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태용 감독 "김하늘 '멜로퀸' 이미지 깨고 싶었다"

조지영 기자

기사입력 2016-12-30 16:29


영화 '여교사'의 김태용 감독이 2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했다.
'여교사'는 계약직 여교사 효주(김하늘)가 정교사 자리를 치고 들어온 이사장 딸 혜영(유인영)과 자신이 눈 여겨 보던 남학생 재하(이원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6.12.29/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충무로 유망주'로 떠오른 무서운 신예 김태용(29) 감독. 그가 말한 파격의 '여교사'는 어떤 의미일까.

만년 작가 지망생인 백수 남자친구(이희준)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보내는 계약직 여교사 박효주(김하늘)가 정교사 자리를 치고 들어온 이사장 딸 추혜영(유인영)과 자신이 눈여겨보던 발레 전공 남학생 신재하(이원근)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질투를 그린 치정 멜로 영화 '여교사'(김태용 감독, 외유내강 제작). '거인'(14) 이후 3년 만에 신작 '여교사'로 돌아온 김태용 감독은 29일 오후 가진 스포츠조선과 인터뷰에서 '여교사'에 대한 연출 의도와 비하인드 에피소드를 전했다.

밀입국 알선책 소년들을 통해 욕망과 윤리의 경계에 대해 세상에 일침을 가한 단편영화 '얼어붙은 땅'(10)으로 제63회 칸국제영화제 시네마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되며 '국내 최연소 칸영화제 진출'이라는 영예를 안은 김태용 감독. 이후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이자 열일곱 소년의 숨찬 인생을 섬세한 현실감과 담담한 어조로 담아낸 '거인'으로 '제36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제3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감독상, '제4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초청을 받으며 충무로를 이끌 차세대 유망주로 급부상했다.


김태용 감독은 "'청룡영화상'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 됐다. 인생에 단 한 번뿐인 자리인데 그 영과의 자리를 함께하지 못해 2년이 지난 지금도 많이 아쉽다"고 웃었다.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수상 이후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게 된 김태용 감독은 신인감독으로는 분에 넘치는 기대를 한몸에 받게 됐다는 후문. "충무로는 원래 멘탈이 강해야 버티는 곳이 아닌가? 처음 수상할 때는 얼떨떨하며 멘탈이 흔들렸는데 살아남기 위해 금방 다 잡아야만 했다. 수상 당시 '여교사' 편집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갑자기 높아진 기대에 '큰일 났다' 싶었다. 기쁨도 잠시, 부담감이 밀려왔고 무엇보다 반짝거리는 순간은 잠시더라. 만약 새 작품이 없었더라면 기쁨을 더 즐겼을 텐데 곧바로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어 마음을 편하게 먹을 수 없었다. 높아진 기대감만큼 공허함이 밀려오더라. '여교사' 편집을 하면서 이런 공허함을 많이 느꼈고 주변 선배 감독들도 '영화만 생각해라'며 다독여줬다. 지금은 청룡영화상에서 준 트로피를 와이프로 생각하며 공허함을 많이 메꾼 상태다. 애칭도 '청룡이'로 부르며 공허할 때 마다 위로받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태용 감독은 "충무로 기대주로 떠오르면서 많은 배우에게 출연 요청이 들어오지 않나?"라는 본지의 질문에 "생갭다 없었다. 사실 '여교사' 캐스팅도 쉽지는 않았다. '청룡영화상'을 받은 후 좋은 배우들에게 러브콜이 들어올 줄 알았는데 단 한 명도 없어 충격이었다. 상과 캐스팅은 별개의 문제였다. 아마 '여교사'가 흥행에 성공해야 배우들이 내게 관심을 가져줄 것 같다"고 농을 던졌다.


'여교사'는 이런 김태용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성장의 통증을 담아낸 '거인'과 달리 신작 '여교사'에서는 평범한 여성의 일상이 질투라는 감정으로 변화되면서 벌어지는 금기의 이야기를 다뤄 눈길을 끈다. 밀도 높은 감정과 복잡한 심리를 섬세한 연출력, 집요한 통찰력으로 꿰뚫어 스크린에 펼친 김태용 감독은 '거인'에 이어 '여교사'로 다시 한번 충무로를 발칵 뒤집어 놓을 전망.

