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트렌드를 움직이는 사람들, 방송·예술·라이프·사이언스·사회경제 등 장르 구분 없이 곳곳에서 트렌드를 창조하는 리더들을 조명합니다. 2017년 스포츠조선 엔터 스타일팀 에디터들이 100명의 트렌드를 이끄는 리더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그 스물 아홉 번째 주인공은 런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를 넘어 이제는 유도로 대중의 마음까지 훔치고 있는 '유도 전도사' 조준호 코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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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대학교 전임 코치가 됐어요. 그래서 용인대학교에서 엘리트체육을 지도하고 체육관에서는 생활체육을 지도하고, 이렇게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을 함께 하고 있어요.
-'나 혼자 산다'를 통해 본 조준호 코치의 하루는 정말 바빠 보였어요. 하루 24시간이 모자르시겠어요.
맞아요. 용인대학교 코치가 되면서 더 바빠졌어요. 방송 때는 안 하고 있었는데 이번 학기 부터 하게 됐어요. 여자 국가대표팀에 있으면서 엘리트체육 코치를 경험해봤지만 지금 최고 많은 인원을 가르치고 있어요. 100명에 가까운 인원을 가르치고 있어서 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코치로 고정 출연하셨던 예능 '우리동네 예체능'부터 '마이 리틀 텔레비전', '나 혼자 산다'까지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셨어요. 이렇게 예능 출연을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유도를 좀 더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런던에서 올림픽 메달을 따고 직후에 예능을 나갔었어요. 사람들이 두 부류가 있더라고요. 판정 번복과 메달을 딴 올림픽 시합을 본 사람들은 굉장히 안됐다고 말하고, 올림픽 시합을 보지 않고 예능을 본 사람들은 저를 그냥 재미있는 사람으로 기억하는 거예요. 유도 선수인지도 모르고 그냥 '재미있는 운동선수'로 기억하는 거죠. 그런데 재미있는 선수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더라고요. 올림픽 경기보다 예능을 더 많이 보는 거죠. 그래서 '아, 올림픽을 나가서 국가대표로서 국위선양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내 종목을 알리는 데에는 어떻게 보면 올림픽보다 예능이나 메스컴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것이 맞는 일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이전까지는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종목들이 선수들이 운동 외에 다른 곳에 눈 돌리는 걸 굉장히 싫어했어요. 하지만 그때 당시 협회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을 해줬고 제가 가지고 있었던 그런 생각과도 잘 맞아떨어져서 프로그램이 더 잘됐던 거라고 생각해요.
-말씀하셨던 것 처럼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어요. 이렇게 예능에 잘 통할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하셨나요.
사람들이 그렇게 재미있어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제가 평소에 생각이 많은 편이에요. 유도 선수 생활을 할 때는 '어떻게 하면 이기고 어떻게 하면 더 잘 넘길까'를 생각을 했었으면 은퇴를 하고 나서는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가르치고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가르칠까'를 생각했어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저는 더 나이를 먹고 더 어린 제자들을 만나는데 무섭고 권위적이고 위엄있는 선생이 되는 게 아니라 유도 자체가 즐거울 수 있게 재미있는 선생이 되고 싶었던 거죠. 아무래도 그런 부분이 예능과 잘 맞아떨어져서 다행이었어요.
-그렇다면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처음에는 많이 창피해했죠. 그런데 일반인 분들이 워낙 좋아해주셨어요. 제가 창피한 건 한 순간인데 그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는 굉장히 오래 가더라고요. 그래서 '아, 망가질 가치가 있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특히 '우리동네 예체능' 같은 경우는 다른 예능에 비해 장기적인 프로젝트였다 보니 출연자들과 더욱 같해 보였어요. 아직도 멤버들과 연락을 하고 지내시나요.
몇몇 분들과는 다 연락하고 지내요. 특히 이훈 씨는 올해 용인대학교에 입학을 하셨어요. 그래서 항상 뵙고 있어요. 어제도 수업에 들어오셨거든요.(웃음) 최고의 보람을 느꼈어요. 유도를 알리려고 예능 프로그램을 했는데 정말 그렇게 유도에 빠진 사람이 생겼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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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남자는 어디서든 살 수 있어야 된다' 처럼 잡초 같은 삶을 항상 가르치셨어요. 그래서 삶 자체가 큰 어려움은 전혀 없어요. 외롭지도 않고요. 그런데 용인대학교 코치로 오게 되면서 학교 기숙사를 쓸 수 있어서 본의 아니게 또 집을 못 구하는 계기가 됐어요.
-오픈한 체육관도 소개를 하셨는데, 체육관을 연다는 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체육관을 열기로 마음 먹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대표팀에도 있었고 실업팀에도 있으면서 엘리트체육에 있어봤는데 엘리트체육에는 사실 이미 많은 메달리스트들이 노력을 쏟아 붓고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방송에서도 말했듯이 네덜란드 빙상 대표팀이 '한 명의 슈퍼스타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신기 원한다'는 모토를 가지고 있다고 해요. 유도 보급 차원에서 이미 유도를 하고 있는 선수들을 잘하게 만드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이지만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제가 좋아하는 운동, 또 좋은 운동인 유도를 좀 더 많이 하게끔 하고 싶었어요.
