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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문지연 기자] 배우 원미경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작품 그 이상의 의미였다. 꼭 해보고 싶었다던 노희경 작가의 작품에 출연할 기회도 얻었고, 동시에 '엄마'라는 자신이 가진 무게감을 드라마로 표현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원미경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과 인연이 닿은 데에는 '우연'이 계속해서 뒤따랐다고. 작품을 하기 위해 한국에 왔던 것이 아닌, 남편의 일정으로 한국에 머물게 됐지만 그 사이 단막극인 '낫 플레이드'를 촬영하고 그 촬영이 끝날 무렵에 '세상에서'의 제안도 받게 돼 촬영에 임했단다.
"저는 '가화만사성'을 찍으러 한국에 갔을 때 노희경 작가님의 '디어 마이 프렌즈'를 보고 너무 좋았어요. '나도 저런 작품을 할 수 있는 행운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노희경 작가님은 사실 제가 일할 때는 잘 모르던 분이었고 본적도 없었는데 '디마프'를 보면서 저 작가랑 꼭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번에 딱 노 작가님의 작품이라는 얘기를 듣고 바로 들어간 거죠. 사실 21년 전에 방영됐을 때엔 제가 그 작품을 보지 못했거든요. 노 작가님 작품이라는 것만 듣고 그냥 하겠다고 했어요. 그게 인연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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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드라마를 안 봐서 전작의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를 했는지 모르고 시작했어요. 전작을 봐서 제가 연기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고요. 이제는, 지금은 보고싶어요. 같이 연기했던 김영옥 선생님이 같은 작품을 두 번째 하셨잖아요.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느낌이 다르다'고요. 어떻게 다른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그때와 지금의 느낌이 다르다고 하셨어요."
'세상에서' 속 원미경은 우리네 '엄마' 그 자체였다. 죽음에 가까워지는 자신의 시간들이 걱정되기보다는 남겨질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엄마. 짧은 4부작,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죽음을 앞둔 암 환자이자 엄마, 아내, 며느리로서의 인희는 원미경이었고 원미경이 곧 인희였다.
"이 작품은 배우로서보다도 제가 엄마고, 저한테도 지금 가슴에 묻고 있는 엄마가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어떤 배우가 해도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작품이 워낙 좋으니까요. 그리고 촬영을 할 때 정신 없이 바쁘게 찍다 보니까 제 감정에 충실하면서 찍었던 거 같아요. 남이 어떻게 보든, 저는 제 감정에 충실했어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스태프들도 그렇고 같이 찍은 배우들도 제 연기를 보면서 같이 울고 있는 거예요. 감독님도 좋았다고 해주시고 위로해주셔서 감사하고 좋았죠."
촬영 내내 고생을 많이 했던 원미경이다. 고생의 증거였을까. 배역에 따라 배우들의 외모가 변하듯 촬영이 진행될수록 원미경의 살이 계속 빠지자 주변 사람들도 걱정했다고. 촬영 후 한참 빠져버린 몸무게와 함께 체력적으로 힘든 시간이 찾아오며 서둘러 미국으로 출국했다는 원미경이었다.
"찍는 내내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저한테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를 많이 생각했죠. 물론 진짜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의 100분의 1도 표현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감히 우리가 어떻게 표현하겠어요. 그런데도 굉장히 아팠고, 작품처럼 제 몸도 따라가더라고요. 살이 굉장히 많이 빠졌어요. 다들 걱정할 정도로 빠지더라고요. 작품이 진행되면서 제 살이 빠지는 모습도 화면에 보였어요. 작품으론 좋았지만, 감독님이 건강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셨죠. 그래서 더 일찍 미국으로 돌아온 것도 있어요. 아직도 제 몸무게를 회복하지 못했는데 이제 회복이 되겠죠."
작품 내내 원미경은 우리네 '엄마' 그 자체였다. 방송을 지켜보던 이들도 원미경의 연기를 보며 눈물 지었고 함께 아파했으며, 때로는 힐링했다. 이로인해 '국민 엄마'라는 타이틀도 원미경의 이름 석자 앞에 자연스럽게 붙게 됐지만, 원미경은 아직 그런 수식어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저한테 너무 과분한 거 같아요. 제가 엄마인건 틀림이 없지만, 그런(국민 엄마)타이틀이 붙기에는 제가 너무 부족하고요. 나문희 선생님이나 김혜자 선생님께 그런 수식어가 어울리는데 저는 아직은 너무 이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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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잘 한게 없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너무 '배우' 같지 않아서, 배우 선배로서 미안한 감이 있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거든요. 일단 너무 평범하게 살잖아요. 저는 롤모델 보다는 그냥 편한 선배가 더 나은 거 같아요. 제가 롤모델이라고 할 정도로 그런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요."
원미경은 최근 연기 활동을 통해 '일의 즐거움'을 깨닫는 중이다. 아직은 살림이 더 좋고 즐겁지만, 어린 시절 일을 통해 느끼지 못했던 '재미'도 이제는 조금씩 느껴가며 연기 활동에 재미를 붙이는 중이라고.
"저는 18살 때부터 배우 생활을 하면서 정말 미련 없이 달렸던 거 같아요. 가슴앓이도 많이 하고 생활에 여유도 없었죠. 그땐 앞만 보고 달려서 몰랐는데 이제야 이 나이 들어서 일을 해보니까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일의 즐거움을 이제 알았어요. 그래도 차기작은 글쎄요. 지금은 조금 쉬어야 할 거 같아요. 촬영이 힘들었거든요. 그래도 좋은 작품 만나서 즐거웠어요. 정말 좋은 작품이라면 언제든지 하고 싶어요. 그게 배우의 마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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