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영화상후보작

스포츠조선

[게임 만평] 북미 게이머게이트와 한국 메갈-워마드 논란, 게임 업계 '혐오 프레임 씌우기'가 공통점

송경민 기자

기사입력 2018-07-13 08:49





지난 2014년 북미 게임 업계는 두 번 다시 없을 대사건을 맞았다. 어떤 개발자가 신작을 출시했는데, 평론가 평은 좋았지만 유저 평가는 좋지 않았다. 이에 개발자가 유저들을 '혐오주의자'로 몰아가면서 작은 논란은 대사건이 됐다.

여성 개발자 '조이 퀸(Zo? Quinn)'은 2013년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 '디프레션 퀘스트(Depression Quest)'를 발표했다. 우울증에 걸린 주인공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심리를 묘사하고, 유저에게 선택지를 주면서 선택에 따라 다양한 상황이 발생하도록 만들어 우울증이 무엇인지에 대해 유저가 생각할 수 있도록 한 게임이었다.

처음에는 공식 홈페이지에서만 서비스되던 '디프레션 퀘스트'는 세계 최대 PC 게임 플랫폼 스팀(Steam)까지 진출했다. 당시 스팀에서는 인디 게임 개발자가 게임을 등록하면 유저가 평가를 해 게임 출시 여부를 결정하는 그린라이트(Greenlight)라는 시스템을 운영했다. '디프레션 퀘스트'는 그린라이트를 통해 스팀에 출시됐다.

'디프레션 퀘스트'는 일부 매체와 평론가로부터 호평을 받았지만, 유저 평가는 좋지 않았다. 게임이 글과 삽화 몇 장으로 구성돼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 홈페이지 작성 기본 언어)로만 구현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했고, 우울증이라는 심리를 묘사한다는 이유로 선택지에 취소 선을 그어 특정 선택을 강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평가는 무차별적으로 삭제됐고, '디프레션 퀘스트'가 게임 업계 인맥과 여성 단체 지원을 통해 그린라이트를 통과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또한, '조이 퀸'이 사귄 전 남자친구 '에런 조니(Eron Gjoni)'가 "'조이 퀸'은 게임이 좋은 평가를 받게 하려고 평론가 5명과 육체관계까지 맺었다"라는 거짓 폭로를 하면서 논란은 가중됐다.

북미 게임 유저들은 '디프레션 퀘스트'와 '조이 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이 퀸'은 의문을 제기한 유저들을 '여성 혐오'로 몰아갔다. 유저들은 곧바로 여성 게임 개발자를 지원하면서 수익을 기부하는 단체 TFYC(The Fine Young Capitalists)를 후원하고, 자신들은 절대 '여성 혐오'를 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조이 퀸'은 TFYC를 '여성 혐오' 단체라고 언급하며 "여성들을 무상으로 부려먹는 구걸 단체"로 호도했다. 그렇지만 TFYC는 여성 개발자가 제시한 게임 기획안으로 얻은 수익 배분을 홈페이지(http://www.thefineyoungcapitalists.com/profitBreakDown)를 통해 확실히 공개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조이 퀸'에 대한 여론은 빠르게 나빠졌다.

북미 게임 유저들은 '조이 퀸'을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으로 분열됐다. 이 과정에서 사건 본질은 제쳐 두고 '조이 퀸' 개인에 대한 악성 루머를 생산하는 이가 등장하는가 하면, '조이 퀸'을 지지한 여성 게임 비평가 '아니타 사키시안(Anita Sarkeesian)'이 살해 협박을 받는 등 사건은 심각하게 전개됐다.


여기에 여성 개발자 '브리아나 우(Brianna Wu)'가 '조이 퀸'을 옹호하면서 게임 유저를 "아스퍼거 증후군에 걸린 모자란 인간들"이라 비하하고, CNN, NBC, PBS 등 북미 언론까지 "'조이 퀸'을 비롯한 게임 업계 여성들이 인터넷 싸이코패스, 백인 남성우월주의자들로부터 공격받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하면서 사건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이렇게 북미 게임 업계를 양분한 사건을 중심인물 이름인 '퀸(Quinn)'과 음모, 모의를 뜻하는 영어 단어 'Conspiracy'를 합쳐 '퀸스피러시(Quinnspiracy)'라고 부른다. '게이머게이트(Gamergate)'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당시 유저들이 SNS에서 게임 유저를 뜻하는 영어 단어 'Gamer'와 추문, 스캔들을 뜻하는 '-gate'를 합친 '게이머게이트'를 해시태그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여성주의 비평가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스(Christina Hoff Sommers) 박사는 "게임 업계 여성들이 공격받은 일은 유감스럽고 공격한 유저들 또한 옹호할 여지가 없지만, 여성 개발자가 만든 게임에 부정적인 평가를 했다는 이유로 유저들을 '여성 혐오'로 보는 건 옳지 않다"며 "따라서 '게이머게이트'를 기반으로 게임 유저와 게임 업계 전체를 '여성 혐오'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게이머게이트'는 게임 콘텐츠를 부정한 유저들을 '여성 혐오'로 몰아갔다는 점에서 최근 국내 게임 업계에서 발생한 '메갈리아/워마드 논란'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두 사건 모두 유저가 게임 콘텐츠에 부정적인 의견을 전달했는데, 콘텐츠 제작자가 유저들을 '여성 혐오'로 규정하고 사건을 크게 키웠다.

다른 점도 있다. '게이머게이트'는 개발자와 일부 유저가 서로 비방하면서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양쪽 모두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메갈리아/워마드 논란'은 게임 소비자(유저)를 성적(性的)으로 조롱하고 혐오하는 내용에 공감한 콘텐츠 제작자를 유저가 거부하고 게임사가 대응한 데서 비롯됐다. 유저는 소비자 권리를 주장했고, 게임사는 선택했으며 콘텐츠 제작자는 행동에 책임을 졌을 뿐이다. 어느 쪽도 과실이 있다고는 볼 수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게이머게이트'와 '메갈리아/워마드 논란'은 유저가 게임에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고 콘텐츠 제작자가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유저 다수가 남성이고 제작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 혐오'라는 프레임(틀)이 씌웠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게이머게이트'는 북미 게임 업계를 분열시켰지만, '메갈리아/워마드 논란'은 한국 게임 업계를 양분하지 못하고 오히려 유저 의견을 뭉치게 하는 데 일조했다"고 말했다.

그림 텐더 / 글 박해수 겜툰기자(gamtoon@gamtoon.com)

스포츠조선 바로가기[스포츠조선 페이스북]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