맨 처음에는 이게 이유였는데 체육관을 하다 보니까 하나가 더 생겼어요. 요즘 아이들이 정말 뛰어 놀 공간이 없더라고요. 제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체육관에 데려다 주시거나 하지도 않았지만 '너 말 안 들으면 유도장 못 가' 라고 하면 안 가도 상관 없었거든요. 아무 데서나 뛰어 놀면 되니까…. 근데 저희 체육관에 오는 아이들 같은 경우에 부모님이 '너 말 안 들으면 유도장 못 가' 라고 하면 그때부터 말을 정말 잘 들어요. 놀 곳이 그만큼 없으니까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도복을 입는 것은 물론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즐거운 공간을 만들어주는 데에도 의미가 있어요.
-일반인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은 국가대표 코치와는 또 전혀 다른 일일 것 같아요.
엘리트체육에서는 이 선수들을 잘하게 만드는 게 제 임무 예요. 그런데 생활체육에서는 즐거움을 주는 게 제 임무죠. 즐거움을 주면서 그 안에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해요. 인성 교육 자체는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엘리트 체육은 유도 실력 자체가 중요하다면 생활체육은 즐거움을 더 중점적으로 교육하고 있어요.
-같히 신 경쓰는 점이나 어려운 점은 어떤 것일까요.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자들이 올바른 길을 가게 하려면 제가 먼저 앞에서 모범이 돼야 하고 솔선수범 해야 되고 저부터 갈고 닦아야 되니까요. 이렇게 저를 수양 하는 게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코치든 관장이든 둘 다 선생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에요. 그 자리에서 가지고 있는 조준호만의 특별한 마음가짐이 있을까요.
'리더'의 의미가 앞에서 이끄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라고 하더라고요. 지도자가 돼서 처음 느낀 건데, 이 친구들이 저를 믿고 따라오게 하려면 제가 먼저 이 친구들을 믿고 존중해주고 사랑해주고 떠받들어줘야 해요. 그래서 잡고 끌고 가는 지도자가 아니라 섬기는 지도자가 되는 것이 제 마음가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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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이 굉장히 하고 싶은 아이였어요. 그래서 부모님께 이것 저것 시켜달라고 했는데 부모님이 안 시켜주셨어요. 제가 계속 조르니까 유도를 좀 하셨던 아버지께서 운동을 할 거면 유도를 하라고 하셔서 유도를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 하게 된 유도는 잘 맞았나요.
학교에서 늘 축구만 하다가 사람이 사람을 던지는 운동을 하는데 당연히 재밌었죠. 정말 재미있었어요.
-런던 올림픽 직후에 대학 강연에서 하신 이야기를 찾아보니 태릉선수촌에 입촌 하겠다고 굳게 마음 먹은 계기가 재미있던데 그 이야기가 궁금해요.
그 당시에 용돈이 20만원이었는데 대학교에 처음 들어가니까 돈 들어갈 데가 많더라고요. 저는 체고를 나왔는데 체고에 있으면 돈 쓸 일이 거의 없었어요. 근데 대학교에서는 제가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전혀 모르니까 치료 받으러 갈 때 처럼 어디에 가려면 무조건 택시를 타야 했어요. 그러니까 이상하게 새는 돈이 너무 많았어요. 체고를 다닐 때는 야식도 안 먹었어요. 그런데 위에 올라오니까 친구들은 매일 야식을 먹는 거예요. 그 당시에 급식이 부실하기도 했어서 안 먹을 수가 없었죠. 20만원으로 이것 저것 하고 나면 10만원도 안 남는데 그 돈으로는 야식을 몇 번 먹지도 못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한 두 번 먹다가 친구들한테 '한 입만' 해서 얻어먹었어요. 이게 몇 번 되니까 친구들이 눈치를 주기 시작해서 내 자신이 구질구질해지더라고요. 이제 정말 안 되겠어서 돈을 벌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1학년 말에 대표 선발전이 있었는데 꼭 2등 안에 들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이번에 떨어지면 다시 부산에 내려가서 공장을 다닐까, 아니면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는 길을 선택할까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그 당시에 3개월, 6개월 정도만 배우면 바로 돈을 벌 수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운좋게도 2등을 해서 정말 태릉선수촌에 들어가게 됐죠.
-그렇게 힘들게 노력해서 처음 태극 마크를 달았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요.
태극 마크를 달았다는 것도 좋았지만 그것보다 돈이 나오고 밥을 주고 옷을 주고, 제가 존경하는 선수들이랑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게 되게 좋았어요.
-조준호 코치에게서 런던 올림픽 판정 번복 사건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5년이 지나고 나니 오히려 그 경험이 있었기에 얻게 된 것들도 많았을 것 같아요.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기회를 잃긴 했지만 그것을 잃음으로 인해서 얻고 배운 것들이 상당히 많아서 큰 원망 같은 건 없어요. 원망한다고 해서 술 먹을 때 안주 거리나 되지 뭐가 달라지겠어요. 저에게 딱 적당하게 주셨다고 생각해요.
