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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닷컴 정유나 기자] "대관절 네놈이 뭣이냔 말이다!" 폭정을 휘두르다 백성을 도둑맞은 임금(김지석 분)이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인 채로 절규한다. 폭군으로부터 백성을 훔친 도적(윤균상 분)은 한껏 여유로운 조소를 날리며 "나는 그저 내 아버지 아들이오. 씨종 아모개(김상중 분). 조선에서 가장 낮은 자." '역적'은 묻는다. 대체 누가 진짜 역적인가?
아들 길동이 주인댁 도련님을 향해 절구를 차고, 그 사건으로 아내 금옥(신은정 분)이 마님(서이숙 분)에게 매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아모개는 "이놈의 버릇을 확실히 고치겠다"며 아들을 질질 끌고 뒷산으로 향하지만 핏덩이 같은 것을 어쩌지 못하고 내려와 주인댁에 "재산을 불려 줄 테니 외거(주인집에 거주하지 않고 독립된 가정을 가지면서 자기의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던 노비) 시켜달라"고 애걸한다.
단 몇 줄에 불과한 홍길동의 기록에 '아기장수'라는 설정을 덧붙인 퓨전사극 '역적'은 첫방송부터 빽빽한 밀도로 전통 사극 못지않은 무게감을 자랑했다. 제작발표회 당시 "조선 시대에는 주로 흰 옷을 입었다. 오죽하면 '백의민족'이라고 하겠느냐. 그런데 막상 흰색 의상이 그 어디에도 없더라. 일부러 큰돈을 들여 흰색 의상을 제작했다"라고 했던 김진만 감독의 말처럼 이 드라마는 상상을 펼치기 위해 역사에 단단하게 발을 붙인다. 입봉작(MBC 광복절 특집극 '절정')으로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특집극 부문 대상을 거머쥔 황진영 작가는 장면 하나, 대사 한줄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이 아모개와 홍길동의 서사를 차분히 쌓아나간다.
김상중의 연기는 단연 압권. 절굿공이를 한껏 치켜들었지만 차마 아들을 내려치지 못하고 주저앉을 때, 씨종이라는 운명을 자식에게 물려줘야 하는 절망에 빠져 고개를 떨구는 모습은 절규로 다가와 마음을 울린다. 주인댁의 재산을 불려주려다 갈비뼈가 나가고 어금니가 빠져도 외거할 수 있다는 희망에 벅차하는 아모개의 모습은 그의 끝없는 부성애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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