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트렌드를 움직이는 사람들, 방송·예술·라이프·사이언스·사회경제 등 장르 구분 없이 곳곳에서 트렌드를 창조하는 리더들을 조명합니다. 2017년 스포츠조선 엔터스타일팀 에디터들이 100명의 트렌드를 이끄는 리더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그 쉰 아홉 번째 주인공은 예술가의 표현방식과 라이프 스타일을 기반으로 디자인을 진행하는 아티스틱 업사이클링 브랜드, 얼킨(UL:KIN)의 이성동 디자이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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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F/W 헤라 서울패션위크, 세 번째 메인 컬렉션을 앞둔 이성동 디자이너를 만났다. 얼킨의 스토리와 그가 지향하는 가치에 관한 이야기를 깊게 들어볼 수 있었다.(이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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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킨'을 시작하게 된 스토리가 궁금해요.
ROTC 출신인데 대학 시절 아침마다 체육복을 입고 대운동장을 뛰어야 했어요. 졸업작품전을 준비하다가도 어느 순간은 뛰고 있고. 당시 졸업작품전과 두타 벤처 디자이너 컨퍼런스(現탑디자이너), 강남 신진디자이너 콘테스트까지 세 개가 겹쳤어요. 원래 밤을 새워 하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아 내 체취가 이런 느낌이구나' 싶을 정도로 고생했죠. 결국 졸작은 리허설은 보지도 못했고 두타도 시상식도 못 갔어요. 다행히 졸전은 1등했고, 두타는 은상, 강남 신진디자이너 콘테스트는 최우수상을 받았어요. 그땐 괜찮았거든요. 하하. 근데 군대 갔다 오니 감이 많이 떨어지더라고요. 이게 얼킨 소재를 하게 된 배경이기도 한데, 군대에서는 군복만 보다 보니 소재에 좀 무뎌졌는데, 제대하니 친구들은 말랑말랑한 뇌로 신선한 소재들을 쓰고 있더라고요. 이후 소재에 더 신경 쓰게 됐고 강박이 생겨 나만의 소재를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친구들 졸업작품 가서도 어떻게 표현했지? 보다가 그림들이 버려진다고 해서 딱, '아 그거 내가 해야겠다'싶었어요. 그건 하나밖에 없는 거니까. 어떻게 보면 그런 강박같은 게 승화 된 거죠. 좋아요. 졸작도, 콘테스트도 결국 합이 잘 맞아서 지금 얼킨까지 오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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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 일일이 구한 것도 처음엔 일이었겠어요. 회화로 접근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일단 친구들 중 작가가 많아요. 저도 처음에는 예고를 가려 했는데, 제가 막 고군분투해도 친구들은 그냥 그려도 다 되더라고요. 재능이 다른 거죠. 그걸 보고 아 난 예술가를 하면 안되겠다 싶었고...(웃음) 실제 그 친구는 학원을 안다녀도 대학에 바로 편입할 만큼 잘했어요. 이번 컬렉션도 그 친구에게 맡겨서 하고 있는데, 옆에서 가까이 보면 그 친구는 물론 신진 작가들은 주요 수입원이 없어요. 분명 재능이 많은 친군데, 학생들을 가르치다 퇴근하면 피곤해서 그림을 그릴 수가 없대요. 그런 데서 모티브를 많이 받았죠.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그러다 미대 돌면서 캔버스를 구하고, 하나하나 다 뜯고 말아서 다마스에 실어 보내고 그랬죠. 지금 작가들과는 시즌이랑 거의 같이 물려 협업하고 있고, 스트리밍 유통 시스템도 시작했어요. 중간중간 산발적으로 협업하고 또 전시도 함께 해요. 최근엔 작가가 아예 가방에 그림을 그려주는 프리미엄 라인 또한 계획중이에요.
-새로 시작한 '스트리밍 웨어 -얼킨 스트리밍 박스' 또한 반응이 좋아요. 오픈 14시간만에 100% 달성했다고요.
