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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닷컴 김영록 기자]지난 9월9일, KBS '뮤직뱅크'에서는 발표한 지 2년이 지난 노래가 1위에 오르는 진기한 장면이 연출됐다. 호소력과 성량이 돋보이는 남성 톱보컬리스트의 묵직한 발라드 명곡임에도 대중의 눈에 띄지 못했던 곡이, 기적처럼 차트를 거슬러오른 것이다. 바로 한동근의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해(이하 '이 소설')'다.
한국 가요사에 남을 대표적인 '역주행' 사례는 2014년 겨울을 불태웠던 EXID의 '위아래'다. 8월 발표 당시 실시간 차트 100위권에 진입했다가 오래지 않아 탈락했던 '위아래'는 활동이 종료된 10월 '하니 직캠' 이후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다. 급기야 2015년 1월 음악방송 4관왕 및 멜론 월간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EXID는 단숨에 K팝 대표 걸그룹으로 떠올랐다.
2016년에는 어떤 노래들이 뒤늦게 사랑받으며 시간과 차트를 거슬러올랐을까. 올해 돋보이는 역주행 행보를 보인 명곡들을 가온차트와 멜론차트를 기준으로 소개한다.
한동근의 '이 소설'은 '위아래'보다 더 극적인 역주행 스토리를 써내려간 노래다. 압도적인 보컬 역량의 소유자인 한동근은 2012년 '위대한탄생3' 예선에 첫 등장한 이래 이렇다할 굴곡 없이 무난하게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위탄3'가 대중들로부터 외면받으면서, 우승자 한동근도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이 소설'은 2014년 9월 30일 발표한 한동근의 데뷔 싱글이다. 이해 최고 인기곡 '썸(소유&정기고)'의 작곡가 Xepy는 파워와 음색, 호소력을 두루 갖춘 한동근에게 딱 맞는 노래를 선물했다. 하지만 이렇다할 반응은 없었다. 한동근은 가수 활동 없이 소속사 유튜브 채널에 커버곡 영상들을 올리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송곳은 결국 주머니를 뚫고 나왔다. 한동근은 지난 4월 '복면가왕'에 출연해 독보적인 가창력을 선보이며 조장혁 등 전문가들조차 인정하는 수준급 보컬리스트로 떠올랐다. 5월에는 일반인들의 커버 영상으로 인해 주목도가 높아졌고, 6월 '라디오스타' 출연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급기야 8월 '듀엣가요제'의 끝판왕으로 자리매김하면서 한동근의 화제성이 폭발했다. '이 소설'은 발표 약 23개월만인 8월 25일 멜론차트 1위에 올랐고, 9월 2일에는 '퍼펙트 올킬(모든 음원차트 1위)'을 달성했다. 급기야 9월 9일 '뮤직뱅크' 1위까지 차지하며 EXID 못지 않은 역주행의 아이콘이 됐다. 한동근은 '이 소설'의 바람을 타고 발표한 신곡 '그대라는 사치'로도 큰 사랑을 받으며 대표적인 남성 발라더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역주행 일지(2016 가온차트)
33주(54위 재진입)→34주(23위)→35주(2위)→36주(1위)→37주(4위)→38주(3위)→39주(4위)→40주(7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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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빨간사춘기'는 지난 2014년 '슈퍼스타K6'를 통해 이름을 알리긴 했지만, 당시 톱10에도 오르지 못한 인디밴드다. 올해 4월 발매한 미니앨범도 평은 좋았지만, 차트 성적으로 연결되진 못했다.
8월 29일 발매한 첫 정규 앨범 '레드 플래닛' 또한 초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발매 첫 주 성적은 멜론차트 93위. 하지만 9월10일 방송된 '유희열의스케치북'에 출연하면서 반전 드라마가 시작됐다.
'스케치북' 출연 이후 입소문을 탄 '우주를 줄게'는 폭발적인 역주행을 시작, 9월 셋째주엔 멜론 10위권에 진입했다. 가온차트 순위 또한 12위, 3위로 급격한 상승세를 탄다. 급기야 9월26일에는 마침내 멜론차트 1위를 차지했고, 10월초에도 다시 재차 1위에 탈환하며 반짝 인기가 아님을 입증했다. 결국 9월 월간차트에 들지 못했던 볼빨간사춘기는 10월 월간차트 1위에 오르며 대중성을 증명했다. 가온 월간차트에서도 9월 5위, 10월 2위를 차지했다.
'우주를줄게' 뿐 아니라 '나만 안되는 연애', '심술', 'You(=I)' 등 차트 수록곡 모두가 함께 사랑받고 있다. 특히 이들 노래들이 꾸준히 50위 안쪽에서 롱런하며 확고한 음원강자의 입지를 굳혔다.
역주행 일지(2016 멜론차트)
36주(93위 진입)→37주(77위)→38주(26위)→39주(3위)→40주(1위)→41주(1위)→42주(1위)→43주(2위)→44주(3위)→45주(4위)→46주(4위)→47주(3위)→48주(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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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미픽미픽미 업! 픽미픽미픽미 업!"
