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태호PD "'보러오라'는 옛말, '보여주러 간다'의 시대" (인터뷰)

박현택 기자

기사입력 2017-08-24 10:39



[스포츠조선 박현택 기자]

'본·방·사·수'

해석하자면 제 시간에 TV로 본다는 말 이다.

'사수'(죽음을 무릅쓰고 지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해당 프로그램 출연자의 대중을 향한 '독려' 또는 애청자들의 프로그램을 향한 '의리' 정도의 차원에서 자주 쓰여지는 이 말은, 가수로 치자면 MP3를 넘어 스트리밍 서비스에 음원을 USB에 넣어 파는 시대에 'CD를 들어달라'고 말하는 셈이 되겠다.

IT 강국에, 저마다 손에 최첨단 기기를 들고 다니는 대한민국임을 감안하면 애처롭고 뻔뻔스럽기 까지 한 '본방사수'라는 단어에, 바로 방송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낡은 인식이 담겨 있다.

방송국은 시장이다. 아니 재래시장이다. 손님이 많이 와서 물건을 사가야 함은 당연한 일. 사람들이 '배달'이나 '직구', '산지 직송'을 택한다면 존재의 이유가 사라지고 만다.

그런데 힘겹게 시청자를 붙잡고 있는 지상파와 종편, 케이블 방송사들은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거나 따라가긴커녕 여전히 편성표를 그려놓고 그 안에서 '어서오세요~' 라고 독려하는 낡은 방식으로 손님끌기에 전념하고 있다.

여기 매주 토요일 90분짜리 방송을 파는 한 장사꾼이 있다. MBC시장 '무한도전' 상점의 김태호 PD다. 그가 파는 품목은 매주 바뀐다. 셀 수도 없을만큼 많은 상점들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동안 '1주일에 한번씩 새 상점을 오픈하는 방식'임에도 12년간 이어온 '국민 상점'


김태호PD와 '무한도전'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 과연 '미국 드라마 오디션에 도전하기 위해' 였을까. 영화의 봉준호와 드라마의 김은희에 이은 예능의 김태호. 새로운 '시장'을 원하는 그의 말을 들어보자.


매주 다른 특집으로 고작 5명으로 90분을 이끌어가는 것은 말그대로 매주 축구 경기 90분을 5명으로 뛰는 듯한 버거움이 느껴집니다.

"제작자로서 이중적이 되기도 해요. 회사에는 '제발 무도 60분만 하게 해주세요'라고 하면서도, 반대로 그 주에 방송을 내기 직전에는 '저희 5분만 늘릴게요' 라고 하게 되거든요.

방송이 나가면 '10%를 넘었다, 못 넘었다' 또는 '누구는 올랐고, 누구는 시청률이 내려갔네' 하면서 그런 것을 기준으로 콘텐츠가 평가받으니 당장을 위해 '늘려달라' 하고 싶어지는 반면, 매주 소비되는 멤버들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에, '60분만 하게 해달라'고 하게되는...그런 두 가지 마음이 들게돼요.

예전에는 '작가주의 예능'을 늘 고민했고, 프로그램에 무언가 제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시간을 얻을 수 있었는데, 매주 90분이란... 사실은 프로그램 내용 전체를 사전 모니터 못하고 방송을 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것들이 반복되다보니, 저도 다치고 프로그램도 다치고, 플랫폼도 다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무한도전에 함께 할 새 인물들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멤버들은 왜 갑자기 '미국 드라마'의 오디션에 도전했을까요.

"무한도전'은 10년 이상을 달려왔습니다. 나쁜 말로 '낡았다'고 표현한다면 '더 이상 보여드릴게 없다' '새로운 트렌드를 못 받아 들인다' 는 뜻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좋게 말해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룰이 있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즉 '무한도전' 멤버들은 현재 예능가에서 많이 방송되고 있는 관찰예능과 같은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서 '좀 더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하는 장인정신이 있다고 말해도 좋겠습니다.

사실 '멤버들이 미국 드라마 오디션을 보는 것'이 재밌으면 얼마나 재밌겠습니까. (웃음) 방송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이번 미국행을 통해 멤버들에게 '큰 그림'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큰 그림이란 무엇일까요.