-그 후 다시 올림픽에 도전하지 않고 선수 생활을 정리했어요.
네. 전혀 아쉬운 건 없었어요. 올림픽 끝나고 1년 더 선수 생활을 하고 2014년도에 시합을 하다가 다쳐서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어요. 그때 딱 국제 대회를 하고 있었는데 보통 제가 못 뛰는 국제 대회에서 선·후배, 동료들이 뛰는 걸 보면 심장이 엄청 뛰었어요. '내 동료들이 저렇게 뛰고 있는데 나는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쉬면 안 될 것 같고 심장이 뛰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심장이 안 뛰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만둬야 겠구나…' 하고 그만뒀어요.
유도를 시작하고 초등학교 때 제일 첫 시합 뛰면서 유도에 눈을 좀 떴다가 올림픽 때 그런 큰 일을 겪으면서 유도에 눈을 한번 더 눈을 떴어요. 이렇게 두 번 눈을 떠봤는데, 눈을 너무 크게 떠서 제 한계까지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유도를 계속 하는 게 맞는지 반신반의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병원 침대에 누워서 다른 동료들의 시합을, 유도 경기를 보고 있는데 제 심장이 안 뛰어서 깔끔하게 그만둘 수 있었어요. 심지어는 그때 브라질 월드컵 기간이었거든요? 브라질 월드컵 보는데 제 심장이 뛰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제 내 심장이 다른 데에 뛰는구나' 생각하고 그라운드로 나가게 됐죠.
-원래 결단력 있는 스타일이신 것 같아요.
네. 항상 식당에 가도 메뉴는 제가 정해요.(웃음)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2016 리우 올림픽 여자 국가대표팀 코치를 하면서 해설위원에도 도전하셨어요.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브라질에 도착해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호흡을 맞췄던 제자들이잖아요. 남자 선수들 같은 경우는 제가 선수 생활 마지막까지 하면서 함께했던 가장 친한 후배들이어서 시합을 할 때 마음 졸이는 정도였다면 제자인 여자 선수들이 시합을 할 때는 너무 떨려서 말을 너무 빨리 했었어요. 주위에서 말 좀 천천히 하라고, 유도 경기를 보는 게 아니라 '쇼 미 더 머니'를 보는 줄 알았다고 그랬던 기억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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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생활체육 협회가 없었어요. 한국에 한 다섯 개 종목 정도가 생활체육 협회가 없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유도였어요. 생활체육 쪽으로 유독 발전이 참 느렸어요. 그런 것 때문에 제가 생활체육 쪽으로 가서 저변을 확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유도를 해보면 십중팔구 다 재밌다, 매력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유도라는 선택권이 있다는 것 자체도 몰라서 못 하더라고요.
-일반인들에게 추천하는 유도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일까요.
부모님들이 물에서 살기 위해 아이들에게 수영을 가르치시잖아요. 땅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더 많은데 유도는 땅에서 생활할 때의 라이프 스킬이 다 포함되어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에요. 또 사람이 사람을 던질 수 있다는 게 굉장히 큰 매력이에요. 그래서 호신술로써의 활용도가 굉장히 높고 일상생활에서의 활용도 역시 높은 운동이에요.
-유도의 국내 대중화를 위해 개선돼야 할 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엘리트체육 중점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게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지금 한국이 잘하는 선수들을 더 잘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은 세계 최고로 잘 되어 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더 쉽고 재미있게 하는 프로그램은 사실 다른 종목들에 비해 너무 부족해요. 그런 연구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주짓수 같은 경우에는 한국에 들어올 때부터 아예 생활체육으로 들어왔어요. 그러다 보니 짧은 시간 안에 생활체육으로 엄청난 발전을 했죠. 그런데 유도 같은 경우에는 들어와서부터 지금까지도 계속 엘리트체육 쪽으로만 중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생활체육 쪽으로 발전을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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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요. 저도 배움은 짧아서 설명할 수준은 안 되지만 내 양심과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를 생각하게 됐어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나 자신이 아니라 '우리'에 맞추는 거예요. 저는 이제 제가 잘해야 되는 선수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 즉 우리가 잘하게 만드는 사람이 된 거잖아요. 근데 이것을 공부하지 않고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게 안 되는 것 같아요. 또 나 자신도 올바른 가치를 추구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학문이에요.
-유도인 조준호의 꿈이나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요?
아까 말했던 것 처럼 아직 많은 사람들이 유도에 대해서 잘 모르고 유도장이 어디 있는지도 잘 몰라요. 사실 태권도 수준까지 끌어올리기는 힘들겠죠. 그렇지만 유도 보급이나 저변 확대를 태권도 다음 가는 종목으로 만들고 싶어요. 대한민국에서 '태권도 다음은 유도' 라고 할 정도로 보급을 하고 싶은 것이 제 목표예요.
06sejong@sportschosun.com, 사진 = 이새 기자, 리우올림픽 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