 대박나게 한 일등 공신으로 등장, 빅재미를 선사한다. 본인도 몰랐던 숨은 재능인 절대 미각을 발견한 뒤 요리와 수사를 양손에 거머쥐며 살벌하게 웃기는 마성의 캐릭터로 환골탈태한 진선규다.


진선규는 '범죄도시'에서 보인 짧은 헤어스타일과 달리 많이 긴 헤어스타일에 대해 "'범죄도시' 당시에는 짧은 머리가 어색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짧은 머리가 너무 편하고 좋더라. 그때는 머리가 너무 짧아서 다른 자리에서는 가발도 쓸 정도였다. 그런 과정을 겪고 나서 내 머리가 얼마나 긴 줄 몰랐는데 요즘 보면서 많이 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도 내 머리가 긴 게 어색하다고 하더라"며 말문을 열었다.


2017년 11월 2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제38회 '청룡영화상'이 열렸다.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진선규가 수상 소감을 말하며 눈물 흘리고 있다.
김보라 기자 boradori@sportschosun.com

2017년 11월 2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제38회 '청룡영화상'이 열렸다.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진선규가 수상 소감을 말하며 눈물 흘리고 있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특히 진선규는 청룡영화상 이후 쏟아진 많은 관심에 대해 "나 자신 자체가 달라진 것은 없었다. 주위 분들의 반응이 달라진 것 같다. '범죄도시'로 수상을 하게 됐는데 특히 수상소감이 많은 분께 다른 모습으로 보인 것 같다. 나의 원래 모습이 보여진 것 같아 그걸 또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 수상 소감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됐다"며 "원래 내 모습대로 내 몫을 잘 해내는 게 앞으로의 목표다. 크게 변한 것은 없다. 지금도 지하철 타고 다니고 간혹 알아봐 주시는 분이 있으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인사를 드린다. 인기가 많아져서 신경이 쓰이거나 그렇지는 않다. 스케줄 아니면 대중교통을 타면서 그렇게 돌아다니고 있다. 실제로 머리가 짧을 때는 대중이 많이 알아봐 주셨는데 머리가 긴 뒤에는 잘 못 알아본다"고 머쓱하게 웃었다.

이어 "청룡영화상 이후 올해까지 네 작품 했다. 1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와 정말 상황이 달라졌다. 일례로 집에서 쓸 돈이 조금 여유가 생기고, 무엇보다 후배들에게 종종 맛있는 걸 사줄 수 있는 형편이 됐다. 집을 사고 재테크, 투자하지는 않았다. 그저 아내, 자식들과 쓸 돈이 생겼고 후배들에게 밥 한 두 번 사줄 수 있는 여유가 됐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소박한 행복을 전했다.



진선규는 자신을 여기까지 이끌어준 동료들에게 무한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사실 나는 연기를 잘 못 하는 애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면서 우리끼리 만들어보자 했던 워크숍의 스타트가 너무 재미있었고 그게 좋은 기회가 됐다. 그때 만들었던 워크숍을 통해 '연기가 이렇게 재미있는 거야'를 느꼈다. 그때는 '나는 훌륭한 배우가 될 거야'라는 다짐은 없었고 그저 '연기를 재밌게 할 수 있다'라는 느낌을 가졌던 것 같다. 동료들과 모이는 게 즐겁고 연기 이야기를 하는 게 즐거웠다. 그래서 그 뒤에도 연기에 대한 다양한 도전을 해보게 됐고 그렇게 우리의 워크숍이 적립화됐다. 실제로 워크숍을 통해 만든 공연이 흔히 말해 '대학로 선수'들에게 입소문이 났다. 선수 중에는 극단 차이무 선배들이 와서 봐주고 좋아해 줬다. 그때 '우리가 잘하고 있구나' 싶었는데 그게 벌써 15년이 지났다. 아마 그때 만난 동료, 친구가 없었다면 지금쯤 좌절했을 것이다"고 밝혔다.

이어 "연기를 시작하고 결혼한 뒤 집에 쌀이 떨어진 적도 있었다. 지금은 믿기지 않지만 정말 결혼하자마자 쌀이 떨어지더라. 현금 카드가 다 끊기기 시작하고 돈이 떨어졌다. 그래도 너무 고마운 게 아내이자 동료 배우인 박보경이 나에 대해 실망한 게 아니라 친구에게 '빨리 전화해 부탁하자'고 말해주더라. 에너지가 눌린 게 아니라 '앞으로 연기를 더 잘해야겠다'라고 마음먹게 됐다. 내가 즐거워한 걸 다 허락해준 아내인데 그런 아내에게 실망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작품을 만들었다. 연기를 하면서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드라마에 나오고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과 연기할 수 있겠지?' 바람을 가졌지만 '돈을 많이 버는 배우가 될거야' 이런 생각은 안 했다. 즐겁게 내 일을 하다 보면 되겠지 했는데 생갭다 너무 빨리 된 것 같다. 나는 내 일을 열심히 즐겁게 할 수 있었고 그걸 도와준 동료들이 있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루피처럼 동료를 많이 만들고 함께 가고 싶다. 원래 정말 부족한 사람이다.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다"고 겸손을 보였다.


