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칸 인터뷰]'버닝' 스티븐연 아닌 '연상엽'이 전한 진심(종합)

이승미 기자

기사입력 2018-05-19 15:47


CGV아트하우스 제공

[스포츠조선 칸(프랑스)=이승미 기자]영화 '버닝'에 할리우드 배우 '스티븐 연'은 없었다. 한국의 정서와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 감독 이창동이 구축한 세계를 온몸으로 흡수하고 연기한 연상엽이란 배우만 있을 뿐이다.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제71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것도 모자라 전 세계 유수의 작품을 재치고 유력한 황금종려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이창동 감독의 8년만의 복귀작 '버닝'(파인하우스필름 제작). 이창동 감독을 비롯한 주연배우 유아인, 스티븐연, 전종서는 18일(현지시각) 오전 프랑스 칸 마제스틱 비치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할리우드 최고의 인기 드라마 '워킹데드'를 통해 이름과 얼굴을 알린 할리우드 스티븐연은 지난 2017년 제70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옥자'에 출연한 배우로 한국 관객들에게 더욱 친근한 배우다. '옥자'에서 스티븐연은 동물보호단체의 일원 케이를 맡아 귀여우면서도 유머러스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 그가 '버닝'에 캐스팅 됐을 당시 많은 이들을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국적 색채게 강한 영화를 만드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에 그가 어울릴까. 한국어를 100%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 그가 순도 100%의 한국영화에 출연해 연기할 수 있을까. 극중 '벤'이라는 이름처럼 영어로 연기하는 것인가.
하지만 '버닝'이 공개되자 모든 의심과 우려는 눈 녹듯 녹아내렸다. 크레딧의 자신의 이름을 '스티븐연'이 아닌 '연상엽'이라는 이름을 올린 그는 한국영화 '버닝'에 완전히 동화되며 100% 한국어 연기를 보란 듯이 소화했다. 그리고 '옥자' 속 귀여운 케이의 모습을 완전히 지우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하면서도 섬뜩한 벤의 모습을 완벽하게 그려냈다.

이날 인터뷰에서 스티븐연은 '버닝'을 향해 쏟아지는 칸 현지의 뜨거운 반응에 대해 "정말 기분이 좋다.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의 힘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 감독님 영화를 보면 한국적인 코드 안에서 유니버설 코드도 함께 들어있다. 이 뿐만아 이나라 인간적 모습을 폭넓게 보여준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뿌듯해 했다.

그리고 그는 이창동 '버닝'이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작품이었으며 벤이라는 캐릭터와 자신의 공통점을 찾아내 연기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제가 이 작품이 일종의 용기를 주는 영화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이창동 감독님이 내가 스스로 영화에 대한 해석을 할 수 있게 열어주셨다는 거예요. 벤의 감정이나 외로움을 감독님이 일일이 설명하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벤이 느끼는 외로움이 제가 스스로 느끼도록, 느껴서 소화하도록 하게 해주셨다. 저라는 사람이 벤과 백프로 똑같을 순 없지만 저도 이 벤을 이해할수있도록 감정을 느끼려고 했다. 감독님께서 성격의 미묘함을 저와 맞춰서 만들어나가는 좋은 조건을 만들어 주셨어요. 저도 배우라는 제 직업상 가진 게 있는 기득권자라고 생각한다. 그런 모습이 벤이란 캐릭터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또한 이민권자라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와 벤의 비슷한 부분을 맞춰 나가려고 했죠."
또한 그는 벤의 싸이코패스적 성향과 그런 성향을 더욱 섬뜩하게 만들어줬던 섬뜩한 웃음 소리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다.

"싸이코패스 성향 연기하는 건 사실 크게 어렵진 않았어요. 그들은 룰이 없기 때문이죠. 그냥 이사람은 카오스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표현하면 됐어요. 오히려 연기하기 가장 어려웠던 건 이 사람의 외로움을 나타내는 것이였죠. 벤만이 가지고 있는 외로움이요. 웃음 소리에 대해서는 시나리오에 정확한 워딩이 있었어요. '소름끼치는 웃음'이라고. 감독님께서 정확한 디렉팅은 없었지만 제가 어떤 느낌인지 해석해서 연기했어요."


