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초점] 아이돌에서 아이콘으로..故조지 마이클을 추억하며

박영웅 기자

기사입력 2016-12-26 15:12


사진=TOPIC/Splash News

[스포츠조선 박영웅 기자]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팝스타 조지 마이클이 별세했다. 히트곡 '라스트 크리스마스'(Last Christmas)가 처음 울려퍼지던 겨울, 그것도 정확히 성탄절에 그는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다.

조지 마이클이 크리스마스인 25일(현지시간) 53세의 나이로 영국 옥스퍼드셔주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할리우드리포터 등 외신에 따르면 고인의 사인은 심부전(heart failure)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계 음악 팬들이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고 있다. 80, 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그의 존재는 매우 특별할 것이다. 대중가요보다 팝송이 익숙했던 시절 남성듀오 왬(WHAM)은 미국에 상륙해 '브리티쉬 인베이전'을 이끌었고, 팝 키즈들에게 그의 음반은 입문서와도 같았다. 팝 음악을 대중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팝스타이자, 끊임없이 탐구한 가수였고 재즈, 일렉트로니카 등 장르를 빈번하게 넘나든 뮤지션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솔로가수로 전향한 뒤에도 음악적으로 결코 안주하지 않았다. 1981년 앤드류 리지리와 듀오 왬을 결성해 데뷔한 그는 1987년 솔로 데뷔 앨범 '페이스(Faith)'로 세계적으로 250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당시 그는 부드러운 음색을 지닌 보컬리스트였고 로맨틱한 멜로디로 노래하는 훌륭한 싱어송라이터였다. 작사, 작곡, 연주 등 어느 영역에서도 모자람없이 소화해 냈다. 그는 소울 음악을 하는 백인 뮤지션에 확신을 준 아티스트이기도 했다.

록, 리듬 앤 블루스, 소울, 재즈, 펑키, 댄스, 가스펠 등의 모든 음악 장르를 한 장의 앨범을 통해 선보인 건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백인 뮤지션이 흑인이 주도하는 블랙뮤직의 영역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도, 그 발판을 마련한 것도 조지 마이클 덕분이었다. 당시 그래미는 물론 아메리칸 뮤직어워드까지 대표 시상식들은 최고의 남자가수로 그의 손을 들어줬다. 조지 마이클은 영국의 자랑스러운 대표 가수였고, 팝의 아이콘과도 같았다.

세기말을 앞둔 시점에 조지 마이클이 택한 음악은 의외로 재즈였다.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의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등 고전들을 새롭게 재해석한 커버곡들로 채워 그간의 음악인생에도 큰 변화를 줬다. 이외에 전설의 밴드 퀸(Queen)과 함께 앨범 'Somebody To Love'를 발표, 프레디 머큐리의 자리를 대신하기도 했다.

그가 보여준 음악사는 변화무쌍했다. 듀오 왬 시절엔 당시 젊은이들의 아이돌로 군림했고, 솔로가수로는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모두 쏟아내며 팝의 아이콘 칭호를 받았다. 30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성숙함이 짙게 묻어나는 앨범 'Older'로 다시 정점을 찍었고, 재즈 보컬리스트로 나서며 격조높은 음악으로 쉼 없이 질주했던 그다.

대중음악사에서 80~90년대는 매우 특별한 시절이다. 전 장르가 균형 있게 사랑을 받았고 20대 젊은 싱어송라이터들이 건강한 경쟁구도를 이뤘다. 어떤 뮤지션이 새로운 스타일과 장르의 음악을 내세우면 라이벌로 여겨지는 뮤지션이 이보다 한발 앞선 사운드의 음악을 들고 돌아왔다.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이런 시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의 다양한 장르음악이 존재하는 것도 그 과정에서 그의 존재가 특별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유명 팝스타인 엘튼 존은 조지 마이클과 함께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게재하고 "매우 깊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가장 친절하고, 관대한 영혼이며, 뛰어난 예술가인 사랑하는 친구를 잃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거짓말 같은 '팝의 전설'의 갑작스런 죽음이 유독 슬프게 다가오는 이유다.

hero16@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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