패션 브랜드의 기본 상품이나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매월 정기 구독을 통해 구매할 수 있는 새로운 패션 유통 시스템이에요. 기본 맨투맨, 후드 같은 아이템에 자수를 넣거나 작가들의 스토리를 담아서 작가의 전시소식 및 전시 티켓을 함께 패키징해서 판매하는 거예요. 그냥 옷을 사는 것보다 저렴해서 구매할 수도 있고, 참여 작가가 좋아서 구매할 수도 있고요. 채널을 열어놓고 일종의 캠페인 같은 걸 해 본 건데, 반응이 좋아 다행이죠. 앞으로도 문화적인 요소가 강한 것, 예를 들어 자전거에 대해 스트리밍 하는 등 라이프스타일이랑 문화가 함께 갈 수 있는 것들, 생필품보단 스토리가 있는 것 위주로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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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런 게 있어?"라고 보수적인 반응이었는데, 요즘엔 생각들이 많이 바뀌어서 교수님들이 먼저 캔버스를 모아주시거나 다양한 오퍼를 주시기도 해요. 지금 사무실에도 삼백 점 넘게 쌓여 있어요. 그런 부분들에서 변화가 일어난 것 같아요. 요즘의 작가들은 작품 그 자체의 퀄리티는 당연하고, 어떻게 더 많이 노출 할까에 대한 고민 역시 하잖아요. SNS를 활용하거나, 영업을 뛰기도 하고 그런 사업적인 마인드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는 것 같아요. 저희도 작가들에게 영감을 받고 작가들도 저희 아이템을 보고 받기도 하고, 그렇게 상생하고 있죠.
-작가들에 대한 책임감 혹은 부담감도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엔 좋은 게 좋은 거니 그냥 하자, 했지만 친구도 농담처럼 언제 작업실 내 줄거냐고 하기도 하고 하하. 피드백을 빨리 바라는 작가님도 있고 그래요. 그래서 직접 얼킨에서 그림을 구매한 적도 있고요. 근데 사실 이슈가 크게 되지 않으면 아직은 환경적으로 작가들에게 크게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목표는 신진 아티스트들이 작품 활동하는 것만으로도 로얄티가 들어와 생계가 가능하도록 하는 거예요. 회사가 더 커야 그런 부분을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죠. 열심히 해야겠어요 하하.
-우연인지 국내에도 '업사이클링'(재활용품에 디자인 또는 활용도를 더해 그 가치를 높인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 붐이 크게 불었어요.
아직은 문화가 더 성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럽의 상황만 봐도 졸업작품전에서 회화 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팔린대요. 패션 디자이너 또한 졸업작품을 보고 스카우트하기도 하고요. 물론 해외에는 명문 학교가 많아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못한 분위기라. 사실 예술이나 패션 분야는 그런 문화가 정착하기에 시간이 좀 더 걸리는 것 같아요. 그래도 최근 회화 쪽은 먼저 변화를 시작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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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은사님이 니트 전공을 하셔서 자연스럽게 니트를 하게 됐어요. 니트가 원래 컬렉션을 하면 생산까지 이어지기 힘들어요. "쇼 했다" 그러면 끝인데. 운 좋게 방탄소년단 정국과 샤이니 태민이 V라이브를 통해 저희 제품을 착용했어요. 이후에 어디서 살 수 있느냐는 문의가 많이 와서, 한 일주일 고민하다 한번 만들어보자 싶어 예약 주문을 받았죠. 진짜 다 팔리더라고요. 그걸 시작으로 옷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어요. 그 전에는 소셜이나 업사이클링 개념이 기반이다 보니 스토리 구축에 집중했는데, 그때 '어? 다 같이 해야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요즘 착한 브랜드를 하시는 분들이 늘었는데, 사실 착한 것만으로는 대중이 접근하기에 한계가 있죠. 패션에도 전략이나 마케팅이 필요하더라고요.
-의도했던 얼킨의 타겟층은 어떻게 되나요?
얼킨 자체는 새로운 소재에 대해 접근하고 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20대 초·중반이 타겟이에요. 대신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시장이 작다 보니, 언제 트렌드가 바뀔지 모루니 컬렉션이랑 구분을 두고, 컬렉션은 더욱 글로벌리하게 보고 있어요. 컬렉션은 해외 시장 위주로 겨냥하고, 만약 스타들이 입고 그 아이템을 원하는 고객이 있으면 그 정도만 상품을 마련하고요. 그간은 컬렉션에도 신경을 많이 썼는데, 올해부터는 얼킨에 더 집중할 생각이에요. 스토리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고 기존 타겟층을 더욱 탄탄히 키워 나가려고요.
-'제너레이션 넥스트'를 3회 거친 후 메인컬렉션으로 단번에 올라섰어요.
