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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함무라비'가 현실을 꼬집는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회사는 사소한 것도 트집을 잡아 모멸감을 줬다. 회장 앞에서 횃불을 들고 각오를 다지고 낙오자가 없을 때까지 풀코스 마라톤을 뛰게 하는 비정상적인 조직에서 이영수는 느리고 답답한 죄인일 뿐이었다. 자신의 꿈까지 아들의 어깨에 지우고 아들이 원했던 국문과가 아닌 법대에 진학시킨 아버지와 어머니의 지독한 사랑은 독이 됐다. 대출 받아서라도 큰 평수로 이사 가길 요구했던 아내는 오피스텔을 몰래 빌린 남편의 외도를 의심했지만, 이영수는 그곳에서 시를 쓰고 있었다.
임바른(김명수 분)은 당사자들을 조정실로 불렀다. "단 한 번이라도 독립된 한 명의 인간으로 존중해 준 적 있냐?"고 부모와 아내를 질책한 임바른은 "여기 계신 모든 분이 공범이다. 태어난 대로 살고 싶었을 뿐인데 남들과 같은 모습을 강요했다"면서도 "이영수는 한 번도 거부하지 못한 책임을 스스로 지고 있고, 가족들도 함께 짊어지게 될 것"이라고 정리했다. 그리고 회사 측에는 조정이 아닌 재판으로 엄정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다르지만 닮아 있는 두 사건을 통해 보여준 현실은 씁쓸하지만 공감을 자아냈다. 아이들조차 아파트 가격에 따라 서로의 급을 매길 정도로 1등만을 요구하는 비정한 사회가 어쩌면 모든 민사 사건의 원인일 지도. 그 사회에서 가족도 울타리가 되지 못했다. 도태시키지 않기 위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녀의 의견을 묵살하기도 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려 가족들을 외롭게 만들기도 했다.
'미스 함무라비'는 날카롭게 모두의 책임을 지적했지만 그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판결에 그치지 않고, 부당행위가 있을 경우 고발을 검토하겠다고 선언한 임바른과 "미안하다"고 사과한 한세상의 판결은 뭉클했다. 회가 거듭될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 타인의 살갗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미스 함무라비'의 진정성은 더욱 진한 여운을 남겼다.
법원을 둘러싼 전관예우 문제를 가감 없이 담아낼 '미스 함무라비' 9회는 오늘(19일) 밤 11시 JTBC에서 방송된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