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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열풍이 거셌던 1999년, 일본 게임 개발사 세가는 자사 콘솔 게임기 '드림캐스트'를 통해 'FREE(Full Reactive Eyes Entertainment)'라는 독특한 장르를 내세운 신작을 출시한다. 이 게임은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오픈 월드 게임과 유사한 게임성을 선보인 '쉔무' 시리즈다.
'쉔무 1'은 획기적인 게임이었다. 실제 사람이 하는 행동을 게임 내에 구현하기 위해 모션 캡쳐를 활용해 캐릭터와 NPC를 제작했고 이를 통해 마을과 거리를 현실감 있게 표현했다. 심지어는 게임 내에 오락실이 있었고 여기서 세가 고전 아케이드 게임을 즐길 수 있었으며 자판기에서 캔 음료를 사서 마실 수도 있었다.
또한, 모든 이벤트 장면은 실제 게임 내 캐릭터들이 등장해 진행됐고 이름 없는 NPC조차 목소리가 있어 생동감이 느껴졌다. 3D로 구현된 배경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날짜가 변경되고 날씨까지 변화하는 획기적인 모습이었다.
'쉔무 1' 출시 당시 세가는 콘솔 게임기 '세가 새턴'이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에 밀려 참패한 이후 야심작으로 내놓은 '드림캐스트'마저도 소니에서 발표한 '플레이스테이션 2'에 밀릴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다. 세가는 '드림캐스트' 판매량을 견인할 킬러 타이틀이 필요했고 이런 상황에서 3부작으로 기획된 '쉔무' 시리즈는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그러나 세가가 보낸 신뢰는 보답 받지 못했다. 2001년 '드림캐스트'는 '플레이스테이션 2'에 참패하고 세가는 콘솔 게임기 사업 철수를 발표했으며 이후 '쉔무 2'가 출시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북미에서는 플랫폼을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로 바꿔 2003년 출시됐으며 판매량은 일본과 북미를 합해도 15만 장 수준에 그쳤다.
700억 원이 투자된 대형 프로젝트 '쉔무' 시리즈는 '드림캐스트'라는 기반 플랫폼을 잃은 데다 프로젝트를 총괄하던 스즈키 유 디렉터마저 세가를 퇴사하면서 스토리 완결도 내지 못한 채 이렇게 막을 내리는 듯했다.
유저 사이에서도 '쉔무' 시리즈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던 2015년, 북미 게임쇼 'E3'에서 '쉔무 3'가 깜짝 공개됐다. 세가에서 YS NET으로 자리를 옮긴 스즈키 유 디렉터는 'E3 2015' 현장에서 '쉔무 3' 개발을 발표하고 크라우드 펀딩을 한 자금 모금을 시작했다. '쉔무 3' 크라우드 펀딩은 10시간 만에 목표 금액 200만 달러(약 23억 원)를 돌파하고 최종 모금액 6,333만 달러(약 72억 원)를 모금해 '크라우드 펀딩으로 가장 많은 자금을 모은 게임'과 '크라우드 펀딩으로 100만 달러를 가장 빨리 모금한 게임'이라는 두 가지 기네스 기록을 세웠다.
기네스 기록을 세우며 개발을 이어온 '쉔무 3'는 8월 21일 1차 티저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서는 중국 계림을 배경으로 주인공 '하즈키 료'와 '레이 쉔파'가 등장했고 여러 무술 고수와 '하즈키 료'가 대전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나 언리얼 엔진 4를 활용해 개발한 게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그래픽과 표정 변화도 없는 단순한 캐릭터 모델링, 목각 인형 같은 움직임은 유저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 8월 17일에는 글로벌 퍼블리셔가 딥 실버로 결정되면서 유저 사이에서는 우려감이 더욱 커졌다. 지난해 6월 캡콤 출신 이나후네 케이지 디렉터가 '록맨'을 잇는 정신적 후속작이라며 크라우드 펀딩으로 400만 달러(약 45억 원)를 모금해 출시한 '마이티 넘버 나인'이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마이티 넘버 나인'은 '쉔무 3'와 마찬가지로 80~90년대 게임 업계를 이끌었던 유명 개발자 손에서 탄생했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금해 개발됐으며 퍼블리셔 또한 딥 실버였다.
이 같은 이유로 유저 사이에서 논란이 발생하자 스즈키 유 디렉터는 8월 23일 유럽 최대 게임쇼 '게임스컴 2017' 현장에서 "1차 티저 영상은 모두 게임 내 영상이며 개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제작됐을 뿐이다"라고 해명했다. 총괄 디렉터가 직접 해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모금액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으로 게임이 공개됐기에 유저 사이에서는 여전히 비판적인 목소리가 거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세가 '드림캐스트' 황혼기를 장식한 '쉔무' 시리즈를 종결하는 '쉔무 3'는 유저들이 직접 개발에 도움을 준만큼 기대치가 높은 게임이다"라며 "2018년 2분기 출시를 앞둔 '쉔무 3'가 어떤 모습으로 유저 앞에 나타날지는 알 수 없지만 '마이티 넘버 나인'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림 텐더 / 글 박해수 겜툰기자(gamtoon@gamto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