이렇듯 '범죄도시', 그리고 청룡영화상 수상 이후 인생이 달라진 진선규. 하지만 남모를 고충도 있었다. 특히 진선규는 강렬한 악역 각인에 대한 걱정을 털어놔 공감을 샀다. 그는 "'범죄도시'는 나를 이렇게 많은 대중에게 알려준, 내 생애 최고의 작품, 생애 최고의 캐릭터다. 내 출발이 돼 준 작품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 각인이 나에 대해 너무 큰 각인으로 남아 난감할 때가 많았다. '범죄도시' 이후 내게 제안이 들어온 시나리오를 봐도 그렇다. '범죄도시' 악역만큼 내가 잘 소화할지 자신도 없었고 또 악역을 도전하기에 '범죄도시'와 텀이 너무 짧았다. 아무래도 '범죄도시' 악역과 앞으로 악역이 비교될 것 같아 고민이 컸다. '범죄도시' 만큼 매력적인 악역을 만들기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데 한동안 시나리오가 '범죄도시' 같은 악역만 들어와서 거절하기 미안하고 고민도 컸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어 "계속 악역을 제안받았는데 다른 느낌, 새로운 이미지의 작품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범죄도시'를 지워버리고 싶어가 아니라. 이건 이대로 나의 큰 존재감을 남겨 두고 또 '범죄도시'의 아류를 만들기보다는 다른 이미지로 새로운 대표작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나의 대표작을 관객에게 선보이고 싶었다. 늦게 시작한 만큼 욕심이 많아진 것 같다. 나도 사람이라 비슷한 역할을 하다 보면 부족해질 때가 있다. 지금은 다른 느낌의 다른 것들을 하는 게 좋은 것 같다"고 연기 소신을 밝혔다.


첫 코미디 장르 도전인 '극한직업'은 과거 극한 직업과도 같았던 진선규의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었기에 더욱 빛을 발했다. 진선규는 "경상남도 진해 출신인 나는 서울에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 연기를 하려고 무작정 가방 3개를 싸 들고 왔다. 처음에는 살 곳이 없어서 삼촌의 친구 자취방에 3개월 살고 이후에는 6촌 형수가 서울에 산다는 걸 들은 뒤 그 집에서 3개월 머물며 학교에 다녔다. 학교에 다니면서 돈이 너무 없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밤 9시부터 새벽 5시까지 일을 했다. 당시 수업이 9시부터 6시까지 있었는데 아르바이트까지 해서 한숨도 잘 시간이 없더라. 젊은 나이 하나 믿고 일주일 동안 한숨도 못 자며 일을 했는데 나중에는 지하철에서 선 상태로 졸아 문에 머리를 박기도 했다. 계속 머리를 박다 쓰러진 뒤 아르바이트를 멈췄다. 그야말로 '미친놈처럼 생활했구나' 싶었다. 당연히 잠을 못 자서 수업시간 때도 졸았는데 그래서 학교에서도 욕을 먹어야만 했다. 그땐 극한직업이었다. 그러다 같은 과 누나가 과천의 한 놀이공원 설거지 아르바이트가 있다며 함께하자고 제안해 그곳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했다. 설거지를 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이 내가 꽤 설거지를 잘한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점심시간에 학교 식당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런식으로 돈을 벌면서 학교에 다녔다. 봇짐 장사꾼처럼 친구 자취방을 전전했고 군대 갔다 제대하고 3개월간 공장에서 일을 해 돈을 모아 보증금 200만원에 월 15만원짜리 지하 자취방을 얻기도 했다. 말하다 보니 인간극장이 됐지만 실제 내 경험담이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진선규는 "다들 내게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고 하는데 지금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은 '노 젓기보다는 내가 가야 할 곳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막무가내로 노만 젓다가는 그 자리를 뱅뱅 돌 수도 있고 내 배의 크기가 얼마인지도 모르고 노를 저으면 침몰할 수 있다. 특히 나는 내 동료들을 모을 수 있는 배를 몰고 싶은데 그래서 자만하지 않고 더 조심, 더 조신, 더 겸손하게 연기하려고 한다"고 진심을 말했다.


한편, '극한직업'은 해체 위기의 마약반 형사들이 범죄조직 소탕을 위해 위장 창업한 치킨집이 맛집으로 뜨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작품이다. 류승룡, 이하늬, 진선규, 이동휘, 공명이 가세했고 '바람 바람 바람' '스물'의 이병헌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오는 23일 개봉한다.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CJ엔터테인먼트, 메가박스중앙 플러스 엠, 스포츠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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