그렇다면 극중 싸이코패스 성향을 보인 벤은 정말 살인을 저질렀을까. '버닝'에서는 벤이 살인을 저지는 상황을 보여주거나 그가 사람을 죽였다는 정확한 확신을 보여주지 않는다. 과연 스티븐은은 어떻게 생각하고 연기했을까.

"한국어 단어 중 좋아하는 단어가 '미묘'라는 것이에요. 그 단어는 벤에게도 가장 걸맞는 단어 갔어요. 물론 제가 연기했을 때는 벤이 어떤 행동을 했을지 상상하고 연기했지만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말씀드리지 않을래요. 관객들이 보고 느끼시는 것으로 받아드리시길 바라요. 감독님의 의도 또한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감독님 역시 본인이 결정해서 저에게 알려주지 않고 제가 스스로 생각하고 연기하게 하셨으니까요."

예상 이상으로 완벽했던 한국어 연기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한국어 연기로 인해 처음에는 '버닝' 출연을 고사할 생각도 있었다는 그는 이 영화가 한국어 연기도 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한국어 연기 때문에 출연을 고사 할 생각도 했었어요. 이창동 감독님과 함께 작업하는 건 영광이지만 제 한국어 연기로 인해 영화를 망칠까봐 걱정됐죠. 한국어가 가진 뉘앙스를 제가 100% 완벽히 연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어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고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원래 내가 가진 뉘앙스가 벤이라는 인물에 잘 맞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어 대사를 외우고 연기하는 일은 분명히 겁이 나는 일일텐데 이상하게도 겁이 나지 않았어요. 그건 이 영화가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 같아요. 그리고 감독님도 아인 씨도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또한 스티븐연은 이날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유아인에 대해 이야기 했다. 스티븐연은 유아인을 '베리 굿 퍼슨(a very goof person)'이라고 칭하며 입을 열었다.

"유아인은 훌륭한 연기자이자 똑똑하고 용기도 있는 사람이에요. 그와 전 처음부터 편안함을 느꼈어요. 처음부터 편한 감정을 느낀다는 게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은 아니잖아요. 그것도 이창동 감독님의 탁월한 캐스팅이라 생각해요. 조각같은 사람들이 알맞게 퍼즐처럼 맞아들어가는 걸 캐스팅에서도 볼 수 있었죠. 그리고 아인씨에게 정말 고마웠어요. 제가 외국인인데도 아인씨는 저를 외국인이 아니라 그냥 배우로서 받아줬죠."
영화가 시작하고 이창동 감독의 이름과 유아인의 이름이 스크린에 나타난 후 생소한 이름이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로 '연상엽'. 이는 스티븐연의 한국 이름이다. 그는 왜 누구에게나 알려진 '스티븐연'이 아닌 '연상엽'이라는 이름으로 '버닝'에 참했을까.

"한국 이름 사용은 이 영화에 내가 얼마나 깊숙이 들어가냐에 대한 이유이기도 했어요. '버닝'은 저의 한국 이름을 쓰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가족들을 보려고 가끔 한국에 오면 저의 주변 사람들 가족들은 저를 '상엽아'라고 불러요. 많은 사람들이 저를 스티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제가 유명해진 후 불과 8년 정도 사이에 알려진 이름이에요. 한국에 왔고 그 안에서 '버닝'을 만났고, 연상엽이라는 이름을 쓰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터뷰가 모두 마무리되는 말미, 스티븐연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영화 외적으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사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최근 그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 조 린치 감독이 SNS에 올린 욱일기 옷을 입고 찍은 어린 시절 사진에 '좋아요'를 눌러 네티즌은 질타를 받은 후 사과문을 공개한 바 있다.

"영화 외적으로도 제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섣부르고 잘못된 실수를 한 것 같아 많은 분들께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정말 죄송하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간의 일로 인해 새로운 눈을 떴어요. 내가 더 잘 알았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더 않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다시 한번 상처 받은 분들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smlee0326@sportschosun.com, 사진=ⓒAFPBBNews = News1, CGV아트하우스 제공, '버닝'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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