사실 그때가 좋아요 하하. 올라오면 부담이 크더라고요. 다른 메인컬렉션 디자이너들의 세계를 보니까 내가 중심을 잘 잡고 가야겠다 싶었어요. 올곧게 서서 바람에 휘둘리지 않고 잘 해야겠다고. 1,2년 하고 말 것도 아니니까. 지금은 크게 부담 없이 즐기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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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로운 수의'는 ROTC 장교시절 친구들에게 전투복 좀 깔끔하게 입으라고 이거 입고 죽어야 된다고 교육하는 데서 모티브를 얻었어요. 실제 다큐를 보면 박정희나 전두환 노태우 시대 때 기득권을 만들기 위해 친일파들이 훈장을 많이 받았더라고요. 명예가 잘못 활용된 사례잖아요. 그런 스토리를 보고 엮어서 해보면 좋겠다 싶어 풀어봤어요. 스토리 가지고 하는 게 재밌어요. 창작은 없는 것에서부터 해야 하지만, 스토리를 가지고 디자인 프로세스에 맞춰서 하면 더 쉽고 재밌는 것 같아요.
-이번 컬렉션 주제도 '돈'에 대한 것이네요.
18 F/W는 돈을 주제로 얘기하고 있어요. 'MONEY; Best $ervant Worst Ma$ter.' 직관적인 접근이긴 한데,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달러 기호를 얼킨의 'U'레터링을 넣어 가짜 화폐를 만들었어요. 보통 스토리들을 깊이 있게 찾아보고 공부하면서 컬렉션을 준비해요. 자본주의에 관한 것을 준비하는데, 공부해보면 가변성이 특징이더라고요. 정치나 의회에서도 관여하고, 경제 자체도 합의에 의해 가는구나, 어떤 목소리를 내면서 관철시켜 나가는 일만 할 게 아니라, 자기의 영역을 지키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파리, 홍콩,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중국, 호주 등으로 꾸준히 수출하고 있는데, 컬렉션의 경우엔 해외 바이어들 반응이 어떤가요?
꾸준히 반응이 있어요. 사실 얼킨은 스트리밍 웨어나 베이직 라인들을 베이스로 하다 보니 어느정도 유지가 되니까 컬렉션은 더욱 하이 라인으로 구축해서 시장에 잘 안팔리더라도 작품세계나 레퍼런스 아카이브가 되는 것들로 꾸리고 싶어요. 얼킨한테 투자를 하는 거죠. 사실 패션에 관심이 많거나 매니악한 분들은 가격이 좀 있어도 구매하시더라고요. 국내는 물론 글로벌리하게 그분들의 구매 시장이 존재해요. 반면 기호 정도로 즐기는 분들은 가성비가 중요하니까 컬렉션보다는 기본 베이직 라인이 잘 팔려요. 그래서 저도 타겟을 정확히 나눠서 가려고 해요. 홍콩 매장의 경우에는 셀럽들이 구매하기도 하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자유로운 층이 많지는 않잖아요. 저도 얼킨을 해나가면서 어떻게보면 시장이랑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얼킨 본래의 시스템은 저희가 만들지만, 디자이너의 아이덴티티를 더 많이 보여주는 것이다 보니, 컬렉션은 해외시장으로 더욱 집중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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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수준이 높을수록 그런 부분에 대한 수요가 많은 것 같아요. 제품 하나 살 때도 그냥 산다는 게 아니잖아요. 인문학적인 가치를 물건에 투영하는 건 긍정적이라고 봐요. 다만 아직 그 시장이 작다 보니 먼저 하시는 분들이 답답하고 힘들어하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앞으로는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우리나라가 경제성장 하느라고 해외 시장에 비해 그런 부분이 조금 더딘 감도 있지만, 요즘은 다들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얼킨'의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들려주세요.
일단은 얼킨의 기본 철학에 더욱 집중해 재능순환 시스템을 더욱 공고하고 탄탄하게 다지고 싶어요. 사실 컬렉션은 남들과 똑같은 걸 해 나가는 것일 뿐, 얼킨의 존재 이유에 더욱 포커싱하고 실제 얼킨이 추구하는 시스템이 잘 잡히게끔 해야죠. 제가 잘돼야 결국 이 시장이 잘되는 거니까, 책임감을 느끼면서 더 잘하고 싶어요. 디자이너는 분명 자기만의 생각이 있어요. 그렇다고 너무 창작이나 예술적인 것만 추구하기보단 사업적인 부분과 예술적인 부분을 잘 조율해서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잘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차근차근 정석대로 가고 있다는 평을 주변에서 많이 해주세요. 그렇게 기복 없이, 얇고 길게? 하하. 미래가치를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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