"'여교사'는 '거인'을 끝낸 뒤 곧바로 준비해 만든 작품이에요. 다들 좀 더 큰 버짓의 대중성이 짙은 상업영화를 하길 원했지만 그보다 감독으로서 제 색깔을 한 번 더 보여주고 싶었어요. 큰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급함은 처음부터 없었죠. 장르적인 이야기보다는 캐릭터에 접근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게 제 연출론인데 '거인'도 '여교사'도 그런 지점에서 만족감을 줬어요. 특히 '여교사'는 배우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어 감독으로서 너무나 뿌듯한 작품이죠. 제가 보여주고 싶은 캐릭터를 대중이 공감하고 이해해준다는 것만으로 이 영화는 성공한 셈이죠. 하하."

금단의 이야기, 치정 소재 때문에 개봉 전 논란이 되기도 했던 '여교사'. 교단 비판, 선생과 제자의 불륜이라는 오해를 낳기도 했지만 정작 뚜껑을 연 '여교사'의 이야기는 오해를 일으켰던 지점과 사뭇 달랐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직장 여성,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한 인간의 자화상을 그린 작품이었다. 우려했던 논란은 기우에 불과했던 것. 김태용 감독 역시 이 부분에 대해 걱정은 컸지만 진심은 통한다는 진리를 믿고 끝까지 밀어붙였다고.


"걱정, 당연히 있었지만 '여교사' 예고편이 공개되고 나서 기우로 바뀌었어요. 관객도 선정적인 치정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새로운 여성 캐릭터의 등장, 그리고 한 번쯤 느껴봄 직한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거죠.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것도 최근에 불거진 사회문제들을 보면서죠. 피의자들의 충동이 대게 자존감 하락에서 온 결과였거든요.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멸감과 스트레스가 쌓여서 분노로 변질한 상황인데, 이런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풀고 싶었어요. 물론 '내부자들'(15, 우민호 감독)이나 '더 킹'(17, 한재림 감독) 같은 큰 버짓의 영화로 풀기도 하지만 '여교사'처럼 작고 소소한 이야기로도 얼마든지 풀어낼 수 있는 화두였어요."


이렇듯 쉽지 않은 이야기, 파격의 소재였던 '여교사'를 뚝심 하나로 만들어낸 김태용 감독. 특히 신인 감독으로서 데뷔 20년 차를 맞은 김하늘과 데뷔 12년 차인 유인영을 상대하기 녹록지 않았을 것 같지만 의외로 힘들지 않았다는 김태용 감독이다. 그는 "김하늘의 변신이 경이롭다. 이 정도까지 변신할 수 있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는데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줘 모두가 감탄했다. 김하늘이나 유인영 모두 연기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욕심이 많은 배우다. 특히 김하늘은 신인감독과 작업을 해 본 경험이 많아 내게도 많은 도움이 됐다. 여자들의 이야기라 남자인 내가 이해 못 하는 지점도 여자의 시선과 감성으로 설명해준 대목도 많다. 무엇보다 두 사람 모두 내가 만든 이야기, 카메라 앞에서 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재미있게 즐겨줘 감사했다"고 마음을 전했다.

사실 김태용 감독은 '여교사'를 처음 만들 때부터 김하늘의 '멜로퀸' 이미지와 이원근의 '하이틴 스타' 이미지를 이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 그는 "김하늘과 이원근 모두 대중에게 많이 소비된 모습이 있지 않나. 영화의 세세한 면모는 이런 두 사람의 이미지를 이용해 관객을 안심시키려고 했고 후반께 등장하는 영화의 큰 그림에서 이미지와 정반대의 모습으로 반전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기존의 가진 김하늘과 이원근의 이미지를 깨고 싶었다. 이 점에 있어 두 사람 모두 성실하게 소화해 성공시킨 것 같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한편, '여교사'는 김하늘, 유인영, 이원근이 가세했다. 국내 최연소 칸국제영화제 입성, '거인'으로 '제36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며 '충무로 기대주'로 떠오른 김태용 감독의 신작이다. 내년 1월 4일 개봉한다.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영화 '여교사'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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