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식적이길 원하고, 또 불의에 맞서려는 모습이 있잖아요. 각자 상황과 현실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배우로서 작품을 통해 상식과 정의를 표현하는 것이 맞는 일인 것 같아요."
휴먼 영화 '택시운전사'(장훈 감독, 더 램프 제작)에서 택시운전사 김만섭을 연기한 배우 송강호(50). 김만섭은 가난 속 11살 딸 은정(유은미)을 키우는 홀아비 택시운전사로, 밀린 월세 독촉에 시달리던 중 외국 손님을 태우고 광주를 갔다가 통금 전에 돌아오면 밀린 월세를 갚을 수 있는 큰돈 10만원을 준다는 말에 광주로 향하는 인물이다. 사우디 건설 현장에서 익힌 짧은 영어로 외국 손님인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와 소통하며 광주로 향하는 길,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지만 점차 '푸른 눈의 목격자'를 향해 마음을 열며 광주의 현실을 직시하는 소시민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올여름 뜨거운 열연과 뜨거운 메시지로 다시 한번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준비를 마친 송강호다.
실제로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를 취재한 '푸른 눈의 목격자',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태우고 광주로 향한 택시운전사 김사복의 실화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루는 작품인 만큼 제작 초반 알게 모르게 외압에 대한 우려도, 시대의 비극을 다루는 부담감도 상당했다는 송강호. 여러 이유로 출연을 고사하기도 했다는 후문.
송강호는 "'택시운전사'를 처음 고사한 이유는 '변호인'(13, 양우석 감독) 때와 똑같았다. 출연 거절이 싫어서가 아니라 마음의 준비가 안 됐던 것 같다. '이야기 자체를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제일 첫 번째 고사 이유였던 것 같다. 원래 영화를 제안받을 때 시나리오를 오래 품고 있는 배우가 아니다. 대게 출연을 제안받으면 두 시간 내 시나리오 읽고 한 시간 정도 고민한 뒤 출연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택시운전사'는 좀 어려워 사나흘 고민했던 것 같다"고 당시의 상황을 곱씹었다.
그는 "처음엔 거절한다고 했지만 사실상 제작사도 나도 서로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다. 내 경우엔 이야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거절했지만 어느샌가 이야기의 핵심과 여운이 점점 마음속에 커졌고 자리 잡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은 작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택시운전사'는 소재가 어렵다 보니 내가 당장 안 한다고 해서 선뜻 다른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렇듯 '택시운전사'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던 송강호. 그도 그럴 것이 송강호는 그간 '효자동 이발사'(04, 임찬상 감독) '변호인' '밀정'(16, 김지운 감독) 등과 같은 근현대사의 비극과 아픔을 전하는 영화로 관객에게 진정성 있는 메시지, 그리고 뭉클한 감동을 선사해왔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좌파 배우' '빨갱이 배우'로 낙인이 찍힌 부분도 상당한 게 사실. 전(前) 정권으로부터 블랙리스트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시대의 비극을 다룬 소재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송강호. 대체 무엇이 그를 그 날의 비극으로 이끄는 것일까.
"모두가 공감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택시운전사'를 시작했죠. 영화 속에서도 그때 당시의 광주, 특히 금남로를 많이 다뤄요. 진짜는 영화 속 장면보다 더 잔혹하고 잔인해요. 차마 영상으로는 담을 수 없을 정도죠. '택시운전사' 연기를 하기 전 그날의 이야기에 대해 전문가들에게 자문하고 남아있는 사진도 봤지만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한 사건이더라고요. 그런 자료를 보면서 이런 진짜 역사를 이야기해야 하지 않나 싶었어요. 스스로는 '좌파다' '빨갱이 배우다'고 생각하면서 연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죠. 하고 싶었던 이야기, 작품을 통해 몰랐던 사실, 알고는 있었지만 영화를 통해 또 다른 시각으로 역사와 인물을 볼 수 있는 작품에 매력을 많이 느껴요. 순수하게 배우로서 작품을 선택할 때 매력적이고 예술적인 가치를 주는 작품이 제겐 늘 1순위죠. 그런데 제가 봐도 제 필모그래피를 보니 쭉 그런(좌파 성향의) 작품들이 있네요. 하하."
참혹했던 그날의 이야기, 진짜를 알리고 싶었다는 송강호. 그리고 그에겐 무엇보다도 왜곡된 보도와 통제로 진실을 몰랐던 '마음의 빚'이 '택시운전사'를 선택하게 된 이유라고 밝혔다.
송강호는 "시사회, 제작보고회 때에서 언급했지만 그 당시 광주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였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던 아침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라디오 뉴스에서 '국군이 폭도를 진압했다'라는 소식이 들렸는데 그걸 듣고 '다행이다' 생각하며 학교에 간 기억이 난다. 이후 제대로 사건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대학을 다닐 때 실제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보도한 내용을 알음알음 보게 된 것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학교가 아니라 연극을 할 때도 많이 접했다"며 회상했다.
이어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식적이고 불의에 맞서려는 모습이 있지 않나. 수많은 정치적인 상황이 있었겠지만 그런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배우로서 작품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맞는 일인 것 같다"며 "1980년대 광주의 비극을 보여주는 것 외에도 비극 속에서도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정치적으로 성숙한 느낌도 있지만 1980년 광주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길 바란다.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김사복 같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정의를 지킬 수 있지 않았나. 또한 지금의 건강한 사고 속에서 과거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다. 최근에도 희망이 모이고 모여 사회가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 이 영화가 광주의 실상을 파헤치기보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으면 좋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한편,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서울의 택시운전사가 통금 전에 광주를 다녀오면 큰돈을 준다는 말에 독일 기자를 태우고 아무것도 모른 채 광주로 향하는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다. 송강호, 토마스 크레취만, 유해진, 류준열 등이 가세했고 '고지전' '의형제' '영화는 영화다'의 장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오는 8월 2일 개봉한다.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쇼박스, 영화 '효자동 이발사' '변호인' '밀정' '택시운전사'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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