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故조지 마이클, 영원한 팝스타..영원할 크리스마스

박영웅 기자

기사입력 2016-12-26 10:30 | 최종수정 2016-12-26 10:30





[스포츠조선 박영웅 기자] 찬란히 빛났던 그날의 음악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팝송 테이프를 구입한 건, 조지 마이클이 속했던 듀오 '왬'(WHAM)의 1985년 발표작 'Music From The Edge Of Heaven'이었다. 그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었지만 동네 레코드숍 스피커에서 들려오던 '라스트 크리스마스'(Last Christmas)의 익숙한 멜로디에 끌린 게 전부였다. 초등학생 5학년이었던 기자가 팝송에 입문하게 된 건 온전히 그의 음악 덕분이었다.

80, 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조지 마이클의 존재는 매우 특별할 것이다. 대중가요보다 팝송이 익숙했던 시절 라디오를 통해 좋아하는 음악을 녹음해 아껴들었던 만큼, 노래를 듣는다는 건 단순히 취미 이상의 것이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스쿨밴드 활동을 했던 필자는 멤버들과 조지 마이클의 '라스트 크리스마스'를 연주했다. 마냥 음악이 좋았던 다섯 소년들에게 당시 조지 마이클의 음악은 교과서이기도 했다. 그의 많은 곡들을 카피연주하며 멤버들끼리 합을 맞췄고, 그땐 다들 대단한 뮤지션이 된 마냥 순간순간이 즐거웠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의 노래가 들려오고 자연스레 따라부르게 되는 걸 보면 그때의 첫 기억이 꽤 강렬했나보다.

팝 음악을 즐겨듣던 모두에게 그는 입문서와도 같은 존재였다. 팝 음악을 대중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린 영국의 팝스타이자, 이후 실험적인 음악을 끊임없이 탐구한 가수였고 재즈, 일렉트로니카 등 장르를 빈번하게 넘나든 뮤지션이었기 때문이다. 또 삶의 의미를 되짚는 노랫말과 더불어 뛰어난 스토리텔러이기도 했다.

거짓말 같은 조지 마이클의 갑작스런 죽음은 유독 슬프게 다가온다. SNS에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추억을 쏟아내는걸 보면, 그는 모두에게 단순히 좋아했던 가수 그 이상의 의미였나보다. 그의 음악을 달고 살았던 30~40대에겐 더욱 특별할 수 밖에. 한글로 가사를 받아 적고 노래를 따라 부르던 모든 기억들이 사춘기였다.

대중음악사에서 90년대는 매우 특별한 시절이다. 댄스, 발라드, 록, 트로트 등 전 장르가 균형 있게 사랑을 받았고 20대 젊은 싱어송라이터들이 건강한 경쟁구도를 이뤘다. 어떤 뮤지션이 새로운 스타일과 장르의 음악을 내세우면 라이벌로 여겨지는 뮤지션이 이보다 한발 앞선 사운드의 음악을 들고 돌아왔다.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이런 시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의 다양한 장르음악이 존재하는 것도 그 과정에서 그의 존재가 특별했기 때문이다.

조지 마이클은 음악적으로 결코 안주하지 않았다. 1981년 앤드류 리지리와 듀오 왬(Wham)을 결성해 데뷔한 그는 1987년 솔로 데뷔 앨범 '페이스(Faith)'는로 세계적으로 250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조지 마이클은 이 앨범으로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 상 등 대중음악계 주요 상을 석권하기도 했다. 록, 리듬 앤 블루스, 소울, 재즈, 펑키, 댄스, 가스펠 등의 모든 음악 장르를 한 장의 앨범을 통해 선보인 건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백인 뮤지션이 흑인이 주도하는 블랙뮤직의 영역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도, 그 발판을 마련한 것도 조지 마이클이었다. 당시 그래미는 물론 아메리칸 뮤직어워드까지 대표 시상식들은 최고의 남자가수로 그의 손을 들어줬다.

동료 팝스타들도 일제히 애도의 뜻을 전하고 있다. 엘튼존은 "매우 깊은 충격을 받았다. 가장 친절하고, 관대한 영혼을 가진 뛰어난 예술가인 친구를 잃었다"고 했고, 80년대 최고의 그룹 듀란듀란과 가수 글로리아 게이너 등은 "또 하나의 재능 있는 영혼을 잃었다"며 위로의 말을 남겼다. 거짓말처럼 그가 크리스마스에 세상을 떠났다.

hero16@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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