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인피니트 엘이 배우 김명수로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엘은 MBC 수목극 '군주-가면의 주인(이하 군주)'에서 천민 이선 역을 맡아 열연했다. 천민 이선은 천재적인 두뇌와 불같은 성정을 갖고 태어난 인물이다. 천민이라는 신분의 굴레에 갇혀 사랑 한번 못 해보고 꿈도 꾸지 못했지만, 세자 이선(유승호)의 대역으로 발탁되며 인생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세자 이선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그의 바람막이가 되고자 했던 천민 이선이 짝사랑하는 한가은(김소현)에 대한 집착 때문에 흑화하는 모습은 배은망덕하지만 안쓰럽고 짠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엘의 성장이었다. 엘은 2011년 일본 아사히TV '지우-경시청 특수범 수사계'로 처음 연기를 시작한 뒤 tvN '닥치고 꽃미남 밴드'(2012), MBC '엄마가 뭐길래'(2012), SBS '주군의 태양'(2013), MBC '앙큼한 돌싱녀'(2014), SBS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2014), KBS2 '헤어진 다음날'(2017) 등에 꾸준히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아나갔다. 그동안 연기력 논란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연기로 주목을 받은 일도 없었기에 처음 엘이 '군주'에 캐스팅 됐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시청자들은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엘은 첫 사극 도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 천민 이선은 감정선의 진폭이 아주 큰 캐릭터였다. 신분제 최하위 계층인 천민에서 만인지상 군주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캐릭터인 만큼, 감정선의 변화는 물론 어투 자세 걸음걸이 등 몸을 쓰는 연기까지 디테일이 요구됐다. 그리고 엘은 이 난관을 무사히 극복해나갔다.
아비를 잃고 절규하고, 물고문을 받으며 몸부림 치고, 짐꽃환에 중독돼 고통스러워 하며 감정선의 레이어를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이를 바탕으로 가짜 왕이 된 뒤 트라우마와 열등감이 폭발한 천민 이선의 모습을 그려나갔다. 처음 궁에 들어왔을 때 어쩔 줄 모르며 고개 한 번 제대로 들지 못했던 천민 이선이 낫을 들고 물고문을 하는 장면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천민 이선이 한가은에게 보인 비정상적인 집착 또한 그가 갖고 있던 열등감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한가은은 천민 시절에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상대였다. 그런 그림의 떡을 드디어 갖게 됐을 때 천민 이선은 묘한 해방감과 쾌감을 느꼈을 터. 그러나 한가은의 마음은 여전히 세자 이선에게 향했고, 모든 걸 가질 수 있는 자리에 오르고도 여인의 마음 하나 어쩌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열등감과 억압된 욕망은 폭발했다. 이에 편수회에 세자 이선의 생존 소식을 알리고 대비를 폐비하며 자신의 가족을 궁으로 들이는 등 만행을 저지른다. 이처럼 근본없는 행동은 보는 이들을 분노케 했지만, 그 또한 시대의 피해자라는 걸 지켜봤기에 천민 이선에 대한 연민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 어떤 캐릭터보다 정서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어려운 천민 이선을 매끄럽게 소화해낸 엘의 차기작이 기대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엘은 당분간 휴식을 취하며 차기작을 물색할 계획이다.
silk78122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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