프로젝트 걸그룹 오디션 '프로듀스101(이하 '프듀') 주제가인 '픽미'는 첫 방송보다 한달 전인 지난해 12월 17일 발표됐다. 하지만 발표 이후 약 50여일간 음원차트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명곡'이라는 제목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픽미'는 첫 후렴구에서만 '픽미'가 26번 등장하고, 똑같은 댄스브레이크가 2번 반복되는 단조로운 구성을 가졌다. EDM과 아이돌 댄스곡을 억지로 합쳐놓은 것 같다는 평가도 있다. 대중들에게도 철저히 외면당했다.
하지만 올해 1월22일 '프듀' 방송이 시작되면서 주제가인 '픽미'가 재조명됐다. '듣다보니 괜찮다', "중독성 있다"는 평가와 함께 2월초에는 가온차트 45위로 재진입했고, 3주차에는 무려 9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에도 차트에 꾸준히 살아남으며 롱런했다.
차트 순위 외 화제성과 파급력만 놓고 보면 2016년 올해의 노래 후보에도 오를만하다. 수많은 예능(1박2일 외)과 드라마(혼술남녀 외), CF, 선거 등에 활용됐다. 특히 올해 최고의 신인 아이돌로 꼽히는 아이오아이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노래인 만큼, 이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이나 가는 행사 무대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단, 본 기사에 언급된 '픽미'는 아이오아이 앨범이 아닌 '프듀' 앨범에 수록된 101명 버전이다.
역주행 일지(2016 가온차트)
1주(차트진입실패)→9주(45위 진입)→10주(24위)→11주(9위)→12주(11위)→13주(13위)→14주(16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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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프리티랩스타2'를 통해 강렬한 랩을 선보였던 헤이즈는 올해 들어 세련미 넘치는 보컬로 변신, 대중들의 귀를 사로잡고 있다.
헤이즈가 음원차트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 첸-바이브와 함께 발표한 싱글 '썸타'부터다. 곧이어 발표한 '돌아오지마'는 최고 18위까지 올랐던 '썸타'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멜론차트와 가온차트 모두 50위 안팎을 맴돌다 그대로 차트 아웃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돌아오지마'의 인기 행보는 독특했다. 헤이즈는 7월 신곡 '앤드 줄라이(feat.Dean)'를 발표했는데, 정작 '돌아오지마'가 재조명된 것. 9월부터는 '돌아오지마'가 오히려 '앤드 줄라이'의 순위를 추월했다. 발표 6개월만인 10월 3째주에는 멜론 9위까지 올라섰다. 헤이즈 특유의 비음 섞인 독특한 발성이 인기 비결이라는 평가다.
역주행 일지(2016 멜론차트)
16주(88위 첫 진입)→17주(57위 역주행전 최고순위)→35주(62위)→36주(33위)→37주(25위)→38주(22위)→39주(18위)→40주(16위)→41주(10위)→43주(9위)→44주(1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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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음원강자이자 인기 걸그룹인 마마무에게 역주행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을줄 알았다.
하지만 마마무의 신곡 '데칼코마니'의 시작은 좋지 않았다. 첫주차 음원 순위는 18위, 2주차에는 15위에 그쳤다. 앞서 지난 2월 '넌is뭔들'의 폭발적인 반응과는 대조적이었다.
마마무는 마마무답게 실력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마마무는 11월 25일 열린 청룡영화상 시상식에 초대가수로 출연했다. 이날 마마무는 "뭣이 중헌디", "모히토 가서 몰디브 한잔하자", "내가 원샷하면 나랑 사귀자" 등 영화속 명대사를 인용한 센스있는 개사와 무대매너, 돋보이는 가창력으로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전국민이 주목하는 '청룡영화상'의 존재감은 굉장했다. '데칼코마니'는 매주 순위가 오르는 독특한 노래가 됐다. 멜론차트에서 8위로 뛰어오른 '데칼코마니'는 뒤이어 5위와 4위를 차지하며 팬들에게 인정받은 명품 보이스임을 새삼 입증했다.
역주행 일지(2016 멜론차트)
46주(18위 진입)→47주(15위)→48주(8위)→49주(5위)→50주(4위)→51주(7위)
[PS. 아쉽게 제외된 노래들]
여자친구의 '시간을 달려서'나 트와이스의 '치얼 업(CheerUp)', 'TT', 원더걸스의 '와이 쏘 론리(Why So Lonely) 등도 역주행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이는 올해 최고 인기곡들의 롱런 과정에서 발생한 자연스런 모습이다. 지난해 발표된 러블리즈의 '아츄(Ah-choo)'와 트와이스의 '우아하게'.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 등도 사전적인 역주행에는 부합하지만, 특정한 계기로 주목받기보다는 꾸준한 관심을 받으며 '롱런한 인기곡'이다.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 아이유의 '금요일에만나요', 아이유&하이포(High4)의 '봄 사랑 벚꽃 말고' 등 시즌송들은 발표 이후 매년 특정 시기마다 차트를 장식한다. 2016년 차트를 따로 분석한다는 의미에서 이들 또한 제외했다.
정준일의 '안아줘'는 지난 2011년 11월 발표 당시 '슈퍼스타K3'의 폭풍에 휘말리며 일찌감치 차트아웃됐다. '안아줘'는 지난 6월말 '우리결혼했어요' 육성재-조이 커플의 이별신에 등장하면서 발매 당시에도 받지못했던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4년반 만에 음원차트에 재진입한 '안아줘'는 7~8월 한때 차트 20위권까지 오르는 기세가 돋보였다.
lunarfly@sportschosun.com