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올해 만 76세, 데뷔 57년 차를 맞은 '대(大)배우' 나문희. 오랜만에 스크린을 찾은 그녀가 다시 한번 하드캐리한 변신으로 관객을 찾았다. 과연 명불허전. 경이로운 나문희의 인생 연기가 추석 스크린을 웃음과 감동으로 물들일 전망이다.
민원 건수만 무려 8000건, 구청의 블랙리스트 1호 도깨비 할매와 오직 원칙과 절차가 답이라고 믿는 9급 공무원이 영어를 통해 운명적으로 엮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휴먼 코미디 영화 '아이 캔 스피크'(김현석 감독, 영화사 시선 제작). 지난 6일 열린 언론·배급 시사회 이후 뜨거운 호평을 받으며 추석 극장가 비밀병기로 떠올랐다.
앞서 '아이 캔 스피크'는 시사회가 열리기 전까지 추석 시즌에 어울리는 소소한 코미디 영화로 분류됐다. 하지만 뚜껑을 연 '아이 캔 스피크'는 그저 소소한 코미디가 아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룬 작품이었다. 특히 그간 영화를 통해 종종 다뤄졌던 고통스럽고 불편한 위안부 역사가 아닌 그 이후의 문제,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위안부 사죄 결의안은 1997년 일본계 미국인 마이클 혼다 하원 의원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미 하원 의원들에게 일본 정부에 사죄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하자고 청원한 일이다. 결의안 제출로부터 만장일치 통과하기까지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위안부 사죄 결의안. '아이 캔 스피크'는 미국 하원 의원들의 결정을 완전히 굳히게 한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2007년 2월 15일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김군자 할머니의 증언이 있었던 공개 청문회를 영화화했다.
이렇듯 뜻깊은 의미를 가진 '아이 캔 스피크'. 무엇보다 나문희라는 대배우로 인해 그 의미가 더욱 빛났다. 1960년 연극배우로 연기를 시작해 올해 데뷔 57년 차를 맞이한 나문희. 그동안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07, 김상진 감독)에서는 납치범을 쥐락펴락하는 권순분 여사로, '하모니'(10, 강대규 감독)에서는 가슴 아픈 사연을 안은 최고령 수감자 김문옥으로, '육혈포 강도단'(10, 강효진 감독)에서는 하와이 여행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을 점거하는 은행 강도 김정자로, 그리고 '수상한 그녀'(14, 황동혁 감독)에서는 아들 자랑이 유일한 낙인 욕쟁이 칠순 할매 오말순으로 매 작품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하며 스크린을 장식했다. 이번 '아이 캔 스피크' 또한 심상치 않은 변신, 열연으로 기대를 모은다.
나문희는 극 중 20년 동안 구청을 드나들며 매일 같이 민원을 넣어 구청 직원들의 기피 대상 1호가 된 할머니 나옥분을 맡아 '아이 캔 스피크'의 전반을 이끈다.
봉원시장에서 오랫동안 수선집을 운영하는 나옥분 할머니는 불법 입간판부터 가로등 보수, 건물 철거 등 동네의 문제란 문제는 모두 참견해 기어이 민원을 해결하는 괄괄한 할매다. 구청 직원들의 기피 대상 1호, 일명 '도깨비 할매'로 불리는 나옥분. 이런 나옥분을 연기한 나문희는 영화 초반 확실한, 시원한 웃음 코드를 선사하며 관객을 사로잡는다. 주변에 꼭 한 번쯤 겪을 법한, 있을 법한 친근한 '국민 할매'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코미디도 코미디지만 나문희의 진가는 영화 후반 꽃을 피운다. 가슴 깊은 곳의 울림을 끌어내는 진정성 있는 열연으로 보는 이들의 콧잔등을 시큰시큰 아리게 만드는 것. '아이 캔 스피크'의 클라이맥스인 미 의회 청문회 장면에서 나문희는 오랜 시간 동안 속으로만 삼켜왔던 한(恨) 맺힌 나옥분의 마음을 섬세하고 절절하게 표현, 관객에게 고스란히 그 마음을 전달한다. 감탄을 넘어 경이로운 최고의 명장면이 탄생한 것.
나문희는 '아이 캔 스피크'를 통해 또 한 번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을 시도했고 그 도전은 언제나 그랬듯 성공을 이끌었다. 나문희가 아니었다면 공감할 수 없는 '아이 캔 스피크', 나옥분이었던 셈. 몸으로 체화된 인생 연기, 연기의 진수가 무엇인지 온몸과 마음으로 보여준 나문희는 명실상부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대배우'이자 '국민 배우'이며 '국보급 할매'다..
한편, '아이 캔 스피크'는 나문희, 이제훈, 엄혜란, 이상희, 손숙, 김소진, 박철민, 정연주 등이 가세했고 '쎄시봉' '열한시' '시라노; 연애조작단'의 김현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오는 21일 개봉한다.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영화 '아이 캔 스피크'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하모니' '육혈포 강도단' '수상한 그녀'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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