"대한민국의 방송 콘텐츠들은 경쟁력이 좋습니다. 상상 이상이죠. 그러나 그 콘텐츠들이 각 방송사간 '편성의 싸움' 안에서 다투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공중파에서 방송 콘텐츠를 통해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방송 시간을 늘려서 광고를 늘리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이죠. 항상 지상파와 종편, 케이블 모두 편성표라는 무대 위에 그려진 플랫폼 안에서 경쟁하고, 그 편성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상황인데, 그러한 시장을 넘어 시청자가 주체적으로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보는 '콘텐츠 위주'의 시장이 주가 되면 우리 구성원들이 할 일이 더 다채로워지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갔습니다. 대한민국 콘텐츠 시장은 시청자의 수준은 너무 높은데, 제작이나 시청, 평가받는 환경은 그 것을 따라갈 수 있는 구조인가 생각하면 답이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대안은 무엇일까요.

"여건만 되면 MBC 내부에서 MBC자회사 채널이나 IPTV 프로그램, POOQ용 프로그램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방송국도 '플랫폼'이면서 동시에 사내 우수한 제작인력을 활용한 '콘텐츠 회사'로서의 역할도 강조가 되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허락만 된다면 기존 MBC플랫폼을 기본으로 하면서 넷플릭스, 네이버, 카카오 등의 콘텐츠도 제작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그것은 (실현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안되는 것' 아닐까요. 이를테면 기자인 제가 저희 매체가 아닌 다른 매체의 기사를 쓸 수 없듯. 그러니까 그렇게 하려면 회사를 나가서 '개인'이 되어야하는 것은 아닌 지.

"'어려운 것'이나, '안되는 것'이 아니라 '안해봐서 모르는 것'이죠. 사실 MBC가 MBC의 콘텐츠만 만들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도 현재 OTT (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TV 서비스) 시대가 오고 있듯이 현재 한국에서는 '플랫폼이 갑인 세상'이지만, 미래에는 플랫폼이 아닌 '콘텐츠 우선 세상'이 올 수 있겠죠.

방송을 통해 PD님과 '무한도전' 팀이 넷플릭스를 방문한 모습이 등장했는데요.

"무도팀은 언제나 더 좋은 소재와 콘텐츠를 선보이고자 늘 고심하고 있습니다. 저희 제작진과 멤버들에 다양한 식견을 제공하기 위해 많은 방안을 강구해왔습니다. 그 일환으로 혁신적인 기업 및 다양한 콘텐츠에 대해 알아보던 중, 지난해 초부터 넷플릭스에서 연락이 왔고, 여러 가지 컨텐츠 공동제작 방안에 대해 협의를 하다가 최근에 본사 방문도 성사됐습니다.

각종 드라마 팀의 배우들과 제작자등의 섭외도 도와줬죠. 사실은 애쉬튼 커처도 만나기로 되어있었어요. 아쉽게도 가족 일 때문에 막판 불발되긴 했지만요. (웃음)

그들은 저희에 대해서 매우 궁금해 합니다. '무한도전'뿐 아니라 한국 콘텐츠에 관심이 굉장하더라고요. 덕분에 좋은 특집을 제작한 것은 물론이고 멤버들에게도 근사한 경험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멤버들에게 근사한 경험이란 어떤것 일 까요.

"멤버들도 넷플릭스를 보면서 상당히 큰 자극을 받았습니다. 각자가 크건 작건 아이디어가 있고 준비만 잘한다면 엄청나게 다양하고 재밌는 콘텐츠들이 나올 수 있는 라는 걸 공감했습니다.

하하도 큰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웃음) '휴가내고 넷플릭스 본사에 놀러가고 싶어'라고 하던데요. '가서 뭐하게' 라고 했더니, 그 분위기 자체가 너무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스테판 커리 특집'이 한국에서는 토요일에 90분 동안 방송된 한 특집이었지만, 미국에서는 훨씬 큰 반응의 콘텐츠였다는 점입니다. 길거리에서도 자신들을 알아볼 정도였으니 천하의 무도 멤버들도 콘텐츠 파워에 적잖이 놀라고, 그 연장성과 응용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마지막 한 말씀.

"방송 시장도 이제 시청자에게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 '보러오라'고 말하는 시대에서 우리가 보여주러 가겠다'라고 하는 시대로 변했습니다. 변화에 민감하게 고민하며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때인 것 같습니다.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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